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푸른빛 외사랑 [사람]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어떻게 안 되는 게 있다.
글 입력 2022.07.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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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물이 좋다.


  

주택인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옥상에서 식물을 키우셨다. 같이 놀 상대도 없어서 할머니를 따라 옥상에서 식물을 돌보며 놀았다. 할머니를 따라 식물에 물을 주거나 식물 근처에 곤충들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내려와 책을 읽었다. 그때는 한글도 못 읽을 때라서 글보다는 사진이 많은 도감, 특히 식물도감을 읽곤 했다. 적혀있는 글은 하나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삽화와 사진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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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밭에도 갔는데 어른들을 따라 작물을 수확하고 씨앗을 심기기 위해 괭이질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식물을 좋아하는구나. 고요한 자연 속에서 식물과 있고 싶었다.

 

집 그림을 그리면 항상 앞마당에 텃밭을 그려 넣었고 그게 아니라면 집 주위에 숲을 그렸다. 그래서 나는 커서 어른이 되면 농부가 되거나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마음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야


 

내 손으로 순수하게 식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키워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밭일이야 주로 어른들이 일했지, 고사리손은 잘 빌리지 않아 온전히 내가 키웠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집에서도 이미 옥상뿐만 아니라도 집안에도 화분이 많아서 내가 무언가를 심어 키우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과학 교과서를 처음 받았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나도 직접 새싹부터 식물을 키워볼 수 있다고. 반 친구들과 각자 페트병을 잘라 학교 화단의 흙을 퍼담아 강낭콩을 심어 사물함 위에 올려두고 싹이 트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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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떡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자라날 동안 새싹은커녕 보라색 강낭콩에 하얀색 거품이 올라왔다. 책에서는 분명 연두색 싹이 올라왔는데 어째서 하얀색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막연히 '성장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라는 생각으로 불안함을 잠재웠다. 하지만 오래도록 하얀 거품은 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거품이 성장에 도움을 주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썩은 것이었다.


현실에 수긍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흙까지 다시 퍼 담아 새로 심은 콩은 싹이 올라왔다. 올라오긴 했는데 이 친구도 무언가 이상했다. 같은 반 다른 화분들은 굵직하고 탄탄하게 조금씩 조금씩 자랐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심은 콩은 혼자서 무한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성장 기록에 16센티미터를 쓸 때 나 혼자 40센티미터라고 썼다.

 

잭이 길 가던 노인에게 받은 콩이 하늘을 뚫고 자란 콩 나무를 보는 잭의 기분이랄까.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썩지 않았으니 됐지 뭐. 왜 내 콩만 이렇게 되는 거지?' 지지대를 훌쩍 넘어 옆 친구 화분까지 침범했다. 겨우 10센티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옆자리 화분과는 누가 봐도 다르게 컸다. 사람도 전부 다르게 크는데 콩이라고 다를 게 뭔가. 안 썩었으면 됐다는 마음으로 키웠다.

 

콩은 무사히 자라 수확했지만 자란 콩 안에 검게 덩어리 같은 게 들어있어서 내가 건강학 잘 키우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심이 컸다. 이후로도 몇 가지 더 심어봤지만 다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중고등학생 때는 더는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는 달라졌다고 믿고 싶어 키우기 쉽다는 허브 키우기 키트를 사보았다. 이젠 다르겠지. 나름의 지식도 쌓았고 이전에 경험들로 나도 느끼는 게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다음날 바람 불어 화분이 엎어져 심었던 씨앗이 다 사라진 걸 보고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세상 만물이 내가 식물을 키우는 걸 막는 느낌.

이 정도면 저주받은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다.

 

그래서 이후로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한때 식물이 좋아서 농과대학에 지원해볼까 했지만 저주받은 손으로는 실습 때 식물들을 다 죽일까 봐 지원하지 않았다. 과거를 생각하며 정말 잘 선택했다고 지금도 느낀다. 잘 살 수 있었을 식물들이 나를 만나 다 죽어 나갈 걸 생각하면 속이 쓰리지만 지금처럼 관심만 가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어떻게 안 되는 게 있구나.

내가 잘하고 싶다고 해서 잘되지 않는 것도 있구나.

 

길을 지나다니면 식물을 볼 때마다 무슨 나무 무슨 꽃 무슨 풀이름 죄다 꿰고 다니고 키우기 쉽다는 식물이 있다면 눈이 갔다. 수확철에 친척이 부르면 당장 뛰어가 수확했다. 아직 식물이 좋다. 하지만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것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을 키우는데도 책임감이 따르고 그들이 죽었을 때 죄책감도 따른다.

 

나는 아직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지식도 늘어 자신감이 생긴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푸르름을 온전히 내 손으로 키워 낼 때까지 오랜 푸른빛 외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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