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봇이 아닙니다 [문화 전반]

휴머니즘에서 포스트휴머니즘으로
글 입력 2022.03.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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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서핑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꽤나 사소하게 귀찮은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체크 박스를 클릭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구글의 봇 방지 기술인 리캡차(reCAPTHA)라는 시스템이다. reCAPTHA의 ‘CAPTHA’는 튜링 테스트의 영문 표기인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를 줄인 말이다. 1950년 앨런 튜링은 ‘대화를 통해 컴퓨터의 반응과 인간의 반응을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는데, 이에 따라 개발된 리캡차는 봇이나 자동화된 해킹으로부터 웹사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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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봇이나 자동화된 해킹으로부터 웹사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구글의 reCAPCHA v2.


 

위 사진은 웹서핑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 번씩은 접해봤을 것으로 추측되는 리캡차 기능의 두 번째 버전이다. v1은 사용자가 화면상에 적힌 왜곡되거나 난해한 글자를 식별해 받아적어 인증하는 방식이었고, 2018년에 v3이 출시된 이후로는 웹사이트 이용자들의 패턴을 분석해 자동으로 사람이라는 인증을 마쳐 이용자가 봇으로 의심되는 경우 추가 검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이제는 사용자들이 더 이상 체크 박스를 클릭하지 않아도 되도록 일종의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변경, 즉 ‘자동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할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인해 봇과 사람을 구별해왔던 경계가 더욱더 희미해져 갈 것이다. 이 텍스트가 함의하고 있는 시사점에 물음을 던져본다. 과연 ‘로봇’이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인가?

 

 

 

특이점에 도달한 시대



오늘날 사회는 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정보와 지식에 기반한 정보사회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대두되는 기술인 인공지능은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는데, 이에 대해 미래부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인공지능 기술을 5개의 핵심 기술인 ‘학습 및 추론 / 상황이해 / 언어이해 / 시각이해 / 인지인식 및 인지’로 구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논리 규칙 기반 체제부터 시작해, 오늘날엔 대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플랫폼들이 막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게 되면서 딥 러닝 기반 체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래밍 지능에 따라 단순히 특정 문제의 해결만을 목적으로 하는 약한 인공지능과, 마치 사람처럼 사고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한 초인공지능이라는 분류도 등장했다. 이 안에는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능가한다는 ‘싱귤래리티(Singulalrity)’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마츠모토 데츠조는 자신의 저서 『AI가 신이 되는 날』에서 인공지능이 인공지능 문제가 가져올 철학적인 문제들마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도 추측한다. 인간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론을 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집단 지성을 활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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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귤래리티란, 말 그대로 특이점이다. 특이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AI가 갖게 되는 데이터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면 여러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가설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검증하여 이를 연관 짓는 능력이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언젠가 AI가 가져올 미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여러 과학자들의 논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거나, 오히려 반대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세계를 지배하지 않으면 인류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전 국가적, 기업적 차원에서 인공지능 시장에 투자하는 양은 계속해서 늘고 있고, 인류는 이러한 발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로 접근하여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ANT(Actor-Network Theory): 행위자-연결망 이론


 

잠시 기술적인 발전을 바라보았던 여태까지 시대상의 관점들을 짚고 넘어가 보자. 네오-러다이즘이란 산업혁명이 초래한 변화들에 대해 저항했던 사회 운동에서 등장한 개념의 연장선에서 기술 진보를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관적인 입장이다. 14-16세기의 르네상스 시기 근대의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휴머니즘-트랜스 휴머니즘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낙관적인 입장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한 탈근대로의 단계적 이행이라고 할 수 있는 ‘ANT’적인 접근은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를 넘어서는 입장이다.

 

ANT(Actor-Network Theory), 즉 행위자-연결망 이론에는 ‘포스트휴머니즘’적인 관점이 담겨있다. ANT 이론에서는 기술을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행위 능력을 지닌 행위자로 본다. 이 글에 적용시켜 본다면,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기계적 요소를 지닌 존재를 함께 공존하며 사회를 살아가는 동반자로 보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결합하는 데에 까다롭고 다양한 방식이 있듯이, 인간과 기술도 서로 관계를 맺고 결합하는 데에도 까다롭고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러한 관계는 이들을 단순히 주체/객체로 나누어 간주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 아닌, 자신과는 다르지만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들: 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사이


 

먼 옛날 고대 철학자들의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의논이 현재까지도 진행된다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결국 우리 존재에게 주어진 끝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앞으로 철학적인 문제까지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해결 가능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지만, 이러한 미래로 다가가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이 인간의 의사결정, 욕망, 그리고 감정까지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또한 인지해야 한다.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우리는 우리 시대를 이루는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근대의 인간성은 몸과 정신으로 나뉜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기반으로 근대에는 정신(이성의 활동)에 비해 몸(감각의 차원)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트랜스 휴머니즘의 등장과 휴머니즘의 반증을 모두 경험한 우리는 이제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몸과 정신의 진화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인간’이라 칭해지는 현 인류에게 앞으로 부여될 정체성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말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근대에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문명과 기술을 발전시켰던 인류는 인간 외의 존재들을 타자화시켜가며 세상을 구축해왔다. 포스트휴머니즘에서 ‘포스트(post)’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적으로 ‘이후’를, 개념적으로는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인간을 넘어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로봇이 아니라면, 과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상인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인간’, 즉 ‘포스트휴먼’이라는 존재는 앞서 모색했던 ‘공존’이라는 개념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현재 사전에 등재된 인간의 정의는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 사람’,이다. 이러한 정의는 다양한 방식의 배제를 거쳐 이루어진 휴머니즘의 산물이다. 고등 동물이란 어떤 범주를 지니는가? J.러디어드 키플링의 동화 『정글북』의 등장인물인 모글리처럼, 고등 동물이라 여겨지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자라 사회에 제대로 속하지 못한 이들은 인간이 아닌가?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필적할 만큼 발전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로봇이 아닙니다’ 라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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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기계는 너무 활발하고, 인간은 너무 무기력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비록 1985년에 발표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우울증을 포함해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 사회의 대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포스트휴머니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학자인 유발 하라리와 로지 브라이도티의 이론을 정합해볼 때, 현대인의 무기력은 어쩌면 휴머니즘 시대에 지나치게 비대해져 오만했던 인간이 다시 작아진 상태에 대한 상대적 무기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휴머니즘의 반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인간의 정의가 타자 배제의 증거이며, 차별과 혐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에 머물러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 총서』에서 ‘-되기’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타자화로 인해 배제된 존재론적 범주들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과거-현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논의가 더욱더 필요하다.

 

*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꽤나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친숙한 테스트에서, 우리는 유의미한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다. 하나는 더 이상 이런 테스트로는 인간과 로봇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는 우리가 마주해 나갈 미래를 위해 인간의 경계를 재고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생각의 흐름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흐르는 개울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매 순간 발은 새로운 물에 닿는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사회가 지니는 담론 또한 유동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각을 조율해야 한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던 개체가 아닌 인간이 목적성을 갖고 만들어낸 개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며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능동적인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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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김환석, 「인공지능 시대를 보는 이론적 관점들」, 『사회와 이론』, pp.41~62, 2017.

마츠모토 데츠조, 『AI가 신이 되는 날』, 정하경⋅김시출 역, 북스타, 2018.

이원진, 「가상적 신체화를 통한 포스트휴먼의 자기돌봄」, 『종교교육학연구』 60, pp.57~74, 2019.

권택영, 『생각의 속임수』, 글항아리, 2018.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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