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주하는 것의 온기 [사람]

올해의 끝을 앞두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글 입력 2021.12.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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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 함은 시간상이나 순서상의 맨 끝을 뜻하는데, 나는 ‘맨 끝’이라는 말 앞에서 괜히 서성거린다. ‘끝’이라는 말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또 갈라지는데, 나는 ‘벌써’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임으로써 끝이라는 말에 아쉬움을 더해본다.

 

 

 

12월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로 달력 종잇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쿨(cool) 하지 못했다.

 

‘쿨하다’는 말은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며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다’라는 사고를 대변하는 말이라는데, 이 이상으로 현재 내게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인간관계에서만 쓰일 줄 알았던 쿨하지 못하다는 말이 빠르게 지나온 올해를 되짚어 보는 나의 태도에서 쓰이게 될 줄이야.

 

매달 1일을 맞이할 때마다 늘 새로운 다짐으로 그 달의 특수성을 기대하는 바이다. 31일에 가까워질수록 다음 달의 나에게 책임을 미루기도 하는 게으름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12월의 끝자락에선 떠넘길 다음 달의 내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 순서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

 

처음의 나에게 바통을 넘길 기회가 주어지는 대신 무언가를 한 숟갈 더 떠먹어야 하는 감수는 누구나 응해야 한다. 나는 그 달갑지 않은 것을 맞이하기 전에, 12월의 끝을 붙들고서 조금은 쿨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겠다는 입장이다.

 

 

 

만남의 온기


 

코로나가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든 이후로, 안 그래도 화살 같던 시간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여러 방면으로 생긴 제한 때문인가, 거창하게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코로나를 원망하며, 올해를 보내기 아쉬운 마음을 바이러스 핑계 삼아 위로하는 격이다.

 

사실 바이러스라는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상인데,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끼어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모순 같기도 하다. 그만큼 누구나 이전과는 다른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현재 와인바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요즘 들어 손님의 발길이 뜸해진 것을 느낀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줄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온기가 없는 가게는 왠지 쓸쓸하다. 시끌벅적해야 할 가게 안은 고요한 캐럴 노래로 가득하다. 사람 온기 대신 탈탈 돌아가는 난방기 바람으로 몸을 데우며,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던 연말을 더듬어본다.

 
11월부터 캐럴을 듣기 시작하는 나는 한 해의 끝자락을 꽤나 좋아하던 편이었다. 어딜 가든 잔잔하게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노래는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고,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호호 불며 먹던 붕어빵은 최고의 겨울 간식이었다.

 

얼굴 보기 쉽지 않던 지인들도 연말이면 꼭 보자는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12월은 만남의 약속과 모임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달이기도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여태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코끝이 시리지 않았던 건,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유지될 수 있었던 적정 온도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좀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아졌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형식적인 안부 겸 인사는 이제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같은 밥을 마음 편히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이처럼 대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세상은 빠르게 비대면 시스템을 추구하게 되었다.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사람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잘 착용하지 않던 마스크는 이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품이 되었고, 외출 시에는 신발을 꼭 신듯이 마스크 또한 그런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얼굴 부위인 눈만 내어 놓고선 각자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요즘 내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본 풍경이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표정과 자세로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재미와 편리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전자기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한 섭섭한 마음에 시선 둘 곳 없는 두 눈만 끔벅거리던 나였다.
 
최근 ‘메타버스’와 관련한 온라인 플랫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해오던 것들을 온라인에서도 진행할 수 있도록 디지털 세상이 구축되고 있다. 디지털 세상 안에서는 캐릭터가 각자의 정체성을 대신한다. 실제와 비슷한 느낌을 내는 대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나 대신 행동하게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좀처럼 갖기 힘든 잘 다듬어진 얼굴형에 고양이처럼 큰 눈을 가진 캐릭터가 나는 아직 조금 낯설기만 하다.
 
가속화되는 디지털 세상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세상이 변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인 것도 맞지만, 여전히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나는 촉감이 결여된 세계가 아쉽다.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과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의 자리가 지금보다 더 희미해질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 편의 또한 분명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온기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눈빛에 담긴 것을 읽고, 목울대에서 터져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들으며, 계속해서 지나가는 일분 일초를 함께 흘려보내면서 당대의 공기와 감촉을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그냥 묻어두지 않기를 바란다.

 

똑같이 찍어낸 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닌, 각자의 눈동자가 담은 시선과 시선이 마주했을 때의 풍성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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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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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겨울
    • 코로나로 빨리마무리 되어 친구들이랑  마주보며 수다떨고 싶어지네요. 그런날이 빨리오겠죠,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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