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심이 된다는 것 [패션]

바다워싱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7.18 13: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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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심이 된다는 것

 

옷에 관해서라면, 나는 취향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좋은 착장’에 대한 나만의 기준도 없었습니다. 그저 친구들이 좋다고 하는 옷을 자주 사 입었습니다. 유행하는 옷들을 따라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유튜브 채널에서 ‘캠핑’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패션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캠핑?’


의문이 든 나는 그들이 말하는 캠핑이 뭔지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캠핑이란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옷이나 신발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새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옷은 그냥 필요할 때 가서 사면 되는데, 왜 밤 새워가며 사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옷을 사기 위해 길바닥에서 보내는 하루쯤은 너끈히 참아내는, 그들의 진심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무언가에 진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옷에,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가질수록 ‘패션’이라는 분야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매니아들도 많았습니다. 매니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아이템을 모으며 각자의 진심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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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님을 모으는 사람들



그중에서 특별히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데님을 모으는 사람들입니다.


데님은 입는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옷입니다. 착용자의 자세, 습관, 하는 일에 따라 데님은 변해갑니다. 어떤 자세를 자주 취하는지에 따라 주름이 어떻게 잡히는지가 달라집니다.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바지의 색깔이 미묘하게 바뀌어갑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변화를 겪지만, 데님은 특유의 단단함으로 인해 이런 변화들을 더 오래 견딥니다. 데님은 오래, 자주 입을수록 착용자만의 것으로 변합니다.

 

그러니까 데님에는 착용자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입니다. 데님을 모으는 사람들은 멋진 워싱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월의 흔적 같은 주름무늬와 염료가 탈락하면서 만들어진 오묘한 빛깔을 좋아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새 옷을 좋아합니다만, 데님을 모으는 사람들은 새 옷, 헌 옷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옷에 쌓일 혹은 이미 쌓여있는 시간을 기대하고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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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다워싱



얼마 전, 바다워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브랜드 ‘데밀’의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디엄스토어’의 유튜브에서도 바다워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다워싱이란 말 그대로 바다에서 청바지를 워싱하는 일입니다. 청바지를 워싱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1. 청바지를 입고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다.

2.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젖은 청바지에 모래를 마구 비빈다.

3. 1,2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바지와 모래의 마찰 때문에 염료가 탈락하고, 멋있게 빛이 바랜 청바지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볼 때는 세상 미련해 보이는 행위였습니다. 남들 다 신나게 놀고 있는 해수욕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바지에 모래를 문지른다니. 누가 봐도 이상한 행위임을 아는 데에도 나는 묘하게 바다워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땀이 뻘뻘 나는 여름의 해수욕장에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바지에 모래를 문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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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릉으로 떠났습니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안목해변 귀퉁이에서 바다워싱을 했습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는 물론이고,  모래를 문지르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예쁜 청바지를 얻을 수 있겠지, 하며 2시간 동안 모래를 문질렀습니다.


바다워싱을 하고 난 후,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바지를 입었습니다. 내가 미숙했던 탓인지 그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살펴보니 많이 문질렀던 곳의 색깔이 옅어진 것이 보였습니다. 고양이 수염 같은 주름무늬들이 곳곳에 생겨난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미약한 변화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흔적들은 멋있는 무늬일 뿐만 아니라 그날, 뜨거운 햇빛 아래 앉아 모래를 문질렀던 나의 2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두 시간의 땀과 손 떨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데님에 나는 마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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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해수욕을 즐기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나 바지에 모래를 문지르는 사람들처럼.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은 바보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순수함이 그들을 빛나게 합니다.

 

나는 아직 진심이라고 부를 마음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내 진심을 쏟을 무언가를 만날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내 진심을 만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진심을 훔쳐보는 중입니다.

 

당신의 진심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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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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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아름
    • ㅍㅎㅎ
      패션을 모르는 나는 처음에 바디워싱 인줄 알았다.
      브라질리언 왁싱처럼 ..
      바다워싱..처음 들어봄.
      글이너무 좋아 끝까지 읽게 되네요.
      어떤취미나 일에 진심 ..
      마음을담아 진심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한삶 일것 같아요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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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일렛
    • 옷에 대한 애정은 넘치면서도 같은 옷만 입게 되는게 조금은 부끄러웠는데 요즘 데닙만큼 믿을 수 있는 옷이 있을까했어요. 오래, 내 몸에 맞게 변하는 청바지는 참 효자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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