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꺼이 제멋대로 춤출래요 -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

'어른'이 버겁게 느껴지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2.07.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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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연극 소개 글이 마음을 움직였다. 아직 어른이라는 말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데 누군가의 결론과 메시지를 들으면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청춘의 상징인 대학로에서 올리는 극이라는 것도, 러닝 타임이 아주 길지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짧고 굵게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선적이고 이전에 봤던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객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줄거리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연극이 끝나고 친구와 몇몇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려고 파고드는 대화보다는, 각자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고 감상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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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를 미루고 눈앞에 닥친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한 청소년 시절이었다. 경준이는 중학교 입학식에서 가별이를 처음 보고서 ‘묘하고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애’라고 표현한다. 마치 부유하는 상태였다. 어디 뿌리내리지 못하고 욕심도 부리지 않고 애매하게 떠다니는 가별이를 알아본다.


가별이의 머릿속이 모호했던 건 무엇 하나 스스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만의 방식을 찾는다. 말을 할 때도 걸을 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통해 가장 익숙하고 스스로 어울리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가별이가 ‘묘해’ 보였던 건 이전에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있지 않은 백지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였던 게다. 그래서 가별이는 어른들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희미한 가별이에게 경준이는 최초의 자극이 된다. 경준이와 함께 강가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춤을 춘다.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경험은 가별이를 조금 달라지게 한다. 제 생각을 말하면 말대답이라고 하고 대화 없이 ‘몇 시까지 들어오라’고 통보하는 부모님에게 반발심을 가진다. 불호를 드러내는 것도 가별이에게는 약간의 성장이었다. 어렸을 때 세상을 보는 유일한 기준이었던 부모님의 시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호불호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준이와의 대화에서 이는 명확하게 보인다. 서로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경준이는 탐험가와 화가가 되고 싶다며 이야기한다.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라도 만날 운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반면 가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법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된다고 한다.

 

이건 가별이의 생각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이 고장 난 인형처럼 반복하던 “나쁜 짓 안 하고 술 담배를 거부하고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부모님의 앵무새 같은 말을 그대로 읊은 것에 불과하다. 가별이가 아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그동안 어른들이 말했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 뿐이다.


가별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이었다. 비둘기를 보고 닭꼬치를 해먹자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기겁하며 둘은 다르다고 말한 부모님으로부터 그 차이를 납득하지 못했을 때, 가별이는 계속해서 물었어야 했다. 왜 손질된 닭은 먹으면서 길가에 죽어있는 비둘기는 먹지 않는지? 닭꼬치와 비둘기는 무엇이 다른지? 묻고 대답을 듣고 더 많이 자주 이야기해야 했다.

 

묘하게 대답을 피하고 그저 가족끼리 숨 막히게 사랑하면 된다고 말하는 부모님에게 착한 딸이 되어 알겠다고 대답하는 건 상책이 아니었다. 가별이가 나기를 온순해서 그랬을지도, 아니면 부모님 말을 듣고 넘어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어쩌면 귀찮게 생각하기 싫어서 미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미루고 모호하게 사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별이는 게으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명문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입사하려고 애쓰던 가별이는 혜나를 보고 각성한다. 혜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어서 공부한다며 똑부러지게 얘기하는 애였다. 공부하지 않고 춤만 추면 어른들이 잣대를 들이대기에 잔소리 안 듣고 춤추고 싶다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대학에 와서는 하고 싶던 춤을 마음껏 췄다. 혜나는 행복해 보였다. 가별이는 혜나처럼 꼭 행복해지기로 결심한다. 뭔가 훌륭하고 반짝거리고 답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나도 행복했던 때가 있던 것 같다며 지난 시간을 회고하다 경준이를 떠올린다. 경준이는 행복할까?

 

미국으로 이사를 하면서 가별이와 연락이 끊어진 경준이는 아버지가 원하던 직업인 항공 관제사가 된다. 그림도 가끔 그린다. 그렇지만 정작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떳떳한 직업은 있으나 어딘가 빠져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별이를 다시 한번 만나기로 한다. 속초의 돌담마을로 떠났다는 가별이를 찾아 여행을 간다.


둘은 속초에서 다시 만난다. 경준이와 가별이는 마치 놓쳤던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처럼 꼭 비어있었던 것의 답을 찾는다. 서로는 서로에게 단서였다. 나를 알기 위한 단서. 그래서 경준이와 가별이의 재회를 첫사랑을 찾은 것이라고 납작하게 바라보고 싶지 않다. 경준이는 가별이의 시작이다. 처음으로 엉망진창이어도 상관없으니 뭐든 그냥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 사람이었고, 가별이에게 숨구멍을 내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하며 떠올릴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최초의, 좋아하는, 사람에서부터 가별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을 정의하고 답을 찾아 나가기. 여행과 경준이는 가별이에게 꼭 필요했다.

 

*

 

스스로 물음을 통해 알아가는 걸 미룰 수는 있지만 언젠가 꼭 그걸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는 묻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질문들이다. 남의 표현을 빌려 제 것인 양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작은 위기에도 곧잘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는 언젠가 겪게 된다. 즉 사춘기는 언제라도 찾아온다. 20대에, 30대에 사춘기가 왔다고 해서 민망해할 필요는 없다. 한자 말처럼 피어나는 봄처럼 생각이 터져 나오는 시기이기에 폭발적으로 자신을 알고 정의해간다.


공자는 나이 50세에 인생의 소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지천명’의 나이이다. 대단한 성인마저 반백을 살고서야 삶의 목표가 명확해졌다는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헤매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알고 남을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해 애쓰기로 한다.

 

가별이처럼 기꺼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일반적인 템포가 아니라 저만의 노래에 맞춰서 제멋대로 춤추기로 결심한다. 버티며 나만의 정답을 찾아 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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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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