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해방을 선택하기 [드라마/예능]

타인은 나의 구원일 수 없다. - <나의 해방일지>
글 입력 2022.06.1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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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완결된 JTBC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따뜻한 인간애를 담은 이야기로 수많은 팬을 양산해낸 <나의 아저씨>의 작가가 4년 만에 들고 나온 작품이다.

 

해방일지는 의미심장한 제목과 진부하지 않은 캐스팅으로 저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드라마 같은 잔잔하고 낮은 텐션을 유지하며 요즘 청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마냥 희망적이지도 않고 패배주의적이지도 않은 중간의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공감하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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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사내 동호회에 가입하라는 강한 권유를 받던 세 사람은 그냥 없던 동호회를 새로 만들기로 한다. 이름하여 ‘해방 클럽’.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자유 클럽’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굳이 선택한 까닭은 듣는 이에게 애써 낯설게 하기 위함이다. 낯설게 해서 그 의미를 곱씹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추앙’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눈에 선 단어가 작중에서 몇 번이고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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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하면 역시 염미정의 대답을 빼놓을 수가 없겠다.

 

“인간으로부터요.”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정말 많지만, 그 상황들을 만드는 건 결국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많은 사건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해방에 관해 말한다. 답답하고 갑갑한 것에서 뚫고 나가는 것이 해방이라면, 작가가 말하는 해방의 방법은 ‘스스로 해방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염미정은 사람들로부터 지쳤고 외로운 느낌에 시달린다. 이에 버려지는 것 말고 스스로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밀고 나간다.

 

자신만큼 지쳐 보이는 구 씨와 서로를 추앙하기로 한다. 상대가 잘되든 못되든 관심 없고 세상 사람들이 다 뭐래도 그저 서로 절대적으로 응원해주는 것. 그런 맹목적인 정을 주면서 오히려 채워지는 사람이 된다.

 

염기정은 이번 해엔 아무나 사랑하겠다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아이가 있어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오히려 서툴렀던 관계들에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불편한 자리와 사람도 피하지 않고 이제는 남의 입장까지 살피는 넉넉함을 보인다.

 

염창희는 미워했던 옆자리 팀장을 덜 미워하기로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선택한다. 자꾸만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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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해방에 관해서 능동성이 강조된다. 구 씨는 염미정의 추앙 제안에 힘입어 골방에서 벗어난다. 염미정과 서로 응원하는 호혜적 애정 관계를 형성하지만 구 씨의 진짜 현실은 산포가 아닌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그의 절망과 재생의 공간인 산포를 벗어나 서울로 왔으나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외롭고 공격적인 생활에 다시 젖어 든다.

 

그러다가도 산포를 다시 떠올리고, 불행을 미리 맞으며 안심하는 대신 작은 행복을 모아가기로 한다. 염미정의 도움이 있었지만 결국 해방을 선택하는 건 자기 자신이며 누군가가 나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더불어 산포라는 유리된 공간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혀 해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성장한다.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기로 결심한다. 나에게 반하는 순간을 쌓아간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긴다. 약한 느낌에서 벗어나 더 중요한 것을 기꺼이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서사를 펼친다. 이때 누구 하나 대단한 구원자가 아니며 모든 인물이 백마 탄 왕자님처럼 현실로부터 유리된 존재가 아니다. 즉 무결점의 완벽한 그대가 아니라 직업도 성격도 취미도 입체적이고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메인 남주인공인 구 씨의 직업은 호스트바 사장이기까지 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직업인 ‘본부장님’ 캐릭터는 애초에 이 세계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주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다. 각자의 성격을 십분 살린 내레이션도 대단하다. 저마다 인물 간에 형성한 관계도 다채롭고 재미있다.

 

구 씨가 멀리뛰기를 하는 순간에 반한 창희가 무용담을 계속해서 말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참 귀여웠다.

 

*

 

대단한 ‘사이다’가 있지도 않고 간이 덜 된 듯한 밍숭맹숭한 극이지만 생생하고 따스함으로 온기를 전한다. 어딘가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 작고 큰 갈등을 보여주며 우리 혼자만 갖고 있던 고민은 아니라고 대중 앞에 꺼내 놓는다. 서로를 도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희망이자 위로이다.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해방하기를 선택하자. 타인은 나를 구원일 수 없다. 해방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내며 서로를 추앙하고 든든히 지지하자.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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