[Opinion] 우리에게 남은 48번의 작심삼일 [사람]

신발 끈은 얼마나 더 자주 묶어 주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글 입력 2022.08.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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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종일 머금다 내뱉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던 2022년도 벌써 절반이 넘게 흘렀다. 더 이상 나는 다이어리 속 날짜 칸에 2021년이라 적다가 황급히 지우지 않는다.


새해에는 이것도, 저것도, 콕콕 찔러가며 여러 분야들을 두드려 본 것도 같은데 어째 8월의 현재 내가 이루어놓은 건 미진하게만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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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8장이나 넘겨진 올해 달력을 바라보면서 혼자만의 중간 점검 시간을 가진다. 핸드폰 앱에다 새해가 되어서 간단히 남겨두었던 나의 지난 메모들을 꺼내본다.


 

새해부터는 감사일기를 쓸 거야! - 왕복 3시간의 출퇴근길을 겪고 나면 모든 인류애와 감사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올해는 꼭 운동을 시작해야지! -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과 요가센터의 가격을 비교만 하다가 어느새 8월이 됐다.

 

갓생을 위해 짧게라도 미라클 모닝을! - 미라클 모닝을 위해 5분 간격으로 아침 알람을 10개씩 맞춰놨지만, 어째 내 눈은 10번째 알람에서만 떠진다.

 


이상한 일이었다. 2021년 12월 31일의 나와 2022년 1월 1일의 나는 확연히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내 계획의 실천 목록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까. 그러던 와중에 비슷한 경험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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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온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다.


"축하합니다. 스무 살입니다!" 라고 팡파레를 울려주진 않더라도 스무 살이라면 합법적으로 어디서든 술을 살 수 있었고, 어른이라고 규정한 사회 테두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전에도 매년 나이를 먹어왔다지만 내게 있어 19살과 20살, 그 사이의 간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스무 살의 1월 1일에는,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조차도 어제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여전히 소심했으며, 음식점에 가서 주문을 할 때면 우물쭈물거렸고,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는 언제나 긴장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계획에 집착하게 된 이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다 보면 그런 내가 변해있을 것 같아서였다. 특히 '연말병'이라는 게 실제로 있기라도 한 건지 나의 계획은 주로 연말이 되면 그 수가 폭발했다. 지난날, 따분함과 시시함 속에서 흘려보낸 시간들이 연말이 되면 어찌나 아쉽고 아깝던지. 연말이 되면 늘 속죄의 마음으로 그 해 이루지 못한 목록들에 플러스알파만큼의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렇게 줄줄 써 내려간 계획들을 보면 괜히 안심이 됐다. 왠지 다 지킬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획을 지키지 못한 올해'를 상쇄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일 년이 지나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 속, 끝내 지우지 못한 목록들을 보며 자책하기를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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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목록만 줄줄 써 내려가면 뭐 하나. 그에 대한 노력은 써 내려갔던 페이지만큼도 하지 않았는걸... 내 이럴 줄 알았다며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내가 바보라며 위안해 보려 하지만 이는 결국 자책으로 귀결될 뿐, 부랴부랴 올해 계획을 수정하다가 또다시 작심삼일로 그쳐버리기 십상이었다.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부끄러움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이것마저 못한 나’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 '이거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다른 일은 어떻게 하려고?'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힌다. 목록을 작성하면서 불탔던 나의 열정이, 그 물음들 앞에서 형체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그라든다.

 

*


나의 모든 열정이 모두 사그라들기 전에, 부랴부랴 꺼내서 되뇌는 말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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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은 언제든 풀어지기 마련이고 사람은 원래 다 작심삼일이기 마련인데

그걸 얼마나 더 자주 묶어주느냐가 중요하다.*

 


작심삼일이었다고 해도, 그 삼일간은 열심히 실천하지 않았나? 삼일 만에 신발 끈이 풀어졌다면 잠깐 서서 열심히 묶어 주면 되는 건데. 끈이 풀어진 신발을 내려다보고는 내 신발 끈은 왜 이리 쉽게 풀어지냐며 투정하던 나, 끈이 풀린 신발로 애써 걸음을 옮기다가 그 끈을 밟고 넘어져 울고 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2022년, 여름의 녹음 앞에서 다시 한번 내 신발 끈을 꽉 동여맨다. 이 글을 작성하는 8월 9일 기준으로 새해로부터 221일이 지났으니, 2022년도 144일 정도 남은 셈이다. 작심삼일의 숫자 '3'으로 144를 나눈다면... 올해 우리에게는 총 48번의 작심삼일 기회가 주어졌다.

 

오늘 퇴근하고 집에 가서는 별의별 핑계로 미루어두었던, 감사 일기부터 꼭 써야겠다.

 

 

* DAY6(Even of Day) [Right Through Me] Intro Film - YoungK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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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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