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 잘 살아보려는 기록 '오늘도 자람'

글 입력 2022.05.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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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버릇이지만 욕심나는 무언가를 할 때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고 질질 끌곤 한다. 기한을 넘어서 할 일을 노려보는 것이 그다지 쓸모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오늘도 자람>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그러했다. 결과로 나타날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에도, 붙잡고 조금 더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늘어졌다. <오늘도 자람>을 이렇게 소개할 수는 없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나를 휩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자람 작가님이 이런 나를 보았다면 책을 잘못 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물론 책 속에서 언급되는 사명감은 방금 언급한 것과 조금 다르다. 주변에서 깨어 있고, 생각 있는 사람이면 응당 관심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주제가 있고 그것에 열정을 쏟으라고 재촉 받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를 위해 노력하는 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허세가 자꾸 끼어들기 쉽다는 것이다. 이정도 대답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 기대하며 주워들은 지식과 의견을 그대로 뱉어낸다. 진심으로 공감한 의제가 아니라면 앵무새처럼 주변의 합당한(듯 한) 발언을 반복하기만 할 수도 있다. 의제 자체가 무의미한 입장 대결로 느껴질 수도 있기도 하다. 허세 어린 사명감은 '나"의 사명이 아니고 공허하게 자신 안에 들어 앉기 쉽다. 진짜 나를 가리는 것은 덤이다. 결국 사명감을 경계하는 것은 결국 나를 잘 이해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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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람>은 공연예술가, 소리꾼, 뮤지션, 음악감독, 배우, 작창가, 작가로 살아가는 '이자람'의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의 스케줄과 할일 목록이 써 있기도 하고 과거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 다르지만 300쪽이 조금 되지 않는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이자람을 소개하는 많은 직업도 많은 성취가 '잘' 살아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가를 두고 부지런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여러 단계가 추가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으면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라는 부연 설명. 이에 공감하면서도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을 꾸준하고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라는 점이 멋졌다. 무사히 공연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신의 체력의 한계와 소멸점을 감각하고 살피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하루하루 매일 있는 연습 시간과 식사 시간, 그 외의 모든 순간에서도 자기 자신을 돌보며 삶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에 별 거 아니라듯 가볍게 말할 수 있다.


순간 등장하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감정의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현실의 문제를 알아보기도 한다. 감정은 다른 문제에서 솟아난 깃발 같은 것이다. 깃발이 있는 곳에 가면 감정이 온 곳을 알 수 있으니 감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분파'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작가는 자신의 변화를 예민하게 파악하지만 그것이 공연을 마무리하는 데 영향을 주진 않는다. 공연을 이끌어가는 과정에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나더라도 공연을 완주하는 데에 집중한다. 몰입하기 힘든 날에도, 관객 반응이 예상과 달라도 쌓아올린 연습의 시간이 공연자를 지탱한다. 홀로 소리와 대면했던 수많은 연습과 수 차례의 공연 경험에서 자신의 임계점과 공연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공연이 시작되면 공연자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때 공연자가 무너지지 않고 무대와 객석을 채우는 건 역시나 연습이다.


때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습이 잘 되거나 잘 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방에 들어가 대본과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작가의 연습 시간 묘사에서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연습에 임했던 시간이 쌓여 만들어내는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악착같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생긴 의문이 운이 좋게도 책에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바로 83쪽에 '자신에게 둔해지면 점차 나에게도 둔해진다. 둔해지다 보면 서서히 잃게 된다 소중한 것을.' 이라는 문장이 있다. 행복한 나를 위해, 단단하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사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아무튼 나를 위해 애쓰는 것이었다.


이 책은 화려한 말이 가득하진 않다. 허세 없이 담백한 솔직함. 때로는 너털웃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조하는 웃음이 느껴지고 조금은 낯선 표현도 많다. 그렇지만 이 책의 매력은 긴 수식어 필요 없이 멋지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오늘도 자람>은 이자람 작가가 자신을 이해하고 지켜온 과정을 보여주고, 앞으로 이자람 자신과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녹아 있다.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책도 아니고 자극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자꾸만 책을 넘기고 싶은 것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가 존경스럽고 탐이 나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검은 터널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상습적으로 찾아오는 막막한 시간. 확신도 자신감도 빼앗아 가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사실 터널에서 나온 줄 알고 있었지만 잠시 비친 빛줄기에 속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삶은 내내 터널 속에 있기 때문에 일상의 어둠을 달래가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만나는 책에서 터널을 걸어가는 데에 위로와 응원을 얻으면 이토록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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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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