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의식주콘' 시대, 콘텐츠 만드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하여 -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

콘텐츠 바다 속 오마카세를 만들다
글 입력 2022.07.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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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떤 시기는 왜 그런 시간을 거쳐야 했는지 끝내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로 남는다"

 

하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더라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존재마저도 사라지고 만다. 이 문장을 보고 최근 감명깊게 본 영화 <헤어질 결심>이 떠올랐다.(*스포주의) 주인공 송서래는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는 이에게 영원히 새기고자 "완결되지 않은 사건"인 미제로 남기 위해 죽음으로써 행방불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소설이든, 현실이든 어떤 형태로든 '영화'라는 형태로 탄생하여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땠다' 정도의 문장으로는 사건의 존재 자체는 영원히 남는다. 우리는 그 사건의 빼곡한 실제를 모르지만, 어쨌든 알고 있다. 아무튼, 원인과 결과를 아는 여부를 떠나서 기록은 그 사건, 이야기, 역사를 적어도 살아있던 것으로 남긴다. 그래서 기록은 무언가를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 세상에 영원히 남기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이라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던 이유는 기록의 매력과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매 순간마다 느꼈기 때문이다. 원래도 스스로를 기록을 '꽤' 잘, 열심히 한다고 평가해왔으나 작가 서해인의 이력을 보니 감히 명함도 못 내밀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작가는 매달 120여개의 콘텐츠-영화,드라마,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도 모자라 '콘텐츠 로그'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하여 10일에 한번씩 수천 명의 독자들에게 콘텐츠 zip을 사랑스럽게 발송한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일'로 전환되는 신기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단지 의무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콘텐츠 소비자를 만족시켰을 때 얻는 뿌듯함보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기쁨이 조금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기쁨이 서해인 작가를 '만드는 사람'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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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바다 속 오마카세를 차리는 것 같아" -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 리뷰



마치 비유하자면 서해인 작가는 콘텐츠 바다 속으로 완전히 다이빙하여 각국의 콘텐츠 특산물, 싱싱한 킬링 포인트를 수집하고 맛있게 재탄생시키는 '콘텐츠 해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녀라는 인상은, 무한한 콘텐츠 바다 속 무언가를 그저 보고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이가 아니라 포착하고, 잡아서 만져보고, 또다시 느껴보고, 그것을 바구니로 담아 결국 독자(손님)에게 신속히 전한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비유하자면 제주도의 싱싱한 전복을 잡아 바다 앞 횟집에서 손님에게 건네는 정도의 헌신과 사랑이 담긴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레이싱 카보다 더 빨리 사라지고 없어지는 '패스트 시대'에서,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꽉잡아 손질하여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는 '창작자'에게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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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구독하면 4가지 코너를 만나게 된다. 지난 10일간의 콘텐츠 로그, 지난 10일동안 가장 좋았던 것들, 지난 10일동안의 알라딘(온라인 서점) 보관함 로그, 다음 10일동안 기다려지는 것들. 특히 좋은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작가는 현재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콘텐츠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만의 역주행이 시작된 콘텐츠'까지도 코너에 싣는다. 이 콘텐츠 오마카세에서는 매번 특별 메뉴가 달라진다. 그래서 다채롭고, 톡톡 튄다.


 

조회수가 높다거나 판매 부수가 많은 콘텐츠를 소개할 때면 "요즘 이게 난리입니다", "당신만 모릅니다"라는 말을 나까지 얹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신작과 구작을 섞어서 소개할 때가 많은데, 콘텐츠를 다루다보면 이미 지나간 작품에 뒤늦게 마음을 쏟는 나만의 역주행 콘텐츠들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덜 유명한 게 더 유명해지길 바라며, 이미 유명하다면 편견 없이 좋은 부분이 소비되기를 바라며, 시장의 논리와는 조금은 거리를 두고 추천&소개하는 일의 일환이다. (중략) 그만큼 눈앞에 있는 콘텐츠를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의 가치를, 나는 좋아한다.

 

-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 p.120-121 중에서

 

 

최근 한 노래를 매일마다 N번씩 들으면서 '도대체 이 노래는 왜 안 떴을까. 무조건 역주행시켜야해!'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이렇듯 같은 마음으로 덜 유명한 게 더 유명해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 더 큰 공명으로 울려퍼지기 위해 <콘텐츠 로그>에서 그것들을 길어올리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브레이브걸스가 작년 한 해 전국을 뒤흔들었던 이유도 결국 역주행을 기원하는 유튜버의 정성스러운 영상 업로드 때문이었고,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편 '무야호' 할아버지가 잠시 온 세상의 배꼽을 가져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그것을 보는 기쁨, 즐거움, 재미를 나누고 싶다는 투명한 동기는 때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이 참 좋다. 기대하고, 기다리고, 응원하게 되는 마음의 불씨를 쉽게 끌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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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본문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은 특정한 원칙이나 보편적인 원리에서 벗어나 완벽히 '주관적'인 상태라는 의미의 문장이 있었다. "창작에 대한 프로세스 관리는, 먼저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것이 주관적이고, 종종 옳고 그른 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디즈니의 6대 CEO인 로버트 아이거의 문장을 빌려본다.

 

로버트가 말했듯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일반적인 법칙은 없음을 알게 된다. 적어도 창의력을 발휘하는 결과물에 있어서는, 완전히 주관적인 것이 완전히 객관적인 것보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보기 드물고, 희귀하고, 진귀하니까.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주관적 느낌은 정답과 오답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인사이트에서의 활동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논문 사이트에 게재되지도 않은 객관적 이론과 정리가 아닌, 온전히 주관적인 이야기들을 담대하게 써내려간 역사말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카더라보다는,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이 더 생생한 것이겠지'라는 패기. 무모하기도, 용감하기도 한 그 기운을 북돋고자 했다. 놀랍게도 어느덧 콘텐츠를 나만의 시각과 언어로 '재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누군가 내 글을 지켜보고 있으며, 나아가 나의 글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저 열심히 보았고, 생각했고, 기록했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또다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콘텐츠로 변화한 것이다.

 

실은 나도 서해인 작가처럼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독자적인 관점과 언어로 다시 재탄생시켜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더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만들기 위해서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의 연속이라 결국 필연적으로 선순환이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의 비중은 '만드는 주체'로서의 나에게 더 쏠린다.

 

 

'그놈의 효율'에서 한 발자국 멀어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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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다룰 때 한번 더 살펴볼 것이 바로 '효율과 안정성'과 같은 개념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지는 이미 옛 말이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프리랜서를 희망하는 마음가짐들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요즘, 서해인 작가는 콘텐츠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현직 프리랜서로서 '마음의 자세'를 단단하고도 명확하게 다져가고 있었다. 그는 8년 차 싱어송라이터 류희수의 에세이를 빌려 '음악과 창작의 태도' 속 효율이나 안정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밝히곤 했다. 중요한 것은, 미세할지라도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착실히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놈의 효율'에서 한 발자국 '멀어질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싱어송라이터에게 효율이나 안정성 같은 개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작고 제한적일지라도 오직 자신만의 세계를 착실히 일구어나가고 있다는 분명한 느낌, 실감이다. 따라서 그것을 최대화하는 것이 늘 작업의 1순위가 된다. 그런데 개인의 실감이 최대화된다는 건 '효율과 멀어진다' 또는 '리스크가 커진다'는 말과 같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기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뚜렷한 실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싱어송라이터는 언제든 비효율의 덫에 걸려들고 리스크를 짊어질 준비가 되었다.

 

- 도서 <오래 해나가는 마음> 중 p. 46-47

 

 

투자 대비 효율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효율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효율만 추구하는 문화는 결국 잠재적인 다양성을 잠식시키기 마련이다. 세상에 수많은 색깔과 생태가 있듯 각자의 삶과 문화, 속도와 선택은 그저 고유하다. 참새에게 효율적인 재빠른 날갯짓이 사람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효율적으로만 산다면 태어난 즉시 가능한 모든 일들을 빠르게 해치우고 다시 요람에서 무덤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만약 이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라면, 우리는 효율에서 때로 멀어질 의무가 있다.

 

때때로 효율에서 멀어져도 괜찮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시간의 중력을 느끼며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효과적인 삶을 꿈꾼다. 올바른 방향으로 스스로의 빛깔과 색을 가꾸어가는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가리라 다짐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도 결국 무언가를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는 감정이기에, 그 기둥으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싶다. 서해인 작가도 언급했듯 더 많은 팔로워보다는 더 단단한 균형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마음과 성실함의 콜라보는 생태계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은 '좋아하는 마음'과 '성실함'이 만나면 하나의 생태계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주 만에 극장에 걸린 모든 작품을 다 봐서 더는 볼 영화가 없었던 작가가, 지인들로부터 무슨 영화가 재미있느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자 페이스북에 카드뉴스를 올려 월간 시리즈를 발행한 것이 뉴스레터의 시작이었다. 그것의 영향력과 범위가 점차 커져 이제는 매주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인간 생활의 삼대 요소인 의식주에 콘텐츠를 더해 '의식주콘'이 사대 요소라 주장하는 나는,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인 '콘텐츠 생활'을 구독자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다. 전부를 보여주려고 의도했더라도 전달 과정에서 누락되는 게 생긴다. 그러나 내 콘텐츠 생활만큼은 왜곡이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다른 기록 방식에 우선하여 '로그'를 선택한 이유다.

 

이를테면 나는 영화를 본 후 음원사이트에 가서 OST를 찾아 듣고, 그 영화를 리뷰한 팟캐스트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주연 배우나 감독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중략) 이 경우, 영수증이 구매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콘텐츠 로그는 나라는 콘텐츠 소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 보인다.

 

-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 p.110-111 중에서

 

 

의식주를 제외한 나머지 생활을 '문화예술'로 소비하는 시대다. 이러한 흐름에 빗대어 '의식주콘'이 사대 요소라 주장하는 서해인 작가의 작명센스는 넉넉히 공감할 만하다. 먹고,자고,입고,콘텐츠를 향유하는 이 시대에 좋아하는 마음과 성실함이 만나면 결국 또 하나의 생태계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고 느낀다. 과연 이 생태계가 얼마나 더 넉넉하고 호화스러울지 자꾸만 더더 기대하게 된다. 콘텐츠를 애호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기쁨을 느끼는 창작자들이라면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아낌없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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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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