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음 생은 달팽이로 태어날래요 [드라마]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글 입력 2022.01.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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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방영됐던 드라마를 이제 와서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20살이었던 내가 25살이 됐기 때문일까. 흐른 시간만큼, 극 중 인물들이 겪었던 인생을 조금 깨달아서일까.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대학생이 되던 해에 즐겨봤었다. 새내기의 설렘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집 없는 서러움'보다 '사랑' 얘기에 몰입하기 바빴다. 드라마에서까지 왜들 그리 '집'타령인지 그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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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두 주인공이 계약결혼을 맺으며 전개된다. 남세희(이민기)는 깔끔한 세입자가 필요했고 윤지호(정소민)는 보증금이 없는 월셋집이 필요했다. 둘은 서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켰고 그렇게  '사랑' 없는 계약결혼이 성사된다.

 

수도권의 집값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세희는 비싼 집값 때문에 대출을 끼고 겨우 내 집 마련에 성공한다. 대출 값을 갚기 위해서는 30년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된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현관까지만 본인의 집인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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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는 남동생의 혼전임신으로 집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해 직장까지 잃고 만다.

 

제일 억울한 건 당사자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 피해자만 숨어야 하는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들에게 ‘계약결혼’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은 비현실적인 ‘계약결혼’이라는 요소를 이해하게 된다.

 

뚜렷한 가치관의 인물들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작가는 캐릭터를 통해 각각의 삶을 보여준다. 모든 캐릭터는 각자의 뚜렷한 신념과 주관으로 냉정한 사회를 꿋꿋하게 버틴다. 서브커플로 등장한 캐릭터들이 유독 주목받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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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의 친구로 등장하는 우수지(이솜)는 고정된 사회적 관념에 대항한다.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노브라로 생활한다. 이 ‘노브라’가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라서, 여자라서 요구되는 것들로의 해방이다. 수지는 높은 직위의 여성을 옭아매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보이지 않는 장벽을 부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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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양호랑(김가은)은 일반적인 사회에 적응한 캐릭터다. 안정적인 직장에 안정적인 가정을 갖는 것이 꿈인 사람이다. 7년째 연애 중으로 결혼을 바라보지만, ‘돈’의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주변의 대부분이 결혼하고 '너는 언제 하냐'는 질문들이 호랑을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주위의 압박으로 개인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지는 결혼 프러포즈를 받지 못해 한탄하는 호랑에게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네 인생이 나팔관이야? 네 아이덴티티가 고작 자궁이야? 왜 네 자존감을 결혼이랑 맞바꾸냐고.’라며 뼈 때리는 대사를 던지기도 한다. 결혼을 무조건 인생의 목표로 생각했던 호랑은 크게 충격을 받는다.

 

대조적인 둘의 캐릭터를 통해 이 시대에 가지는 결혼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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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지호는 직장 내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하고 직장을 그만둔다. 수지는 직장 내 몇 없는 여성 직원으로 각종 성추행을 당한다. 상사들은 수지를 대상으로 노브라 내기를 하고 몸매를 보며 대놓고 희롱한다.


작가는 수지를 통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대를 반영했다. 부조리한 사회,  직장 내 빈번한 성추행, 마냥 대들 수 없는 엄격한 분위기를 통해 ‘계약결혼’이라는 관계보다 그들의 상황에 집중하게 만든다. 드라마 속 얘기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현실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코드로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신념에 의존하며 기존 규범이나 신념체계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표상한다. 따라서 사회적, 정치적 쟁점이 드라마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쟁점을 드라마화까진 아니더라도, 극 중 캐릭터에 녹여 보여준 점에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가지는 의의가 크다.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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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처음이라>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책<19호실로 가다>이 등장한다. 책의 여주인공은 자신의 공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외도라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 19호실을 지킨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또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연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극 중, 인물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함께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다가도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세희, 드라마 제작 제의가 왔지만, 자신만의 19호실을 부인하고 안주하려는 지호처럼 자신들의 상황과 비슷한 여주인공에 둘은 동질감을 느낀다.

 

<19호실로 가다>는 가부장제와 이성 중심 등 전통적 사회질서와 사상 등에 담긴 편견과 위선, 결혼이라는 관습 앞에서의 개인 삶의 모습, 그 관습에 대항하는 개인의 저항이 사회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다룬다.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고정관념, 성 역할의 고정적인 모습 등 사회 문제들을 불편하지 않게 다룬다. 사람들은 떠밀리듯 살던 사회에 대해 반추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힘든 청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번 생은 어차피 모두 처음이니까, 서툴러도 괜찮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음 생에는 달팽이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걔네들은 집에서 쫓겨날 일은 없으니까.

 

 

달팽이는 본래 집을 가지고 태어난다. 산소 공급, 수분 충족뿐만 아니라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인간에게 집의 기능도 그러하다. 주거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지친 하루 끝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공간,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집은 불안한 삶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호는 엄청난 집값에 한탄하며 다음 생에는 달팽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마냥 웃을 수는 없는 말이다. 나 또한, 대학교 기숙사 모집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자취한 적이 있다. 가족과 살 때는 몰랐던 금전적인 문제와 1인 가구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다.

 

여전히 집값은 치솟고 현대인의 목표는 하나같이 '내 집 마련'이다. 삶에서 집의 소중함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불확실한 인생 앞에서 달팽이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의미 있는 길을 꾸준히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결국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은 서툴기 마련이다. 모두가 이번 생은 처음이기에 자신을 다독이며 멋진 삶을 위해 나아가길 바란다.

 

 

사진출처: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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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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