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순간이 우리를 붙잡을 때 [영화]

영화 <보이후드>에 나타난 성장이라는 미시 서사
글 입력 2022.04.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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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창한 일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중요하지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히 여길 만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테다. 물론 자극적인 일을 훨씬 상기하기 편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삶도, 시간도 모두 연속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우리는 과정 속 한 ‘순간’을 붙들어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하고 있는 작업을 그대로 옮겨 둔 영화가 있다. 전형적인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삶의 순간들을 에피소드 형태로 나열한 영화 <보이후드>이다. 분명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관객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같다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삶을 엿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그토록 사실적이라 느꼈던 것일까. 필자는 이에 대해 영화의 서사가 인간이라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성장’과 ‘삶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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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대체적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 혹은 카타르시스 등을 선사하기 위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서사 구조를 보인다. 이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정해진 구조 하에 클라이맥스를 두고 있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삶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서사 구조부터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보이후드>를 이루는 각각의 스토리들은 우리 인생에서의 터닝포인트나 큰 시련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변 일상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내용들이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서사를 진행시켜 나간다. 실제로 이와 관련하여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는 비극적 상황을 설정해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극적 이야기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엔 아무도 보통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다들 뭔가 엄청난 사건이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산다. 돌아보면 우리의 기억 속엔 자동차 사고나 크게 다쳤던 일 말고 소소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훨씬 많다.” 라고 답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유롭고 행복한 삶, 인생의 큰 굴곡을 딛고 성장을 이루어 내는 드라마틱한 스토리 등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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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링클레이터 감독은 촬영 기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주제를 담아내려 노력했다. 사실 그의 영화적 세계관은 이전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비포 시리즈 3부작이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루어진 3부작의 영화는 무려 18년에 걸쳐 개봉하였고 9년을 주기로 개봉하였다. <보이후드> 역시도 이 작품과 궤를 나란히 한다.

 

이 영화는 촬영하는 데만 12년이 걸렸으며, 매년 15분씩만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굳이 15분이었던 이유는 1년에 해당하는 365일을 영화 프레임의 수치 24프레임으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축약된 1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처음 촬영했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2002년 당시 사용했던 35mm 카메라로 끝까지 촬영을 하기도 했다. 18년동안 3개의 영화를 이어받아 만들어 낸 것도 대단하지만, <보이후드>는 단일 작품을 완성하는 데만 12년이 걸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의 경우 몇몇 찾아볼 수는 있지만, 영화에서 한 작품을 이렇게 오래 찍은 것은 최초이다.

 

이렇게 <보이후드>에는 서사와 영화 촬영 기법 두 가지 모두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순간순간의 소중한 기억들이 모여 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감독의 생각이 온전히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의 산물인 <보이후드>는 작은 것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성장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이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단어를 생각해본다면 당연 ‘성장’이라는 단어를 꼽을 것 같다.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과 그의 가족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주로 다뤄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성장을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메이슨에 집중하여 살펴보면, 그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부터 유년기, 그리고 청소년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의 모습을 통해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한 사람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이 아직 사회적으로 많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기에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아이들은 가치관이나 성격, 나아가서는 관계를 맺는 방법까지 삶을 살아가는 데 기초적인 부분을 부모를 통해 우선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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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메이슨이 주관이 뚜렷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점은 어느정도 그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부모의 모습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는 엄마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두 명의 새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모두 알코올 중독으로 집안에 소홀하고 자식을 억압적으로 통제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엄마는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하며 아이들은 뒷전인 모습을 보이곤 했고, 강제 전학을 가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메이슨에게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서적인 지지와 공감을 베풀어주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었던 대상은 주말마다 만나는 과거의 아빠뿐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그는 가족에게 불만을 품었고, 오랜 기간동안 누적된 부정적인 감정은 그가 또래 집단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종종 겉도는 모습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정서적인 공감이 적었고, 반복되는 이혼과 결혼 속에서 가정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조금 미시적인 서사지만, 메이슨의 성격을 보며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공감, 존중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메이슨의 성격을 비판하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다. 또한 부모가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 또한 인생을 살며 결혼, 이혼과 같은 일을 모두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지위를 갖게 되는 순간, 사회에서는 은연중 헌신과 사랑을 강조하며,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인생을 조금 더 많이 살았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여전히 한 명의 불완전한 사람이다.

 

이렇게 여러 인물의 시선에 이입해본다면 관객은 결국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의 과정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흔히 힘든 일을 극복해내고 나면 한층 더 성장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성장은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얻는 결과가 아닌 셈이다. 성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 자신감 등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과 감정들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며, 영화가 서사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것 또한 비슷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삶이 나를 붙잡는 순간에 귀 기울인다면


  

인생의 많은 순간들을 겪으며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분명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삶의 순간을 붙드는 것만큼,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순간도, 조금은 힘들더라도 나에게 꼭 필요했던 순간들도 잘 살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 순간이 삶이 자신을 붙잡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에 귀 기울일 때, 모든 순간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처럼 우리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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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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