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가가 그리고, 관객이 완성하는 전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전시]

글 입력 2022.04.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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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참나무(An Oak Tree, 1973)’로 개념미술의 새 지평을 연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회고전이 2022년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약 150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오후 4시에 도슨트를 운영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김찬용 도슨트,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이남일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도슨트와 함께하는 전시를 예약하지 못했다면, 전시 오디오 큐레이션 앱 ‘Qpicker(큐피커)’에서 3000원에 오디오 가이드를 구매할 수 있다. 이번 전시 해설은 그룹 아스트로 멤버 겸 배우 차은우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 해설과 함께 전시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전시장 내부에는 작품을 설명하는 이렇다 할 작품 해설이 없기 때문이다. 해설에 작품을 가두지 않는 것이 작가의 의도지만, 개념미술이 아직은 멀게 느껴진다면 해설과 함께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전시를 돌아보고, 이 전시를 담아낼 두 가지의 키워드를 선정했다.

 

 

 

첫 번째 키워드, "상상력의 방아쇠"



“작가는 그리고, 관객은 완성한다.” 개인적으로 내린 이번 전시의 한 줄 소감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자신의 그림에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는 프레임 안에 오브제를 배치할 뿐, 프레임 바깥의 이야기는 온전히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Untitled (x-box control), 2014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x-box control), 2014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이 게임 컨트롤러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작품 앞에 선 관객이 백 명이라면 백 가지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어릴 적 형제자매와 게임기 한 대를 두고 투닥거렸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성인이 된 이후 비로소 갖게 된 소중한 보물 1호가 떠오를 수도 있고, 혹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관객의 답변이 곧 작품을 완성한다.

 

 

ⓒUntitled (with tennis ball),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with tennis ball),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프레임 안에 노트북 일부와 헤드셋 일부가 보인다. 헤드셋 근처에는 테니스공이 놓여있다. 노트북과 헤드셋이 잘려져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실? 아픔? 불완전한 생? 헤드셋 사이 놓인 테니스공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린 날의 추억? 방탕과 유희?

 

정답은 없다. 작가도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프레임 안에 오브제를 배치할 뿐, 나머지 이야기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관객은 프레임에 무심하게 배치된 오브제를 보며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의 작품은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내면의 공터와 다름없다. 그림은 상상력의 방아쇠가 되어줄 뿐이다.

 

 

 

두 번째 키워드, "2차원 조각"


 

Bidding Time 700.jpg

ⓒBiding Time (magenta), 2014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사각 프레임 안에 많은 물건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다. 컴퍼스, 시계, 장갑, 노트북, 의자, 안경, 휴대폰 등등, 서로 아무런 관련 없는 물건들의 무질서한 나열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니 의자와 컴퍼스의 크기가 비슷하고, 장갑과 시계의 크기가 비슷하고, 안경은 노트북만 하다.

 

연관이 없는 일상의 오브제를 모아 특유의 작품 속 구도를 만드는 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2차원의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3차원 세계의 사물이 갖는 물리적인 속성을 완전히 배제한 듯 보이는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어떤 사물은 원근법이 작용한 듯 보이고, 어떤 사물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장갑은 화면의 중심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2차원의 평면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라니, 관객인 우리는 그림 속에서 공간감을 느끼고 있다. 원근이 배제된 공간감이란 모호하지만 매력적인 개념임이 분명하다.

 


wine glass 700.jpg

ⓒUntitled (Wine Glass), 200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와인 오프너가 와인잔 앞에 둥실 떠 있고, 그 뒤로 지구본이 보인다. 지구본 뒤에는 사다리가 있는데, 뒤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구본에 걸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다시 평면에서 공간감을 느낀다. 와인잔과 와인 오프너 사이의 공간, 지구본과 와인잔 사이의 공간, 사다리와 지구본 사이의 공간을 상상한다. 분명 아무 관련 없는 오브제의 무질서한 나열이지만, 프레임 이상을 상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한눈에 들어오는 일반적인 크기의 작품도 있지만, 많은 작품의 크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한눈에 들지 않아 고개를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젖혀야 하는 작품도 많고, 양팔을 벌려도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작품도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그 ‘2차원 조각’의 세계로 빨려든다.

 

 

 

관람을 마치며


 

캔버스에 담긴 오브제는 일상에 아주 친숙하게 스며있는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크기를 키우고, 색을 달리하고, 배치를 낯설게 한 덕에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해설과 함께 전시를 모두 둘러보는 데는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낯선 일상' 앞에서, 그 오브제와 관련한 몽상을 한참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색감이 좋아서 한참 빠져있기도 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이 전시로 하여금 현대미술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 나름대로 상상하고 향유함으로써 비로소 현대미술과 개념미술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조금이나마 허물 수 있었다. 작가는 그리고, 관객이 완성하는 전시였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My work seeks to emphasize

the pleasure, beauty, and importance of ordinary life

as we experience it here and now."

(제 작품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 Michael Craig-Mar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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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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