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에게 좋은 글

좋은 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글 입력 2022.06.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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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많은 글을 마주했다. 제품의 사용설명서, 영화의 자막, 상가의 간판들. 초등학생 때는 다독왕을 뽑는다는 말에 아침 내내 책을 품에 끼고 있기도 했다.

 

내게 있어서 글은 언제나 읽는 것일 뿐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작가와 같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평생 긴 글을 쓰는 일이 없으리라 지레짐작했던 것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가장 먼저 쓰게 된 글은 다름 아닌 보도자료였다. 보도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떠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뢰도를 위해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써야 했다. 그리고 누구든 쉽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가 필요했다.

 

의외로 글을 창작해서 쓰는 일이 빈번해졌다. 처음이 보도자료였다면, 두 번째는 카피라이팅이었다. 카피라이팅은 홍보 마케팅에 있어서 짧은 문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글쓰기였다. 보도자료의 글쓰기와 달리 사실보다는 재미가 우선이었고, 깔끔하기보다는 말장난이 필요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글도 다양하지만, 쓰는 글도 다양하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에 따른 기호도 다양한 것이 당연하다. 누군가는 짧은 문장으로 깔끔하게 이루어진 글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많은 표현이 들어가 머릿속에 절로 상상되는 글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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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팬레터'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김해진이라는 천재 소설가가 편지 속 의문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김해진은 이 히카루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보내는 편지와, 함께 써 내려가는 소설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소재는 공연과 소설에 꽤 빈번하게 쓰인다. 비슷하게 '시라노'라는 작품도 시라노의 편지 하나로 록산과 사랑을 키워나가게 된다. 팬레터의 김해진에게는 히카루라는 여인이 쓴 글이 자신에게 좋은 글일 것이다. 또한, 시라노의 록산에게는 시라노가 쓴 글이 좋은 글일 것이다.


결국은 자신이 사랑하는 글이 좋은 글이며,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사랑처럼 좋은 글도 다양하다.


애초에 '좋다'라는 사전의 뜻도 굉장히 주관적이다.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만 하다.

 

 

보통 이상이라는 것은 오직 무언가를 직접 느끼는 나만이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보통 이상이라고 느껴도 다른 사람은 보통 이하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좋음'이다. 온전히 글로만 이루어진 소설에서 취향이 있고, 마니아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나에게 좋은 글


 

그동안 많은 책과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다. 바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 대학 시험에서 답안으로 제출한 것이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이 이야기는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종교학 시험에서 '물이 와인으로 바꾼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라는 문제에 대한 바이런의 답이었다.

 

시험이니만큼 작은 글씨로 시험지를 꽉 채운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저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 바이런의 글은 히카루의 편지를 받은 김해진처럼, 시라노의 편지를 받은 록산처럼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 글에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글은 결국 '나에게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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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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