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이 된 문화예술은 어땠는가(2) :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글 입력 2022.01.1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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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분야에서 나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 만으로 작년 한 해를 꽉 채웠다. 4, 5개의 대외활동과 졸업 준비, 인턴까지 밀어붙였다. 좋아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한 해였지만 끝이 좋지 못했다.


수개월이 지나면서 거짓말처럼 나는 모든 것을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자의로 찾지 않았다. 쉬는 날에 보아야 하는 공연이나, 가야하는 대외활동이 있으면 한숨이 먼저 나왔다. 좋아하는 일로 인턴까지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의 출근은 여전히 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는 날이 오면 잠만 잤다. 문화예술로 가득 채운 1년을 보낸 나는 좋아하던 마음을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았다.

 

 

 

뻔한 질문: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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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턴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나의 직업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 좋아하는 일을 고르는 것은 언제나 정답이었던 걸까?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었다. 그것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다. 직업을 갖는 것도 결국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런 뻔한 이유보다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돈이나 명예, 성취 그 모든 것을 가져다 대어도 이길 수 없는 멋짐이 거기에는 있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내 동생과 여러 가까운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속으로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운명적인 그 무엇과 직업으로 끈끈하게 얽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나는 그런 삶과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 대학생활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에 통째로 바쳤다.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여럿 찾았고, 문화예술에 대한 막연한 애정을 키워왔지만 그 무엇에도 하나에 깊이 빠지지 못했다. 덕분에 나의 대학생활은 눈물 나게 즐거우면서도,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한 채 고민과 혼란에 빠져 있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환상을 버리지 못했고 여전히 내 길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좋아하는 일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일을 하는 과정보다 결과물에서 보람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다.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잘하는 것,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심도 크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기 보다 무엇이든 무난하게 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의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과정보다는 잘 할 수 있는 일로 얻어내는 성취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민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의 나 사이에 깊은 간극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그동안 외면해 왔다는 것도, 대학생활 내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남들보다 많고 복잡했던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망친 곳에도 낙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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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그만 두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처음부터 다시 되돌아보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문화예술기관에서 나는 멤버십 마케팅을 담당하는 인턴이다. 시간이 갈수록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시들해졌지만, 담당하고 있는 업무만큼은 흥미가 있었다. 특히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재밌었고 적성에도 맞는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고객 데이터에 기반하여 마케팅을 하는 직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최근에 꽤나 유망한 직종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것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유망하다는 직종에 가져본 관심이었다.

 

이 분야의 마케팅이라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자, 도전해 볼만한 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준비해오던 문화행정이나 문화기획분야에서 직무를 변경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어찌나 확신을 가지는 것이 간절했던지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나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1년만에 하던 걸 때려치우겠다는 나의 변덕을 다행히 다들 이해해 주었다. 좋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조언들을 건네 주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는 직무를 변경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새로운 직무에 대한 준비도 시작했다. 어쩌면 기나긴 상담들을 거치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돌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지겹게 느끼게 된 순간부터, 이미 그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업이 아닌 취미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나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뭔지 기억해내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이 다시 즐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 없이 즐기는 취미는 참 마음 편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에 안도했다.

 

그리하여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겠다는 나의 원대한 계획이 새롭게 실행되기 시작했다.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으나 복병은 있었다. 나같은 취업준비생에게 취미생활을 할 넉넉한 시간여유 같은 건 없었다. 새로운 직무를 준비할수록 나는 다시 바빠졌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준비해왔던 일이 아니니 해야 할 일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었다. 일상의 신경들이 다 그쪽으로 쏠리게 되고, 자연히 그동안 좋아하던 음악이나 책, 전시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이전에는 음악을 들으러 가고, 전시를 보면서도 내 미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변명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구차함이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각도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동시에 과거의 내가 통째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자주 마음이 멍했다.

 

일과 취미를 균형 있게 즐기는 사람이 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사회초년생들을 보면 직업인으로서 삶을 시작하고 1, 2년 정도는 일에 적응하기 위해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익숙하지 않은 회사생활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하루가 피로한 나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다 1년, 2년 지나고 나면 보다 긴장하지 않은 채 일상을 흘려보낼 수 있는 시기가 오고,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내 계획대로 되기 위해서 나는 일에도 취미에도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다.

 

혹시 좋아하는 일에 대한 권태를 느끼다가도 진정한 열정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는 멋진 결말을 기대한 채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는 죄송하고 민망하게 생각한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도 그간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좋아하는 일을 지겹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간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마음들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그런 감정들을 잊지 않고자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몰아치는 삶 속에서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중요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영원히 등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냐고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직접 해보기 전까진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다행인 것은 맞는 길을 찾기 위해 내가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시간을 내다 버리더라도 괜찮다고 여겨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 기준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더 모험과 도전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믿는다.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일은 해봐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삶이 가진 정답만을 말해주는 교과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다. 차라리 다행이기도 하다. 내 고집대로 해놓고 정답이라 우겨도 될 테니 말이다.

 

작년의 나는 심각하게 길을 잃었다. 올해는 후회하지 않고 맘껏 길 위에서 방황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어느 길 위에서든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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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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