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약자를 위한 파괴적 위로 - 지구를 지켜라! [영화]

좋은 비유란 무엇일까.
글 입력 2021.12.0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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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예상보단 더 괜찮았던 영화. 잘 만든 이음새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계에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긴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대충 이런 평균치가 내려질 것이다. 엄청난 걸작은 아니지만 정체성이 굳건한 수작라고는 할 수 있겠다.

 

‘권력 우선주의의 타락한 사회와 그 안에서 고통 받는 희생자를 그린 블랙코미디’는 세고 셌지만 왜 <지구는 지켜라!>는 여타 영화와 좀 다른 걸까? 그건 아마 이 블랙코미디가 현실을 빗대는 방식이 조금 독특해서일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현실에 대해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몇몇 메타포를 등장시켜 은근히 돌려 말하기도 하고, 아예 현실에서 본을 딴 가상세계를 설계하기도 한다. 서사 전체에 영향을 미치진 않더라도 샷을 이용해 이미지화 시키는 경우 또한 다반수이다.

 

예를 들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다룬 영화 <귀향>(2015)에서 기계처럼 성을 상납해야 했던 피해자들을 표현하겠다며 카메라를 부감으로 들어 올려 벌집처럼 빽빽한 방들을 보여줬던 장면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잘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역사적 감수성을 이용해 ‘좋은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성노예 피해자들의 고통을 순화해서 그렸고, 사태의 초점인 한일 정부 사이의 문제를 말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서사를 집어넣어 감성만을 자극했을 뿐,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이슈화를 시켜준 것만은 인정한다).

 

그렇기에 위의 ‘벌집씬’이 아무리 좋은 비유였다 한들 그것은 의미가 없다. 비유하려는 내용의 핵심을 짚지 못했기에 그 ‘비유’는 원래의 목적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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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지구를 지켜라!>는 좋은 비유성을 가지고 있다. 메시지의 전달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에 비유되는 강사장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강사장은 전형적인 권력자의 모습을 내포한다. 이익 창출만을 위해 공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외면하고 서비스직에 막 대하는,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혼자 열을 내는 전형적인 부자-꼰대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병구의 시선 속 그의 행보는 외계인의 계략으로 비춰진다. 불륜이 지구정복을 위한 내통이라 믿을 정도로 독특하고 비사회적인 병구의 시선은, 권력자의 추악함이 마치 외계인의 것이라 여겨질 만큼 기괴하고 흉측한 것이란 비유를 만들어낸다. 마치 오프닝에서 술에 취해 꼬부라진 강사장의 주정이 외계어로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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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야기는 강사장이 과연 진짜 외계인일지, 아니면 그냥 더러운 권력자일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과정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수법은 ‘불신과 배신’을 섞어내는 것으로 때에 따라 적절한 미끼를 던져주곤 한다.

 

어쩌면 병구의 말이 모두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경찰이 그의 정신과 기록을 찾을 때, 분명 말을 했던 엄마가 실은 혼수상태 환자였을 때, 찌질이라는 말에 반응하며 강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때. 영화는 강사장의 변명과 형사 캐릭터를 이용해 차근차근 병구의 주장에 불신을 심어 넣는다.

 

또한 후반부에 갑자기 스스로 외계인인 것을 인정하며 고대 지구멸망 스토리를 읊는 강사장의 변화를 통해 급작스럽게 관객을 배신하지만, 책 짜깁기였을 것을 추정하며 다시 한 번 그 불신을 견고하게 만든다.


후반부 병구가 ‘뒷처리’ 해야 할 취급을 당하며 강사장이 안전하게 공권력에 구조될 동안 ‘외계인설’이 가짜일 것이란 불신은 종결을 내리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진짜 외계인’의 ‘깜짝 등장’을 통해 그간 쌓은 불신을 모두 ‘배신’해버린다. 외계인과 부자사장 사이의 밀당은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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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는 권력자를 외계인에 비유해 한 걸음 물러나 낯설게 보게 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풍경들이 누군가에겐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얼마나 이상하고 추악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강사장 뿐만 아니라 경찰, 교도소 감시관, 고교 동창과 선생 등 사회 속 많은 부분에서의 폭력성을 느끼게 한다. 한 명 캐릭터에서 시작된 비유는 곧 사회 전체의 폐해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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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을 탄 안드로메다인들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럽다. 외계인들의 분장은 마치 어린이 드라마에나 나올 것처럼 허술하고 CG는 어이없을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이유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약자들에게, 아예 지구를 폭발 시켜 버리는 파괴적 위로를 건넨다. 허무맹랑한 내용에 허술한 표면을 갖고 있더라도 정확한 목적으로 그 끝을 제대로 마무리 짓는 게 진짜 좋은 비유일지도 모른다.

 

세련된 이음새를 가진 채 입만 번지르르한 것보단 낫다.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2003, 한국.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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