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 - 소마

'소마'가 소마한 자리에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글 입력 2022.01.0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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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이야기를 들었다. 소마의 삶은 불행이자 행운이었으며, 가득 차 있는 듯하면서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저 언젠가 '소마'할 또 다른 '소마'로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소마의 이야기를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기에 아직 내 문장은 너무 가볍고 짧아서, 이 글에는 소마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남긴 나의 발자국을 기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소마>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못한 글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어느 날, 소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당신의 발자국이 나의 것과 가깝다면 반가울 것이고, 나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것은 결국 북쪽 평원에서 나타난 늑대의 무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지워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소마'한 길 위에는 또 다른 여정의 흔적이 새겨질 것이다.

 

* 소마(消磨): 닳아서 없어짐. 또는 닳아서 없어지게 함. <표준국어대사전>

* 소마(soma-): 제1자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 자신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신체와 심리가 통합된 몸

<상담학 사전, 김춘경 외 4인, 2016>

 

 

소마_평면_인쇄용_띠지.jpg


 

소마는 어렸다


 

1부에서 소마의 감정은 내가 손을 내어 잡을 수 없는 허공에 떠 있는 듯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을 경험했고, 그 시기는 태어난 후 약 10년간의 기간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규칙적으로 마구 흔들리고 있었고, 이유 모를 불안감과 방향을 알 수 없는 길을 동행했다. 그리고 짧은 찰나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그 길을 계속 가도록 하고 있었다.

 

소마의 시작은 결코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으나 나는 그 페이지들을 문장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지금껏 내가 나에게 건넸던 수많은 질문, 수없이 맡고 들었던 생소한 향과 목소리, 그리고 처음 맛보았던 낯선 감각들이 내 눈, 그리고 머리를 도와 소마를 이해했다. 부모님을 잃은 소마가 마침내 낯선 이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그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을 때까지 내가 동행한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느껴졌다.

 

 

 

소마와 사무엘


 

사무엘은 자신이 잊고 있던 소마, 즉 그의 뿌리를 되찾으며 고통과 환희를 느꼈다. 그는 소마를 다시 만나며 방향을 알 수 없던 길과 정체를 알 수 없던 목소리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스스로를 찾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길의 종착지가 된다. 그리고 그 정답은 새로운 길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마가 스스로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멈추게 하며, 또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더 걷게 하는 것인지 질문하는 페이지는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소마는 미련이 동인이 된다고 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나에게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또한 나에게 더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가끔 괴롭고 어렵다. 그러나 그 시간의 결과가 여행자를 멈춰 서게 하는 동인이자, 다시 일어서게 하는 동인이 된다. 나는 어떤 것을 몰라 멈추며, 어떤 미련이 남아 다시 일어섰는가?

 

 

 

소마와 나


 

소마의 길에 동행하는 내내 끊임없이 스스로를 찌르던 중, 최근 나를 관통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았다. 소마,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어떤 영화 속의 인물. 모두 그 삶의 처음과 끝을 함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인간이란 그토록 인간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때로는 인간이 싫어 괴로워하고 심지어 나라는 인간을 책망할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을 대표하는 소마의 여정은 나를 깊이 관통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 소마를 질책하고 미워했다. 전쟁 영웅이 되어 사람들을 부리기 시작한 소마를, 가차 없이 사람들을 베어내는 소마를. 비열하고 치사한 짓이었다. 소마의 비극적인 삶을 연민하던 나는 어느새 소마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소마는 그런 나를 무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소마와 사람들


 

소마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과 이별한다. 그중에는 네그라처럼 마음을 주려 하였으나 무참히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고, 헤렌처럼 계속해서 소마를 어둠 속으로 밀어내려 했던 사람도 있었으며, 고네처럼 사랑했으나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또, 네이케스처럼 소마를 오해하고 공격한 사람도 있었고, 한나처럼 오고 가는 마음의 방향이 달라 어긋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우만처럼 의지했지만 떠나버린 사람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전에 누가 다녀갔으며,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이고, 누구를 떠나보내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마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나의 저택으로 돌아간다. 그 자리에는 치누아만이 저택을 지키고 있다. 많은 것이 변한 소마는 그를 아는 체하지 않으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저택의 치누아는 돌아온 소마를 반긴다. 나에게 한나의 저택과 치누아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여정의 중도, 다시 돌아갈 곳. 변하지 않을 곳. 그런 곳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소마의 끝


 

마지막 전투를 맞이하는 소마의 화살은 허공을 길게 가르며 날아간다. 소마가 살아남도록 아버지가 쏘아 올렸던 화살이 떠오른다. 소마의 화살은 공격을 위한 것이었으나 아버지의 화살은 도망을 위한 것이었다. 소마의 화살은 적의로 물든 화살이었으나 아버지의 화살은 사랑으로 감싼 화살이었다.

 

소마는 아버지의 화살이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스스로 쏜 화살의 목적지는 알고 있었다. 소마의 아버지가 소마에게 화살을 찾아오라고 한 것은, 그 화살을 찾아 날카롭게 쏘아 올려 피를 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소마를 위해 화살을 쐈던 아버지의 마음, 그 대척점에 있게 된 소마를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했을 때, 소마는 하룻밤 만에 늙어 버리고 만다. 소마에게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지만 그 소유주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소마의 시간은 한때는 한나의 것이었으며, 한때는 아틸라의 것이었고, 또 한때는 복수심, 혹은 무력감이나 분노, 집착의 것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늙을 시간을 갖지 못했다.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없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소마의 곁에 남은 이들은 모두 죽은 이들이라는 것을 깨닫자 한순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외로움보다도 비참함과 미안함이 앞서 죽은 자들에게 변명을 읊어 내고, 그 대화에서 기쁨을 찾는 소마의 끝은 참으로 쓸쓸했다.

 

쓰러진 소마가 다섯 날 동안 이어지는 꿈을 꿨을 때, 그 꿈에서 소마가 마지막으로 잃은 것은 '경계'였다. 자아와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것이 곧 세상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소마가 마지막으로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소마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감각, 기억, 이름, 의지, 의식을 순서대로 잃고 나자 소마는 영원 속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자 끝이 났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p.20 / 379

 

 

마침내 아버지의 품에 안긴 소마가 듣게 된 아버지의 뜻은 입에서 나와 귀로 전달되지도 않았고, 담담하고 조용했으나 그것이 일으킨 파동은 굉장했다. 왈칵, 눈물이 났고 소마와 나는 편안함과 가벼움을 느꼈다.

 

소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내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귀가 되어 여러 뜻을 들었고, 그의 눈이 되어 여러 풍경을 보았다. 그러나 소마는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늑대를 해치우고 나아가는 방법은 내 인생의 여정으로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유약하며, 순간에 잘 취할 뿐이다. 어쨌든 북쪽 평원에는 다시 늑대가 나타날 것이다.

 

* <소마>에는 작가의 인터뷰와 인물 소개 등이 담긴 작은 코멘터리 북이 딸려 있다. 나는 이 글을 다 써 내려간 지금에서야 코멘터리 북을 펼쳐 본다. 내 길을 방해받지 않고 싶어 하는 어린 치기이자, 소마의 아버지가 건네는 뜻에 따르는 소소한 도전이다. 나와 같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모두 풀어낸 뒤에 작가와의 대담을 나눠보는 방식도, 나름 추천이다.

 

 

"고단하고 외로운 삶이었다. 이제 나는 지쳤으니, 나를 데려가다오." p.377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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