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의 흐름 속에서 치열한 사랑을 느끼며 - 막스 리히터 스페셜

글 입력 2022.07.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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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jpg

 

 

막스 리히터를 처음 접한 것은 피겨 스케이팅을 통해서였다.

 

한 러시아 선수가 막스 리히터의 The Departure와 November를 엮어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원곡을 찾아 듣게 되었다. 덕분에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비롯한 막스 리히터의 대표곡들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의 팬이 될 수 있었으나, 올해 초 있었던 올림픽 도핑 파문으로 인해 그 러시아 선수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막스 리히터는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케스트라를 관람하고 왔다. 처음 방문한 오케스트라 공연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졸아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조율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 곡이 끝날 때까지 모든 구간이 흥미로웠다.

 

 

 

음악 뒤에 사람 있어요


 

실제 공연장에서 관람한 오케스트라는,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과 현장감이 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음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음악 뒤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재생 시간을 빼곡하게 채워 연주되는 디지털 파일과는 달리, 오케스트라 현장은 어떤 악기가 쉬고 있고, 어떤 악기가 연주되고 있으며, 서로 어떤 부분을 연주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활을 켜는 각도나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통해 소리를 더욱 쉽게 분리해서 들을 수 있으며, 하프시코드와 같은 조금 생소한 악기들의 소리를 찾아 듣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도, 곡이 끝날 때마다 자세를 가다듬고 악보를 넘기는 소리, 옆 사람의 악보를 대신 넘겨주는 모습 등을 실제로 접하면서 연주자들이 치열하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즐거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 공연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곡으로 시작해,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현실로 돌아와 21세기의 선율을 연주한 뒤, 18세기의 곡을 21세기에 재해석한 곡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비발디 사계>는 고전적이지만, 앞서 연주된 그 어떤 곡보다도 (다른 의미로) 현대적이다. 생활감이 있기 때문이다. 전화 상담원을 기다릴 때, 결혼식장 등에서 시간을 죽이며, 또 심지어 정규 교육과정에까지 편성된 <비발디 사계>는 오래된 것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익숙하다.

 

막스 리히터의 ‘리콤포즈드’는 이런 <비발디 사계>를 더욱 ‘현대적’으로 만들었지만, 오히려 <사계>가 고전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이러한 곡의 특성은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시간선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랑의 확장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곡들에는 각기 다른 의미로 사랑의 맥락이 있다.

 

<무인도>, <레 보레아드>는 연애적 사랑의 이야기를, On the Nature of Daylight는 반전(反戰), 반폭력이라는 인류애를,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사계>에 다시 빠져들고자 하는 리히터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다. 연인, 사람, 그리고 음악(어쩌면 계절)으로 사랑이 점차 확장하는 서사가 재미있었다.


특히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이끄는 현악기들의 소리에는 인류애에 대한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묵직함이 있었다. 어쩌면 전쟁이 아직도 멈추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피겨 스케이팅 도핑 파문을 보며, 체제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어린 선수들을 학대하고, 스포츠 정신을 더럽히는 행위에 분노했다. 결국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한때 내가 좋아하던 선수들의 입을 전쟁을 부추기는 메신저로 빌려 사용했다.

 

전쟁을 반대하며 곡을 쓴 막스 리히터를 알려줬지만 이제 더는 좋아할 수 없게 된 러시아의 선수를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서야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같은 음악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 음악의 메시지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세상이 그런 식으로 변화하기에 음악을 비롯한 예술이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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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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