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딜릴리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파리의 달콤함과 씁쓸함 [영화]

글 입력 2022.02.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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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li à Paris (2018)〉

감독 및 각본: 미셸 오슬로(Michel Ocelot, 1943)

2018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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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li à Paris (2018)〉극 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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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 Valadon, 〈Portrait of Marie Coca and her Daughter〉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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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Family of Acrobats with Monkey〉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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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 〈The Snake Charmer〉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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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 Brâncuși, 〈Sleeping Muse〉,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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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Red Room〉 (1908)

 

 

 

#. 몽마르뜨 언덕 프랑스의 조각들을 모아서


 

우리는 가끔 여행지에서 느꼈던 향수 혹은 가고 싶은 여행지의 인상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곤 한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Dilili à Paris (2018)》는 프랑스를 이미 여행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사람도 파리의 환상을 느낄 수 영화이다.

 

이 영화 중 한 씬에서는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예술가 피카소, 마티스, 수잔 발라동, 앙리 루소, 브랑쿠시가 등장해 한 화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위에 나열된 이미지들은 한 화면 안에서 대화를 나누던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이들 외에도 이 영화에는 화가 드가(Degas), 르누아르(Renoir),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한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 배우겸 극 작가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그리던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 흑인 광대 쇼콜라(Chocolat), 그노시엔느(Gnossiennes)를 연주하는 작곡가 에릭 사티(Éric Alfred Leslie Satie), 피아니스트 레날도 안(Reynaldo Hahn), 조각가 로댕(Auguste-René Rodin)과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 등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한다.

 

예술가 외에도 소설가 프루스트(Marcel Proust), 언어학자 에른스트 르낭(Joseph Ernest Renan),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비행사 산투스 드몽(Alberto Santos-Dumont), 발명가이자 외교관이었던 폰 체펠린 백작(Ferdinand Adolf August Heinrich Graf von Zeppelin),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지은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등 한 손으로 셀 수 없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에서는 프랑스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인물 외에도 이스터 에그처럼 등장하는 디테일한 요소를 찾는 재미를 안겨준다. 프랑스 보석 브랜드 반 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매장이나 베르사유를 떠올리게 하는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Academie nationale de musique), 고흐가 즐겨 마시던 초록빛 술 압생트, 로투렉의 그림으로도 남겨진 아이리시 아메리카 바(Irish American Bar) 등 파리를 대표하는 장소들이 줄곧 등장하고 있다.

 

다채로운 색감을 끼얹은 인물들과 사실적으로 그려져 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배경은 서로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 애니메이션을 한껏 더 풍요롭게 만든다. 미셸 오슬로(Michel Ocelot)감독의 전작 2011년 작품 《밤의 이야기 Les Contes de la Nuit》처럼 《파리의 딜릴리》 역시, 마치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인형 놀이를 하듯 특유의 가볍고 고요한 분위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 파리의 지하세계 마스터맨이 시사하는바


 

앞서 구구절절 나열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프랑스와 관련된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알록달록한 동화책 같은 영화《파리의 딜릴리》는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기승전결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임팩트가 강하다. 아프리카 부족 사이에서 채소를 손질하는 흑인 소녀 딜릴리가 등장하며 화면은 바로 줌아웃 된다. 첫 장면에서 등장한 아프리카 부족은 파리의 '사람 동물원'에 출근하는 가짜 아프리카 부족들이며 딜릴리 역시 시민들 앞에서 배우처럼 아프리카 부족 연기를 한다. 내용은 또 액자식 구성을 이루듯 작은 반전을 안겨준다. 사실 딜릴리는 뉴칼레도니아 카나키 섬 출신의 흑인 소녀이지만 파리에 사는 부유층에 속한다.

 

《파리의 딜릴리》는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던지고 있다. 영화의 첫장면이나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설정된 흑인 아이를 향한 몇 줄의 대사는 유색 인종이나 혼혈 등 소수민을 향한 편견이나 차별 문제를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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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파리에서 일어나는 '여아 유괴 사건'이 큰 축을 이루며 극이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 딜릴리와 10대 소년 배달부 오렐은 파리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딜릴리와 오렐이 쫒는 마스터맨은 아이들을 유괴하는 조직이다. 마스터맨은 "파리에서 여자들이 대학에 가기 시작하면서 권력을 쥐었고, 살롱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만 초대해 프랑스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말한다. 마스터맨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유괴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교육을 시키기 위해 유괴한 아이들에게 검은 천을 뒤집어씌워 네발로 기어 다니게 만들며 이들을 '네발'이라고 부른다. 네발로 기어 다니는 여자들은 땅만 보며 그대로 '인간 의자'가 되어버린다.

 

가히 충격적인 이 설정은 지난해 《오징어 게임》의  바디페인팅하고 등장한 또 다른 '인간 의자'를 떠올리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신체를 드러낼 수 없어 검은 천을 뒤집어써야 하는 이슬람교의 히잡이나 부르카를 쓴 사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파리 여아 유괴 사건은 경찰이 해결하지 않는다. 경찰은 마스터맨과 내통하며 경찰청장의 집에도 '네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오페라 소프라노 엠마 칼베(Emma Calvé), 파리 코뮌 자치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인권 운동가 루이즈 미쉘(Louise Michel), 퀴리 부인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과학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Maria Skłodowska-Curi), 19세기 가장 유명한 배우로 평가받는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영화 속 사건을 해결하는 딜릴리의 조력자들로서 마스터맨에게 납치된 여자아이들을 함께 구출하게 된다.

 

사실 역사적으로 프랑스가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를 선구적으로 나서서 해결했던 나라는 아니다. 유럽 서구권 국가 가운데 프랑스는 1944년 여성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18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1906년 핀란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시기를 고려한다면 민주주의를 외치던 프랑스의 여성 인권 챙기기는 다소 이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파리의 딜릴리》는 1900년대 초반 시기의 시간적 배경을 깔아두고 문제가 되는 사건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충분히 여성 인권과 관련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 찬미의 공간 환상 속의 파리


 

본인이 살던 곳을 떠나 외국을 여행하다 되면 낯선 풍경과 새롭게 만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소위 유럽 여행지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프랑스 파리는 여행자마다 모두 제각기 다른 추억과 경험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기대감이 너무 높으면 실망감도 크게 따라오는 법인지 깜깜한 밤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보았던 그 순간을 제외하고서 필자에게 파리란 여행지는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다. 여름에 파리를 여행했던지라 잊을 수 없이 강렬했던 지하철의 악취,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는 공원에 넘치는 쓰레기와 그 주변에 영화 라따뚜이를 연상시키는 여러 마리의 쥐.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명확한 발음으로 "칭,챙,총"을 들어 인종차별을 당했던 유일한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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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Woody Allen)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나 《파리의 딜릴리》영화는 앞다투어 파리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파리라는 도시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분명 경험하고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파리와는 무척이나 괴리가 컸다. 무엇을 위한 찬미와 찬양일까. 사진이나 영화에 담긴 파리는 상상의 도시처럼 환상에 불과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듯했다.

 

마치 고문과 살인이 즐비할 것 같은 슬로바키아나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마약 거래가 넘쳐날 것 같은 멕시코 등 영화에서 한 국가가 묘사되고 일반화되어 프레임이 씌워지는 방식은 관객의 기억 속에 일반화된 채 특유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고증이 따라주거나 심한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파리의 딜릴리》 영화 역시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고'는' 있다.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고는 있으나 실질적이지 않으며 조금은 위선적이기까지 한다. 마치 선민의식의 가치관이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알맹이를 피한 채 포장하고 나열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고 한 시도였을까. 《파리의 딜릴리》는 너무나 프랑스답고 프랑스다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편안하고 달콤했다. 사이드 미러 속 '보이는 것 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같은 경고 문구처럼 때로는 현실을 꾸민 허구가 더욱 찬란하고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글은 영화를 향한 비평글이 아니다. 어쩌면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미셰 오슬로 감독의 마지막 애니메이션 영화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벨 에포크 시대를 채워 넣은 화려한 색감과 영상미나 많은 것들을 시도하려고 했던 그 노력을 높이 사기 때문에 곱씹을수록 씁쓸했던 《파리의 딜릴리》는 그래도 한 번쯤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손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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