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on] 아픔을 꼭 극복해야만 할까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공연]

평범함 그 주변 어딘가
글 입력 2022.06.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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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극에 자살 충동 및 시도(자해), 정신 질환을 앓는 주변인이 있는 사람 혹은 당사자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관람에 대한 주의를 당부합니다.

 

 

넥스트 투 노멀.jpg

 

 

다들 너무나도 완벽한 내 가족

내겐 매일 너무 행복한 날들

골칫거리 아들과 따분한 남편

딸은 천재지만 완전 또라이


아들, 딸, 남편, 그리고 아내로 이루어진 굿맨 가족은 3층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아침을 준비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나는 그냥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을 뿐이야… 바닥에서.”


게이브와 나탈리의 엄마이자 댄의 아내인 다이애나는 16년 전 조울증(양극성 성격장애)을 진단 받은 인물이다.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댄은 그런 다이애나를 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항상 다이애나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겼기에 딸인 나탈리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소외된다. 아들인 게이브는 어떨까?


게이브는 16년전 죽은 아들, 그리고 다이애나의 망상으로 나타나는 존재이다. 게이브는 다이애나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그 아픔을 잊기 위한 탈출구가 된다. 자연스레 나탈리에게 관심을 주는 시간보다 게이브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이런 행동은 나탈리에게 상처가 된다. 댄 또한 게이브를 잃은 아픔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이렇게 게이브가 존재함으로써 댄과 다이애나가 바라는 평범한 가족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아픈 기억이 모두 없어진 다이애나는 완벽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이애나가 약을 변기통에 모두 버리고 자살 소동을 일으키자 의사는 댄에게 ECT(전기충격요법)을 권한다. 그리고 전기충격요법을 받은 다이애나는 결혼 이후의 기억을 거의 다 잃어버리게 된다. 댄은 좋은, 예쁜, 왜곡된 사실로만 다이애나의 기억을 채우려고 한다. 다이애나는 머리가 맑아지고, 더 이상 우울한 기분도 들지 않으며, 망상도 사라졌지만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상처와 화상 박살난 곳

뇌 속이 아니라

내 영혼이면 어쩔래?


겨우 8개월 된 아들을 잃은 다이애나에게 의사는 매뉴얼에 따르면 4개월 이상 지속되는 슬픔은 병적이며, 약물치료가 권장된다고 했다. 물론 그게 의사가 ‘처방’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픔을 치료하려고만 하는 의사들과 정상적인 아내, 평범한 가정을 바라는 댄 사이에서 다이애나가 본인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증상이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이 건강해졌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결국 게이브는 다시 다이애나에게 돌아온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완벽과 평범이 무엇인지.


니가 미쳐가면 같이 미쳐줄게 그래

때론 삶은 광기

미치는 건 나 자신 있어

광기엉망완벽일 수 있어


나탈리는 헨리라는 남자친구가 생긴다. 헨리는 굿맨 가족의 식사에 참여하면서 가족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된다. 나탈리는 헨리와 함께하면 엉망인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고도 말한다. 그럼에도 헨리는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미칠지도 모르겠다는 나탈리의 말에 함께 미쳐준다고 한다. 헨리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완벽이라는 개념을 뒤틀어버리는 인물이다.


정말로 완벽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광기와 엉망이 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삶에서는 헨리의 말대로 광기와 엉망이 완벽일 수 있을 것이다.


“너한테만은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난 그게 뭐인지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


평범 같은 건 안 바래

그건 너무 멀어

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


다이애나는 게이브를 인정하고, 나탈리와 16년만에 게이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는 다이애나의 말에 나탈리는 평범함 그 주변 어딘가에서 견디겠다는 대답을 한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아픔을 끌어안은 채로 새로운 삶과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보려 집을 떠난다.

 

지금껏 계속 상처, 즉 게이브를 외면하고 있던 댄도 “내 아들 가브리엘”이라고 아들의 이름을 입으로 내뱉으며 아픔을 직면하고 받아들인다. 의사의 상담 권유도 수락하며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간다.


매일 내게

구름과 비를 내려줘

아픔은 삶의 일부


다이애나는 병을 앓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에 그 아픔을 잊지 않고 살아나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이 나아감은 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아픔 혹은 정신 질환을 이겨내야만, 극복해야만 할까?


세상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픔도, 영원히 함께할 수밖에 없는 질환도 존재한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그런 것을 모두 끌어안은 채 평범 그 근처 어딘가에 살아가는 삶도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 혹은 완벽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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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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