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피소드답지 않은 존재감 '한수와 은희'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4.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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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4월 9일에 시작했다. 토, 일 9시 10분 tvn에서 방송하며,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다. 제주도가 배경이라 예쁜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맑고 예쁜 배경과 어울리는 밝은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극 중 인물들의 삶 또는 처한 상황은 고달픈데, 풍경은 환하고 예쁘기만 하다. 그 풍경이 마치 인물들을 응원하는 것 같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보통 드라마는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달라진다. 덕분에 시청자는 넓은 시야로 인간을 보고, 다양한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현재 극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어서 다 풀지 못한 에피소드가 많다. ‘한수와 은희’만 빼고. 이 에피소드는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았는데, 짙고 긴 여운 때문에 ‘우리들의 블루스’를 계속 챙겨보는 시청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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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한수와 은희’에서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한수와 은희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같은 추억이 있지만 중년이 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수는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은희는 제주도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로 발령받은 한수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 은희와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은희에게 한수는 첫사랑이었고, 한수도 은희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한수는 여전히 자신을 근사하게 봐주는 은희가 고맙다. 이제 근사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착잡해한다.


한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상황은 불안정했다. 그는 딸의 골프 유학을 위해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보냈는데, 그의 월급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딸의 입스(Yips)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여기저기서 돈을 구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딸이 형편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던 한수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은희의 직업은 한수에 비해 안정적이지 않지만, 한수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상황에 있다. 돈 많은 건물주에 책임져야 할 가정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돈에 욱하고, 돈 쓰는 재미를 느껴본 적도 없다. 주변에는 돈 빌려달라는 사람이 많다. 외롭고, 재미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은희에게 설렘이 찾아왔다. 한수를 다시 만나고부터.


은희의 첫사랑을 지켜주고 싶었던 한수는 돈 빌려달라고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아내와 별거 중이고 이혼 예정이라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은희와 단둘이 추억여행을 떠난다. 은희의 어깨에 손을 올려보고, 이어폰을 나눠 끼며 음악도 듣고, 솜사탕도 먹고, 좋은 호텔도 가면서 데이트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때, 은희는 다른 친구들을 통해 한수가 거짓말했다는 것과 한수의 경제적인 상황까지 모두 알게 되고, 한수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미련까지 떠나보낸다. 친구로서 한수에게 돈을 보내준 은희에게 한수는 그 돈을 돌려주면서 사과한다. 본인의 선택과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딸과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수는 희망퇴직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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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불륜이 연상되는 장면들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이 맞나 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넋이 나간 채로 드라마를 보다가 이야기 마지막쯤 은희의 대사를 듣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은희 : 근데 너희들은, 너는, 인권이, 뻑하면 나한테 돈 빌렸으면서 무사 나가 한수한테 돈 빌려주면 안 되는 거? 

호식 : 친구한테 거짓말하는 게 무슨 친구야!

은희 : 이유가 있었겠지.

인권 : (스피커폰으로 듣고) 무신 이유!

호식 : 친구한테 거짓말할 이유가 대체 뭐라!

은희 : 친구? 너희들이 걔한테 친구라? 웃기고 있네. 야, 친구라는 게 형식이는 여편네 핑계, 주식 핑계 대고 돈 있으면서 돈도 안 빌려줘 놓고 여기저기 말하고 돌아다니고, 재민이는 돈 빌려줘 놓고 사채업자처럼 이자 이할이나 받아먹고, 너네 무슨 경사 난 듯 온 동네 떠들고 다니며 사람 뒷조사나 하고, 나는 개 쪽 주고.

인권 : 야, 너는 한수보다 나으니까,

은희 : 왜 한수보다 나은디? 나가 돈 있어서?

인권 : 야 너 무슨 말을!

은희 : 내가 이렇게 말 안 하게 생겼수냐? 돈 있는 나도 챙기고, 돈 없는 한수도 친구면 챙겨야지!

호식 : (같이 통화하다가 들어가려는 인권에게) 야, 왜 가?

인권 : 은희 말이 다 맞는디, 뭔 말을 더해!

호식 : (들어가는 인권을 뒤로 하고, 다시 은희와 통화하는) 우리도 속상하니까.

은희 : 야, 우리가 걔한테 무슨 친구라! 너도, 나도 걔한테 친구 아니야. 걔는 우리한테 친구라고 왔신디 우린 지금도 이렇게 뒷담화하잖아!! 

 

- ‘우리들의 블루스’ 3화

 


반전이었다. 갑자기 ‘한수와 은희’ 에피소드의 깊이와 무게가 확 느껴졌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곱씹으니 불륜 전개로 가는 듯한 분위기를 신경 쓰느라 놓쳤던 핵심들이 보였다.


한수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동생과 부모의 희생 덕에 대학까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는 형편 때문에 운동을 포기한 것에 대한 한이 있었다. 꿈을 포기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기에 골프를 포기하겠다는 딸을 말렸다. 골프 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 형편 때문에 거짓말한다고 여겼다. 무리해서라도 뒷바라지하려는 한수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쏟아 부은 것이 아까워서 억지로 계속 운동을 시키는 부모의 심리와 본인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어 하는 부모의 욕심을 꼬집었다.


한수를 통해서 돈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은희를 통해서는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직업과 경제적인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직업적 성공과 부는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했다. 은희의 대사를 통해 인간을 돈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수가 은희에게 거짓말하고, 추억여행 가고, 은희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전개는 절박하다고 한 선택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며, 그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다시 아무렇지 않게 다음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보자, 노래 불러달라고 말하는 한수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내가 아직 중년이 아니라 모르는 것일까? 중년이 되고 나서 다시 이 에피소드를 본다면 한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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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작가의 통찰력과 인간을 향한 깊고 따스한 시선이 잘 녹아있었고, 생각거리를 많이 안겨준 에피소드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빛나고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수와 은희를 볼 때는 가슴이 시렸고, 무너지는 한수와 상처받은 은희를 볼 때는 아팠다. 이 에피소드의 알맹이를 발견했을 때는 감탄했고, 머릿속은 생각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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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와 은희’는 온전히 단편 드라마 또는 단편소설 같았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제목보다는 ‘한수와 은희’라는 제목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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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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