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 없고 행동 과한 이방인 [영화]

글 입력 2022.07.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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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분명 문학과 차별화되는 매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텍스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모던 타임즈>는 영화 그 자체만으로 당대 사회에 대한 커다란 은유로 읽힌다. 해당 영화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와 분석이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단순히 시대성을 지닌 걸 너머 시대 자체를 대변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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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 화면 가득히 바쁘게 움직이는 소떼와 지하철 출구로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교차편집 한 것부터 이 영화가 ‘읽을’ 가치가 있는 하나의 은유적 텍스트임을 암시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해당 은유의 가치가 더욱 짙어진다. 찰리 채플린의 유머가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웃음으로 찌르는 듯한’ 알싸한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분석할만한 가치를 가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모던 타임즈>에 대한 분석을 이어가고자 한다.

 

첫 번째로 ‘무성 영화’이다. <모던 타임즈>가 유성 영화 시대에 제작된 무성 영화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무성과 유성 사이에서 다소 서성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서 이 영화를 온전한 무성영화로 정의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거듭 장면들을 돌이켜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무성 영화로 분류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평등하다.

 

특히 가사를 적어 놓은 소매를 잃어버린 채플린이 엉터리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뜻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웃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찰리 채플린의 지향점이자 그의 영화적 유머만이 지닌 평등함이다. 시대를 역행해 무성 영화를 고집한 이유는 분명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영화에서 음성이라고 할 것은 감시 모니터를 통한 공장장의 명령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정도가 전부이다. 배우가 직접적으로 대사를 말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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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라디오나 모니터 등의 매체를 통해서만 음성을 등장시켜 이를 OST와 같은 음향 효과의 일부로 사용한 것이다. 무성 영화는 인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음표로 옮긴 것 같은 OST들에 집중함으로써 블록버스트 영화에 눈과 귀가 길들여진 우리에게 색다른 감각 경험을 선사한다.

 

비극과 희극이 한 데 교차한 <모던 타임즈> 특유의 서사적 분위기를 위해서는 어쩌면 대사보다도 더 대사 같은 역할을 해주는 영화 음악을 쓰는 게 효과적임을 인지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무성 영화를 고집한 감독의 선택이 매우 적절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두 번째 키워드는 ‘시대’이다. <모던 타임즈>를 논하며 시대적 배경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던 타임즈>만의 독특한 갈등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영화의 안타고니스트가 시대 사조 그 자체라는 점에서 그렇다. 풀어 말하면 주인공은 근대성이나 산업화라는 배경과 지속적으로 갈등하게 되는데, 결국 그에게 승리하는 방식이 가히 채플린답다고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와의 갈등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즉, 기꺼이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모던타임즈>의 주인공은 그렇기에 20세기를 혐오하는 21세기 사람들에게 기꺼이 사랑받게 된다.

 

극중 주인공이 사는 시대, 그리고 여전히 이 사회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고 노동자들을 그 거대 시스템의 일부로서 다소 수동적으로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인간 주체가 사물화, 혹은 대상화 된 사회에서 노동자는 표면적으로는 자본의 명령에 따라, 시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자아가 시대의 잔여물처럼 남아 있다.

 

<모던 타임즈>의 주인공은 그러한 당시 노동자들의 공통된 자아가 극대화된 형태로, 이러한 딜레마를 교묘하게 만져준다. 그는 이방인만이 지닐 수 있는 특성으로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건넨다. 이방인이라도 괜찮다는,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냐는 메시지를 특유의 위트로 뭉쳐내는 찰리 채플린의 유머는 인간 존재 따위는 무력해지고 마는 시스템의 절대성마저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매력을 지닌다.

 

기름칠을 해야만 돌아가는 차가운 톱니바퀴 사이에서, 응고된 사람들의 마음에마저 한 번의 기름칠을 통해 승리를 안겨준 채플린은 가히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할만 하다고 느꼈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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