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쾌한 사람이 되어 유쾌하게 살기

글 입력 2022.03.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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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쾌함'과 내가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유쾌한 삶에 대한 동경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지하고, 복잡하고, 엉망으로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은 마음은 그와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직조한다. 틀에 맞추어 습관처럼 움직이는 모양 그대로 삶의 어딘가 무늬를 새겨 넣는다.

 

어떤 날엔 '이게 나야'하고 말할 수 있었지만 또다른 어떤 날엔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날이면 내가 새긴 문양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후회하고, 미워하거나 그리워했다. 그렇다. 나는 세상 모든 일을 마냥 가볍게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속상하고 서운한 일도 많고, 날카롭고 가시 같이 느껴지는 날도, 사람도 내게는 너무나 많다.

 

그럴 때일수록 유쾌함에 대한 어떤 질투가 솟아난다. 그게 무엇이길래 이토록 가지기 어려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유쾌함의 힘을 빌려 가볍게,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상처 위로 찬 바람을 후후 불듯이 스스로를 잘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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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의 이야기다. 그때쯤 부터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를 마스터하고 나면 배우리라 다짐하던 스페인어. 글자를 발음하는 일 자체로 재밌고 흥미진진하던 즈음이었다. '춤추다'라는 뜻의 'Bailar' 외의 다른 표현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에 없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Mover el esqueleto'. 직역하면 '해골을 움직이다'라고 하는 이 표현은 '춤을 추다, 몸을 흔들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처음엔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앙상한 해골이 움직이는 장면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화 '코코'를 보기 전이었나보다.)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후 인터넷에 검색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주쳤던 문장이 있다. 바로 스페인어를 배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이었다. 대체 어떤 언어길래 배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거라고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마구마구 일었던 나는 그제야 그게 어떤 뜻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젊은 ADHD의 슬픔'을 쓰신 정지음 작가님의 유튜브 영상 속에서 내가 찾던 유쾌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서럽고 슬픈 이유로 눈물이 터진 상황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염전이 터졌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작가님의 말씀. 결국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것을 어떤 언어로, 어떤 단어로 치환할지 고르는 것도 나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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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모든 게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을 지금껏 내가 전혀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과 상황을 두어 번 목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 마치 내 삶의 지표를 발견한 것처럼, 등불을 켠 것처럼 밝고 명확하다.


내가 평소에 어떤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각이 먼저인지 언어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로 감정을 뱉고 나면 그 표현 그대로 기억에 오래오래 남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나는 '습관처럼' 무겁게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만 싶지는 않다. 적절히 유쾌하게, 슬픔은 반으로 나누고, 기쁨은 두배로 즐기는 그런 하루를 살고 싶다.

 

이 지구 상의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삶을 산다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은가. 시소 같은 삶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에게 맞는 적당한 균형을 찾아가는 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의 언젠가 유쾌한 사람이 되어 유쾌하게 사는 내 모습을 문득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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