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이 사라져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알아보는 니체의 이야기
글 입력 2022.02.0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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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이 얼마나 유명한 이름인가!


 
우리는 니체의 이름을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접하곤 한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접근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지는 탓일까, 그의 사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재개봉까지도 성공을 거두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영화가 있다.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 친숙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통해서 나는 니체를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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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사랑한 니체


 

“그는 이성의 절대적 승리에 대항해 투쟁하면서 이성에 의해 억압되고 배제된 이성의 타자, 즉 감성의 복권에 온 힘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삶의 심층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안하려 했다.” (니체철학의 키워드, 9p)


영화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기 전에 알아야 할 약간의 이론 지식이 있다. 많은 철학자들은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이성을 진리로 간주하고, 감성을 열등한 것으로 취급했다. 흔히 말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호된다. 그러나 논리적인 판단일수록 예외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인간의 삶에는 다양성과 모호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논리적 시각으로 재단하려고 한다면 자칫하면 폭력이 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니체는 논리, 즉 이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진정한 이해는 몸의 감각 능력, 즉 심층적인 체험과 창조의 감각 능력인 감성에서 가능한 것이다.” (니체철학의 키워드, 35p)
 
이성은 인간의 감정, 느낌, 판타지 등을 억압하고 이성의 범주 상에서 파악되지 않는 것들을 배제하고 억압한다. 따라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자연인 감성을 다시 꺼내야만 한다. 니체는 심층적인 체험과 창조를 감각하기 위해서는 감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의 세계관계와 자기관계의 본질적인 토대를 구성하기 위해 감성을 추구할 것을 소리 내어 외쳤다. 니체는 감성은 곧 ‘몸의 이성’이며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니체의 생각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그 유명한, Michel Gondry 감독의 작품 <이터널 선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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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기억의 조각 속에서


 
“망각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이터널 선샤인 中 메리의 대사)
 
작중 등장인물인 메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다닌다. 그녀는 회사에서 위에 언급된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마치 기억 삭제가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는 니체의 말을 옳게 해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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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다양한 남자들과 스킨십을 하면서도 이미 아내가 있는 하워드 박사에 대한 무의식적인 끌림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박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의 아내에게 발각되고 만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담담했다. 영화가 전개되며 밝혀진 진실은 ‘메리는 과거 이미 하워드 박사와 불륜을 저지른 관계였으며 죄책감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미 기억을 지웠다.’는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니체의 명언을 외우고 다닌 것도 지적인 여자로 보이기 위한 무의식적 습관이었던 것이다. 다른 등장인물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과거 서로 사랑했지만 이별 후 기억을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니체는 이성 중심의 철학을 비판했다. 또한 ‘정신없는 몸은 맹목이고 몸없는 정신이란 공허하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몸이 곧 감성에 해당하며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육체에 남아있는 기억이 곧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뇌에 있는 ‘이성의 기억’을 지웠다. 그러나 결론은 어땠는가? 육체에 쌓여있던 기억이 이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은 다시 예전과 같은 일을 반복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니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망각, 즉 기억을 잃은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수를 정말 잊었다면 메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하지만 영화를 다시 분석해본 결과 니체를 전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영화는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니체의 말을 너무나도 잘 반영하고 있었다. 니체의 말은 사실, 영화의 결말과 관련이 있다. 클레멘타인은 기억 삭제의 진실을 알고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조엘은 모든 것을 수용한 채로 담담하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클레멘타인도 같은 단어로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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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ay.” (이터널 선샤인 中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대사)

 
그들은 설령 같은 일이 반복될지라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기억이 사라졌다면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일지라도 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몸, 즉 감성에 남아있는 기억은 그들을 운명으로 이끌었다. 니체가 중시한 감성이 영화 속 세계에서 만들어낸 결말은 그 불합리하지만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강렬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이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말이 있을지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로 나아갈테니까. 그렇다면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니체의 말은 어쩌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야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다만 여기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라는 뜻이 아닌, 모든 것을 직면하고 수용하여 성장해야한다는 뜻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의 말이다.
 
 
 
예술이 나아가야할 길

 

“니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고 보았는데, 예술은 그 속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힘이 있다. 현실 극복, 즉 살기 위해 인간은 허구를 필요로 하는데, 예술은 실제 세계가 아닌 허구를 창조함으로써 이런 역할을 한다. 여기서 ‘허구’란 속인다는 의미에서의 기만이 아닌 현실을 변형시켜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현대미학 특강, 19p)

 
니체가 추구하는 예술을 잘 보여주는 인용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기만’이 아닌 ‘환상’이어야 한다. 또한 ‘도피처’가 아닌 ‘현실 극복의 계기’여야 한다. 예술에서 나아가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극복, 마침내 자기완성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세계에서 스스로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을 찾게 된다. 그 중심에는, ‘예술’이 있다.
 
 
참조 문헌
현대미학 특강(2018), 이주영 저, 미술문화 출판
니체철학의 키워드(2005), 이상엽 저, UUP 출판
이터널 선샤인(2004), Michel Gondry 감독, 포커스 피처스 배급
 
 
[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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