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결국 나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지속 가능한 영혼의 이용 [도서]

글 입력 2022.03.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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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단어들의 조합이 생소하다 느꼈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 이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여가부 폐지가 운운되는 지금 괜히 더 우울한 책을 집어드는가 잠깐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사실 필자는 페미니즘이 곧 휴머니즘이라 생각하는데, 어울려 사는 법을 피해가려는 듯한 요즘의 분위기가 답답해 허구의 이야기를 빌려서라도 말해보고자 한다. 결국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감정을 표출하자면 얼마든지 성별 간 분열이 심화되어도 상관없다 외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그와 같은 태도를 일상에서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사회라는 건 다른 성별의 사람이 모여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분열을 입에 담고도 막상 현실에서 소리내어 뱉기는 어렵다. 투표와 시위로 의사표시를 하고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어도 불평등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말해야만 한다. 우리의 영혼이 지속가능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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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저씨’들이 우리의 영혼을 망치게 두지 않아.” 일본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의 대담한 도전 어느 날 세상에서 ‘아저씨’들이 사라져버린다면?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마쓰다 아오코의 장편소설. 마쓰다 아오코는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문장으로, 에세이와 소설을 비롯한 작품들 전반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여성성의 압력을 날카롭게 이야기하기로 이름이 높다. 데뷔작부터 제26회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와 제35회 노마문예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8년에는 일본판 『82년생 김지영』의 추천사를 맡아, “절망으로 가득 찬 희망의 서”라 일컬으며 한국 페미니즘 소설에 공감과 경의를 표했다.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은 해시태그 미투가 전 세계적 성폭력 고발 운동으로 번진 뒤 다시금 대두된 페미니즘을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가, 일본의 성차별적 현실을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폭로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어느 날 ‘아저씨’들이 갑자기 소녀들을 보지 못하게 되고, ‘시선’에서 벗어난 소녀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아저씨’들을 향한 복수를 하는 도발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말한다. “‘아저씨’가 정하지 않은 세계를 보고 싶다. ‘아저씨’가 사라진다면 사회구조는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 사회를 보고 싶다.”


*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돌 걸그룹 멤버들을 향한 성적인 시선과 희롱은 지금도 존재한다. 기저에 그들을 독립된 인간적인 개체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도 아이돌 걸그룹에 대한 처우가 한국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노래와 춤에 전문성을 지닌 프로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위험한 공격과 망상이 허용되는' 최약체 여성이다. 특히나 소설 속에서 '아저씨'라 불리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당연시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인형일 뿐이다.


문화산업의 수요 공급이 내수시장에서 오랫동안 이뤄져온 일본이기에 툭이한 점들이 아이돌 산업에서도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돌에게 은퇴나 그룹 해체가 아닌 가입과 졸업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팀 하나가 굉장히 많은 멤버로 구성되어, 인기가 많은 센터 멤버는 고정인채 다른 멤버들의 합류와 탈퇴가 이뤄지는 일종의 멤버 로테이션을 말한다. 수많은 멤버 중 인기를 얻어 팬들의 구매력을 이끌어내려면 팬들이 원하는 캐릭터와 외모, 행동을 많이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타겟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아이돌은 아티스트라기 보다는 매체에 등장하는 노래하고 춤추는 캐릭터로서 인식된다. 아이돌에 대한 팬들의 태도도 데뷔 후 연차가 쌓이며 실력이 늘기를 응원하는 것보다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 자본으로 서포트하며 육성한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러한 배경을 유념하며 소설을 읽다보면, 게이코가 반한 새로운 유형의 전투적인 여자 아이돌 xx는 상상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례적인 인물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노래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저항을 노래하며 전에 없던 강렬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포지셔닝 한 것이 xx그룹을 기획한 초반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xx그룹은 타 아이돌보다도 실력이 뛰어났고 그들의 퍼포먼스와 음악에 대해 진정성 있게 임하며 정말로 사회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항의 대상과 실체는 게이코가 보기에 분명해보였다. '시키는대로, 원하는대로만 노래하지는 않겠어.'

 

게이코 역시 비슷한 감정을 일상에서 뿌리깊게 느껴왔기에 xx그룹의 노래에 감명을 받았다. 여자가 의견을 자유롭고 편하게 말하면 주변의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좋은 여자라는 인식을 얻지 못하는 것, 감정을 삭이거나 돌려서 표현해야 하는 것,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피해자임을 말하기 어려운 것 등등 현실에서 일본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으니, 작은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많았다. 게이코 주변의 여성들도 그러했다.

 

'아저씨'들의 화가 나는 만행이 이어지며 여성 등장인물들의 분노가 차오를 때쯤, 일본 정부는 웃기고 기막힌 결정을 내놓는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나 복지는 외면해오며 출생률 감소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가, 인구절벽으로 국가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자 나라가 망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국가 운영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마지막 책임은 회피하고 싶어 마지막 정부로 아이돌 그룹xx를 지목한채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것. 소설이기에 가능한 극단적인 전개이지만, 그토록 억압하고 차별하던 대상에게 마지막 책임까지 떠넘긴 것이 꽤 우습고 슬펐다.

 

*

 

책 속의 또다른 시점에서는 아저씨가 사라진 세상이 존재해, 그 세계 속 여학생들이 과거의 여성 아이돌을 조별 과제 주제로 조사해 발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에는 이런 억압을 받았다고 이상하게 여기며 당당히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들에게서는 차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단호함과 강인함이 느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냉철하게 여성 차별을 비판하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주체적이고 자유로워 보인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과는 다른 어느 미래에서는 일본 여성들이 차별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허구임에도 잘 와닿았다.

 

궁극적으로 작가와 소설 속 여성 화자들이 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영혼'이었다. 이대로는 안돼, 더는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한국의 현실도 겹쳐보였다.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드러나자, 소수 의견이라며 일축하고자 하는 이들, 피해의식이라며 현실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 목소리가 커질까 서둘러 의견을 묵살하려는 정치적인 움직임들이 보이는 요즘 우리 영혼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염이 되면 깨끗이 세탁할 수 있는 옷처럼 손쉽게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이전의 상처와 아픈 기억을 모두 머금은 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영혼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오래 쓰려면 부당함에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힘들더라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영혼은 지치고,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살아 있으면 닳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오래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 p.129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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