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정한 종교의 가치는 누가 실천하고 있는가 [영화]

영화 <소년 아메드> 리뷰
글 입력 2022.05.16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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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 아메드>는 사람이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졌을 때 어떤 행동을 자행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인 아메드는 무슬림으로서 종교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기도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여 매일 쿠란과 매트를 들고 다니는 것, 선생님을 배교자로 간주하여 죽이려 드는 행동 등은 그가 얼마나 종교에 세뇌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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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스 선생님을 죽이려 들어 전담 사회복지사의 돌봄 속에서 생활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선생님을 죽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과거 범행 도구로 칼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아메드는 항상 금속탐지기로 몸을 조사받게 되는데, 이러한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칫솔의 끝을 갈아 범행 도구를 만드는 장면은 치밀함을 넘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드는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중후반부터 그의 행동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농장 자체를 시큰둥하게 여겼던 그였지만 루이즈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조금씩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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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의 행동이 완전히 반전되는 순간도 드러난다. 바로 아메드가 차에서 내려 이네스를 죽이기 위해 그녀의 집 지붕 위로 올라갔지만 사고로 추락을 겪은 순간이다. 이후 아메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엄마를 부르기도 하고, 청결을 중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흙을 묻히며 바닥을 기어가기도 한다. 여기에 범행 도구를 위해 가져온 막대기로 이네스 선생님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고, 그녀가 놀라 뛰쳐나왔을 때는 여자와 악수도 하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손을 덥석 잡기도 한다. 무엇보다 변화된 점은 그가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마지막 장면은 관람객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한다. 필자는 인간의 연약함, 진정한 회개, 그리고 포용이라는 세 가지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지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무슬림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소년이었다



우선 아메드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명목 하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극단주의적 사상에 경도되어 사회적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보편적으로 종교에서 강조하는 사랑과 평화 등의 가치를 곡해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던 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야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까지 절대자의 뜻에 따라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겠지만 아메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그가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이전에 한 명의 소년이자,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엄마를 필요로 하고, 또한 살고 싶어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회개했을까


 

가장 살고 싶어지는 순간에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진정한 회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아메드는 루이즈에게 마음을 품고 잠시 키스를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기도 시간에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교리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된 행위로 회개를 거쳐야 하는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그보다 광범위한 윤리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선행되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에 대한 존중과 반성의 태도는 결여된 채 절대자의 앞에서만 회개를 하는 것을 진정한 회개로 볼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과연 참된 종교인의 자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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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절대자의 앞에서는 용서를 받았을 지라도 이는 진정한 회개로 보기 어렵다. 조금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사람을 죽인 후 교회에서 잘못을 뉘우치는 행위는 온전히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일 뿐, 현실에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다. 특히 아메드의 경우 루이즈와의 키스를 다루기 이전에 이네스 선생님을 죽이려 시도한 전적이 있다. 이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살인미수 행위이고, 나이가 어린 것과 상관없이 중대한 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 그는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이네스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했다. 과연 그가 그렇게 다치지 않았더라도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했을까. 여러 장면을 통해 그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죄를 회개하려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포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아메드를 보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그녀가 바로 달려와 구급차를 불러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주목해 볼만 하다. 과거 아메드의 행동을 생각하면 이네스 선생님은 충분히 그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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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먼저 기꺼이 다가가 도움을 준다.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떠올리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문을 열고 아메드의 모습을 본 후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네스는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그에게 다가갔고, 아메드가 용서를 구했을 때는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손을 잡기도 했다.

 

상황을 보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망설이지 않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어야 한다’와 같이 보편적인 윤리 규범에 따라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어쩌면 종교에서 강조하는 선한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며


 

각 종교마다 세부적인 교리는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종교는 사회에 도덕과 윤리, 관습을 제공해왔다. 대부분의 종교가 살인, 절도 등의 행위를 규탄하고 사랑과 인류의 평화를 강조하는 것이 이에 부합한다.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내치면서까지 온전한 무슬림이 되고자 했던 아메드와 교육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메드를 포용한 이네스를 비교해보자. 과연 진정한 종교의 가치는 누가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소년 아메드>는 종교와 포용이라는 두 측면에서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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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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