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의 언어로 번역되고 다듬어져서 [미술]

#3. 소개하고 싶은 작가의 작품
글 입력 2022.03.24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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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날카롭지 않지만 두루뭉술한 것들이 더 명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는 아래 두 미술 작품들이 그렇다.

 

 

 

번역된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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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먼저, 우연히 접하게 된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은 ‘Translated Vase’인데, 여기서 ‘translate’는 ‘번역하다’라는 뜻 외에 ‘다른 형태로 바꾼다.’라는 뜻이 있다. 이 작품은 형태를 바꿈으로써 새롭게 번역했다. 일반적으로 생활용, 관상용으로 쓰이는 도자기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깨진 것이나 버려진 것을 이용하여 형태를 변형시켰으며, 쓸모없는 것들의 가치를 재조명해 새롭게 의미를 번역했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인 도자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해야 아름답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예를 들면, 도자기의 입구는 반드시 완벽한 원이어야 하고, 중심축을 기준으로 대칭이어야 한다는 미의 기준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도자기의 형태가 아니라, 깨어진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 자체가 된다는 지점, 즉 작품을 보고 통념적인 미의 기준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다는 측면이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그리고 이는 부서지고 깨진 것들도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어딘가 모자란 것들이 모여 만든 조화가 훨씬 더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전에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처럼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더라도, 행복을 이루는 모습은 이 작품에 담긴 의미와 닮아있다.


이렇게 <번역된 도자기>는 통상적인 기준이나 관념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작품을 감상하며 감상자의 사회적 의식까지 고양하게 할 수 있다. 더불어, 작품을 통해 예술은 단지 미의 기준을 정하는 척도가 아니라, 다양한 미 들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일에도 기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뭉툭하지만 분명한 의미로 번역된 이 작품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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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칼노래>

 

 

다음으로 인상적으로 콕 다가온 작품은 ‘판화’이다. 판화는 회화와 다르게 그 장르만이 주는 매력이 있는데, 그 느낌은 오윤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듯하다. 묵직하게 찍어낸 각 있는 직선들 위에, 원색적인 색감으로 덧입혀진 오윤의 그림을 보면 마치 잔상이 남도록 여운이 깊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선두자 중 한 명이다. 여기서 민중미술은 미적인 체험만을 위한 형식적인 미술이 아니라 미술을 통한 사회 참여로 사회 변혁을 주장 하는 미술이다. 말 그대로 민중과 소통하고 민중을 위한 것으로, 대부분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의 걸개그림으로 많이 쓰였다. 억압적인 정부체제에 반발한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등장하였고, 이 흐름 속 오윤은 사회 참여적인 미술을 위해 고민했던 한 예술가였다.


그는 당시 기존의 미술 형식을 반성하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현실과 발언’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현실과 발언’의 창립 취지는 미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고 미술가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 사회적 영향은 어때야 하는지, 본질적인 물음에 답하고자 창립되었다. 조각을 전공했던 오윤은 그 수단으로 판화를 택했고, 판화만이 줄 수 있는 정직성으로 미술가로서의 사회적 발언을 하였다. 위 작품은 유명한 <칼노래>이다. 인물이 중심에 있는 구도로, 역동적인 동세의 모습을 붉은 배경 속에 배치하여 강조 효과를 준다. 그림 속 인물의 발이 가리키는 방향과 인물의 시선ㆍ칼이 향하는 방향이 반대이지만 균형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인물을 중심으로 한자들이 배열되어 있어 안정감을 준다. 적색과 흰색, 검은색의 대비로 작품 전체가 강렬하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시대 풍속화가 김홍도의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동>을 보면 극명한 색의 대비는 아니더라도 인물의 움직임이 역동적이면서도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무동>에서 오윤의 그림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면, 인물 외에 배경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 또한 중심이 되는 인물을 주요에 두고 그를 둘러싼 인물 외에 다른 배경은 그리지 않았다. 오윤의 그림도 대부분 인물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주제 표현을 강조하고 여백의 미를 활용하여 관람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칼노래>의 주체는 민중으로, 한국인의 끈질긴 민중적 힘을 담고 있다.

 

이러한 힘은 목판화의 재질 때문에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 작품은 제작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가는 목판화로, 정직하고 굳세게 깎은 작가의 수고가 담겨있다. 작품 속 인물은 칼을 잡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민중적 한을 승화하고 있다. 여기서 <칼노래>는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지은 노래 가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동학의 이념을 품고 민중이 겪었던 한과 고통을 풀어내는 모습이 이 목판화를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80년대 시대 상황과 결부하여, 오윤은 우리 민족이 가진 민중적 힘을 전하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의 악함과 탐욕, 부조리한 사회문제 등을 비판했던, 그의 뭉툭했지만 날카로운 판화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도 발현되는 그 민중의 힘을 다시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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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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