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미술과 생명이 옆으로 나누는 대화 -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도서]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글 입력 2021.12.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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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더 늦기 전에 이 땅 위의 생존 문제를 같이 얘기해 보고자 했다.

 

_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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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작품이 될 때》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박보나 작가가 두 번째 미술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을 출간했다. 전작에서는 세상과 예술을 비껴보는 ‘태도’를 중심으로 미술 작품을 바라보았다면, 이번에는 ‘생명’을 통해 ‘지구 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박보나 작가의 전작을 인상 깊게 읽은 한 독자로서 기대감으로 이번 책을 펼쳤다.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말

 

 

저자는 위의 말을 곱씹으며 이 책을 썼다. 보프 신부가 말하는 생태란, 푸르른 자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생물이든 무생물이든)을 내포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고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옆으로’ 나누는 대화이다.

 

 

 

‘옆으로’ 나누는 대화


  

재미있는 대화, 성공적인 대화, 편안한 대화, 깊은 대화도 아닌, ‘옆으로’ 나누는 대화라니.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라는 의미의 ‘대화’ 앞에 ‘옆으로’라는 예상치 못한 단어의 등장은 살짝 어색하게 느껴진다.

 

‘옆으로 나누는 대화’는 저자가 브라질의 개혁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책 《생태 신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생태 중심의 이야기를 말한다. 즉, 생태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해치는 모든 사악한 구조에 등을 지고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공존과 연대의 관계에서 미술을 ‘옆으로’ 보도록 돕는다. 이 점은 책의 독특한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책에는 총 14명의 작가가 등장하는데, 각자의 미술 세계에서 하나의 중심되는 키워드이자 마주 잡은 존재가 있다. 첫 장의 ‘나무’부터 ‘새’, ‘호랑이’, ‘돌’, ‘이야기’, ‘돼지’, ‘원숭이’, ‘사자’, ‘청각’, ‘풍경화’, ‘아파트’, ‘시’, ‘사물’, 마지막 장의 ‘나무’까지. 그리고 이들은 하나의 둥근 원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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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존재들은 하나의 ‘씨앗’으로서 심어진 채로 다음 장의 주제와 연결 지어 존재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성을 드러낸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이 서로 옆으로 의존할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를 반영한 구조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음’을 다양한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땅의 존재들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코로나19와 각종 기후 위기 및 환경문제로 ‘생’보다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  생존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전제로 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심리적 거리감을 촘촘히 좁히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되려 한다.

 

동시에 윤리적 소비, 생태주의적 관점, 동물권을 향한 긍정적 변화, 차별적 시선에 대한 비판적인 움직임 또한 다채로운 형태로 활발하게 움트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지키려는 것들이 있다. ‘환경’, ‘나무’, ‘동물’과 같이 뚜렷한 형체로 ‘실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야기’나 ‘가치’와 같이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저 잠재된 것일 수도 있다.

 

 
이름을 빼앗긴 자들과 이름이 없는 존재들까지 부르는 작가들의 손짓, 그것을 읽는 나의 목소리가 당신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 中

 

 

해당 책은 우리 주변에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배제해온 가장 작은 존재들부터 무용하게 여겨지는 것들까지, 다양한 모든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요컨대, 조은지 작가는 행위 퍼포먼스를 통해 동물의 삶과 권리를 지지하고, 지미 더럼 작가는 순종과 혼종에 대한 구별 짓기를 어지럽히고 부수고자 한다.

 

오스카 산틸란은 멸종된 새들의 소리를 되찾기 위해 실제 새와 인간의 신호를 섞어 공존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주마나 에밀 아부드는 팔레스타인 작가로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불러와 잘려나간 정체성과 뿌리를 현재에서 이어나간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마지막 14번째 씨앗, ‘나무’에서 소개한 케이티 패터슨의 작품 <미래 도서관>(2014~21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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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ie Paterson, Future Library, 2014~2114, Photo ⓒKatie Paterson

 

 

해당 작품은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의도대로라면 나무가 다 자라고서 자그마치 2114년이 되어서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작가 본인을 포함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프로젝트의 완성물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해당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아닌 다음을 위해. 그렇게 또다시 연결된다.

 

 

 

미술 너머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


  

여전히 현대미술작품은 어렵고 복잡하다는 여론이 만연하다. 예술 자체가, 예술의 경계와 범주가 모호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피에르 위그의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작품 <경작되지 않은 Untilled>에서도 말한다. 어디서부터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인지 예술의 경계는 모호하고 복잡하다고. 저자는 이에 대해 자연이 예술보다 덜 아름답지 않고 예술이 자연보다 더 구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이러한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 속에 담긴 미술 작품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존재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의도를 훑어가다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고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경계를 무참히 허물어지는 불편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미술 같은 것’을 찾기보다 미술 그 너머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굳이 ‘미술 같은 것’을 빌린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

 

 

압도적이어서 두려움을 주는 각성의 순간이고, 으스스하지만 두근거리는 깨우침의 찰나이다.

 

- 본문 p.90

 

 

더 이상 예술은 미술관 안 흰 벽에 걸린 미술 작품, 그 속에서만 머무는 어떤 조각이 아닌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미술 작품 속 상상력을 넘어 선명한 실제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앞선 대목처럼 각성의 순간이고 깨우침의 찰나이다. 그 순간에 잠깐 머물며 스스로에게 각각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나는 이제껏 이 존재(나무, 설화, 풍경화, 시)를 어떻게 대하였는가.

앞으로는 세상의 관계와 맥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저자의 시선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존재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해당 질문에 대해 지금 당장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어도, 이름이 불리기를 원하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 당신의 생각을 움트게 해줄 것이다. 모두가 함께 숨 쉬며 반짝일 수 있는 날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모든 존재들과 기꺼이 연결되고자 하는 다정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내일은 나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 모든 생명과 비생명들까지도- 폭력적인 속도와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나 한껏 반짝였으면 좋겠다. 그 빛이 환하게 밝힐 푸르른 지구의 미래가 미리 눈부시다.

 

- 본문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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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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