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God bless you" - 연극 Is God Is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글 입력 2022.04.2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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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서사에 녹아든 인물이 극적으로 요동치는 감정에 휘말린 것을 직관하는 일이 얼마나 진귀한지 모른다. 나아가 더없이 좋은 연극은 관객들 또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는 연극이다.

 

연극을 보면서 인물의 호흡을 따라갔다. 어떤 인물의 호흡을 따를지는 본인 선택의 몫이다. 나는 극장이 떠나가라 웃었다가, 분노했고, 공포를 느끼기도 했으며, 끝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연극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질 때는 일순간 공허함까지 들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비극의 고리에 대해 생각했다. '비극이 비극을 낳는다'라는 결코 반갑지 않은 말이 통용되는 극이었다. 100분 동안 나를 정신없이 빨아들인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마 정답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 같다.

  

 

미국 북동부 원룸 아파트. 화상흉터를 가진 쌍둥이 러신과 아나이아는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쌍둥이가 찾아간 곳에서 엄마는 꺼져가는 숨을 붙들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잔인하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쌍둥이는 당황하지만 이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두 사람은 남자를 찾아가는 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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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아서


 

러신과 아나이아는 쌍둥이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극명하게 다르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러신에 비해 아나이아는 어딘가 조심스럽다.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사람에게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큰 화상 흉터가 있다. 러신은 몸 일부에, 아나이아는 안타깝게도 얼굴 전체가 흉터로 뒤덮여있다. 러신과 아나이아는 번갈아가며 서로의 흉터에 얼음을 올려주며 뜨겁게 올라오는 열기와 고통을 식혀준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흉터의 따가움이 꽤나 자주 일상을 침범한다. 그날의 기억이 결코 희미해질 순 없을 것 같다.

 

두 사람 앞으로 편지가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러신에게만. 두 사람에게 큰 화상 흉터를 남긴 18년 전 화재 사건으로 죽은 줄 알았던 엄마에게서 날아온 편지다. 러신과 아나이아는 엄마를 찾아 떠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은 엄마를 신(god)이라 칭한다. 아나이아는 당당하게 외친다.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 사람은 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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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부탁


 

러신과 아나이아는 친아버지를 죽여야만 한다.

 

화재 사건 이후 병실 침대에서 평생을 보낸 러신과 아나이아의 엄마는 화재의 범인이자, 러신과 아나이아의 친아빠인 홀을 죽이라고 부탁한다. 아나이아는 역시나 망설인다. 구역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며 거부한다. 러신은 엄마의 요청에 그러겠노라 답하고 아나이아를 설득한다. 결국 두 사람은 홀을 찾아 떠난다. 죽이기 위해. 그들에게 유일한 존재인 신의 복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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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살인의 고리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살인과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러신과 아나이아가 홀을 죽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폭력에서 시작된 복수가 또 다른 폭력을 낳았고, 절대 끊어지지 않던 폭력의 고리는 파멸이라는 결과로 매듭을 짓는다.

 

홀은 현재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러신과 아나이아처럼 쌍둥이 아들을 낳고서. 아나이아는 러신에게 말한다. 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절대 죽이지 말자고.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러신은 그런 아나이아를 이해할 수 없다. 러신은 "내가 왜 공감해야 하는데?"라는 반문을 제기한다.

 

순간 러신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러신은 평생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우선적으로 공감하기엔 러신의 흉터는 너무 컸다. 러신의 몸에 새겨진 흉터는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이자, 애정의 결핍이자, 가족이 주는 단란함의 부재였다.

 

아나이아는 러신에 비해 타인의 아픔에 좀 더 공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아나이아는 18년 전 불길에 휩싸인 엄마를 구하기 위해 보다 더 발버둥쳤고, 그로인해 러신보다 더 큰 흉터가 얼굴 전체에 남게 됐다.

 

가장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결국 아나이아가 최종적으로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나이아의 뱃속에 있던 그녀의 아이를 포함해 두 사람만이 목숨을 유지한다. 홀과 홀의 아내, 쌍둥이 아들들, 심지어 러신마저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모두 홀에게 복수하기 위한 과정 중에 일어난 죽음이었고, 인물들에게 죽음의 문턱은 너무나도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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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의 삶


 

희곡을 쓴 작가 앨리샤 해리스는 흑인 인권과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흑인 여성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러신과 아나이아는 당시 미국에서의 흑인 여성을 그려낸 인물이다.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징으로 개인을 짓누르는 거대한 사회적 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인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사회의 구조를 뒤엎고자 하는 전복의 의미는 흑인 여성작가들이 이어온 투쟁의 역사와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러신과 아나이아는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인물은 아니다. 개인과 사회를 아울러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트라우마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내면에 공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의 공통분모는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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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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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 연극을 직접 본것보다 더 감동과 공감을 주는, 연극보다 더 작품성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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