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예술은 공복에 하세요

현주소 지하방이 가장 춥고 아름다워
글 입력 2022.05.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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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흥행했던 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 2'에서 래퍼 빈첸은 이렇게 말했다.

 


 

 

비관론자의 mind 피해망상 100% 찍고 

이제 다시 날 탓 할 차례 

현주소 지하방이 가장 춥고 아름다워 

고맙고 또 아프고 아빠에게는 너무 미안해

 

- 빈첸, 전혀(Feat. 우원재) 中 -

 

 

사실 음원 공개 당시에는 아티스트의 플로우와 톤이 좋다는 생각, 그 이상의 평가를 내린 적이 없었다. 조금 더 떠올려보자면 '가사에서 축축한 냄새가 난다' 정도? 개인의 취향이지만 내게 빈첸의 가사는 지금 봐도 여전히 '가사가 너무 좋아요' 라고 속없이 호평하기에는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 인간을 찢어발기는 고어물을 보며 '너무 좋아요' 라고 평하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한 것과 동일한 논리에서다.

 

하지만 2022년 현재의 나에게, '현주소 지하방이 가장 춥고 아름답다'는 이 한 구절만큼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가장 춥고 어두운 지하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공복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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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나는 꽤 '예술적인' 사람이었다. 모든 감각이 상당히 예민했으며 응축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이 예민한 것과 예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예술은 재능의 영역이지만, 그것이 꽃피게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피로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 놓일 것, 그리고 그것을 해소할 창구가 거의 전무할 것.

 

듣기만 해도 끔찍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피로도는 극상인데 해소할 방법이 없다니.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는 예술은 이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빚어진다. 고흐, 고갱, 모딜리아니, 모네, 하다못해 피카소도 가난을 겪었다. 이들 중 일부는 생전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이들이 일정 기간동안 극한의 상황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도피처가 바로 예술이었다.

 

사실 유럽까지 갈 것도 없다. 히트곡 '아낙네'로 전성기를 시작한 위너의 송민호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낙네' 발매 전부터 극심한 공황장애를 겪어왔다고 고백했으며, 같은 프로그램 다른 회차에서 아티스트 자우림의 김윤아 역시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잠식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매를 굵기별로 맞추던 아버지의 지도 아래 통금이 8시였던 대학 시절, 그가 토해낸 곡 중 하나가 바로 'Hey Hey Hey'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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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에 내몰릴 것, 유일한 도피처가 예술일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 '둥근' 사람들은 첫째 조건을 만족시킬 확률이 매우 낮다. 또한 이들의 곁에는 늘 사람이 북적이고 있으므로 굳이 예술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있다.

 

하지만 매사에 부정적이고 감각이 예민한, '모난' 사람들은 정확히 반대다. 그들은 일상적인 갈등에도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오른다. 즉 매일이 극한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성질이 이렇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다. 자연히 이들은 타인의 손 대신 펜, 붓, 또는 마이크를 붙잡게 된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항상 무언가 억눌리고 결핍된 채로, '배고프다'.

 

 

 

현주소 지하방이 가장 춥고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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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 다시 나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보려 한다. 천성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는 고백건대 꽤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으며, 현재까지도 이 천성은 고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 나는 분명 '예술가'였다. 전교의 모든 선배들이 나를 따돌려 매일 투신을 결심하던 그 시절, 나는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소설을 뱉어내 공모전 수상을 했다. 고3이고 뭐고 중고서점에 달려가 몇 권이고 책을 사재낀 뒤 한동안 책 더미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또 작사를 했다. 정말 불행했는데, 행복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가장 춥고 아름다운 지하방'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까탈스럽지만 너무 많은 자유를 얻게 된 나는 더 이상 '지하'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고 싶은 게 많을 때마다 그것을 제한했던 '지하'가 더는 없으므로ㅡ나는 배부르고 등 따수운 방에 드러누워 노도 젓지 않고 표류하거나, 혹은 사방팔방으로 노를 젓느라 결론적으로는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루종일 작고 유일한 창문을 바라보면서, 그 빛 단 한 줄기에 목숨도 걸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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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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