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다시 읽고 있습니다 ② [도서/문학]

어린왕자에게 묻다
글 입력 2021.12.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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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시간엔 휴대폰을 들고 영상을 보는 게 당연해진 요즘, 시간을 내서 종이책을 들여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책을 읽긴 읽는다. 물론 과제하듯 읽는 때가 많다. 중고등학교 때는 책 읽는 게 낙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책 빌릴 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조금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때는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입버릇처럼 책 읽고 싶다고 염불을 외웠더니 그 해 친구들에게서 책 선물을 몇 권 받았다.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이 그때 받았던 책 중 하나다.


 

표지어린왕자.jpg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으로 출간된 어린왕자인데, ‘이 책이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래서 오래오래,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라봤어. 좋은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문구와 함께 선물 받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사실 너무 유명한 책이라 내용과 의미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고자 결정한 것은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와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변한 것 하나 없는데 나이만 먹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많은 게 변했다. 낭만파에 공상가였던 나는 조금 시니컬해졌고, 좋게 말하면 현실적이 됐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성격이 변한건진 모르겠다. 그 때 불현듯 어린왕자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가 보기에 나는 ‘어른들’과 같아졌을까? 질문을 던지며 몇 년간 묵혀두었던 책을 꺼내 펼쳐보았다.


 

 

제 1장. 아저씨도 어른들처럼 말하네!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기억에 남은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얇은 책 속에는 국어시간에 배웠던 ‘길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 어린왕자와 장미의 이야기, 상자속의 양,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볼 수 있는 눈 같은 단편적 기억들을 초월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어린왕자가 있었다는 증거는요, 그 애가 둘도 없이 매력적이었고, 환하게 웃었고, 양을 갖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누군가 양을 원한다는 건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증거잖아요.”  이 말을 들은 어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당신을 어린애 취급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보라.


“어린왕자의 고향은 소행성 B612예요.” 어른들은 바로 납득하고는, 질문을 던져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원래 그런 식이다. 원망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관대해야 한다.


-어린왕자 28p



이 부분을 읽으며 나 또한 숫자와 논리만으로 말하는 어른이 되어있진 않은가 되돌아보았다. 온전히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치로 얘기하는 것은 편리했다. 누구하나 반박을 제기하지 않았고,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도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숫자 따위는 가소롭다고 말한다.

 

돈많은 사업가.gif

 

 

어린왕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별을 세는 사업가와 덧없는 것을 기록하지 않던 지리학자처럼 수치와 효율은 스스로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사실에 심취하게 만들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잊게 한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많은 행복들을 지나치게 한다.


 

“아저씨도 어른들처럼 말하네!”

(중략)

“만일 누군가 수백만 개의 별 가운데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한다고 해봐. 그는 별들이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겠지. ‘내 꽃이 저기 어딘가 있어.’ 양이 꽃을 먹어버리면 그는 모든 별들이 일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느낌을 받겠지.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어린왕자 43p


 

어린왕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어른들’같아졌는지를 실감했다. 효율과 논리 속에서 나는 동화와 행복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돈과 명예, 직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에 바빠 사소한 관계와 작은 행운을 잊고 살았다.


 

 

제 2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지구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는 하나 뿐인 장미가 사실은 지구 곳곳에 널린 평범한 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실망한다. 평범한 장미와 세 개의 화산을 가진 별의 왕자는 결코 훌륭하지 않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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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여우를 만났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알려준다.

 

 

“넌 지금은 많고 많은 남자아이 중 하나일 뿐이지.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너에게 난 많고 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넌 내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나도 네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고.”


-어린왕자 105p


 

어린왕자에서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설렐거야.’ 하는 대사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장면이다.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어린왕자는 그의 장미꽃이 지구 정원의 평범한 장미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장미꽃이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은 장미에게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통해 그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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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존재들과 관계를 쌓고 그들을 길들이며 때론 길들여지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어린왕자가 수많은 장미들을 보며 그의 장미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처럼, 많은 관계 속에 중요한 것은 쉽게 감춰진다. 여우는 그런 어린왕자에게 길들인 대상에 대해 그가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재차 읊조리던 어린왕자처럼 나도 당장 눈앞의 것에 눈이 멀어 중요한 것들을 잊지 말아야겠다.

 

 


제 3장. 어린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나유진 작가님의 웹툰 ‘일상날개짓’이다. 중학생 때 보던 웹툰으로, 싱글맘 꼬꼬댁씨와 어린 아들 아기 새의 일상을 담고 있다. 읽다보면 어린아이의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생각들에 웃음이 나면서도 가끔 핵심을 짚는 의미심장한 말이나 ‘어른스러운’ 생각들에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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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새는 어릴 적 태어나기 전 기억을 묻는 엄마에게 ‘나는 태어나기 전 천사였는데, 제일 모르는 것 같은 엄마를 찾아보라고 해서 엄마를 골랐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내려가서 엄마를 많이 가르쳐주래.’하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내려왔다는 아기 새의 말처럼, 우리는 어린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린왕자도 어른인 주인공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이것인데,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불현듯 사막이 신비롭게 빛나는 이유를 깨닫고 무척 놀랐다.


-어린왕자 119p

 


그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를 어린왕자에게서 듣고서야 깨닫는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볼 수 없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을 보고 있다. 어른보다도 더 어른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코 어린애들은 몰라도 된다든지, 어린애들이 뭘 아냐는 얘기는 꺼낼 수 없을 것이다.

 

 


제 4장.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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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보지만, 별이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는 아니야.

(중략)

아저씨는, 아저씨 혼자만, 아무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야. 아저씨가 밤마다 하늘을 볼 때 말이야... 내가 그중 한 별에 살고 있으니까, 아저씨는 마치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낄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된 거야!

 (중략) 

그러니까, 별들 대신에... 웃을 줄 아는, 무수히 많은 작은 방울들을 아저씨에게 준 거야.”


-어린왕자 132p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어린왕자는 이별을 준비한다. 끝을 아쉬워하는 저자에게 어린왕자는 자신이 보고 싶어질 때 별을 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나에게 있어 이별은 늘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때는 끝을 마주하는 게 싫어서 졸업식 같은 끝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끝은 언제나 아쉽고, 마지막이 아닐 걸 아는데도 괜한 찝찝함과 슬픔을 남겼다. 언젠가는 끝이 싫어 시작을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런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린왕자는 천진한 위로를 건넨다. 죽음과 가까운 형태로 지구를 떠나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남겨질 저자에게 근사한 미래를 그려준다. 어떤 마지막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린왕자의 위로와 함께라면 끝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덜할 것 같다.


*

 

책을 다 읽은 지금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답해보자면, 어린왕자에게 지금의 나는 여느 ‘어른들’과 비슷할 것 같다. 수치를 통해서만 이치를 이해하고, 때론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화를 버럭 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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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어린왕자의 이야기는 내게 수많은 감동을 주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뒷전으로 미뤄놓았던 것들을 다시 꺼내주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놓인 지금,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참 오랜만에 읽은 잔잔한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또 10년이 흐른 후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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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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