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유쾌한 글맛으로 전하는 작고 소중한 다정들 - 다정소감 [도서]

모든 다정은 작고 소중한 감정들을 남겼다. 그러니 뻔한 다정은 없다.
글 입력 2021.12.02 18: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무능력했지 무기력하기까지 할까 봐!”라고 덮어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얻게 되는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

 

- 에필로그 中

 


다정소감 표1.jpg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전국축제자랑》까지, 주로 에세이를 써왔던 김혼비 작가의 첫 산문집 《다정소감》이 출간되었다. 책을 받아든 순간, 개나리꽃이 연상되는 선명한 노랑빛의 하드커버와 그 위에 그려진 어떤 얼굴, 그러니까 싱긋하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에서 ‘다정’의 얼굴이 느껴졌다.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느낌도 좋았고, 결국 모든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다정소감’이라고 붙였다고.

 

해당 책은 그가 겪은 무수한 ‘다정’의 순간들을 여름 동안 정성껏 얼려 내보내는 글들이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여기서 '김솔통'이란 무엇인지, 왜 작가는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는 고백의 말부터 시작하여 그의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다정의 순간들을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시기도 제각각이고 연루된 사람들도, 벌어지는 상황도, 세부 디테일도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흐름이 있다. ‘내가 어떤 이유에서 녹록지 않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그 사실을 알거나 모르는 타인이 작거나 큰 다정한 호의를 베푼다. → 그 다정한 호의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러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김혼비 작가의 매력인 동시에 이번 책《다정소감》의 매력 3가지를 덧붙였다.

 


 

첫째, 느껴진다. 글맛이.


 

글맛. 글이나 문장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그것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를 의미한다. 김혼비 작가의 글에서는 글맛이 느껴진다. 그만이 뽐내는 특유의 운치가 있고 재미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나 감정에도 그의 손맛이 곁들여지는 순간 더욱 구체적으로 맛있어진다.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동시에 마음속으로 느껴진다.

 

김혼비 작가의 문장을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살짝 길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많이 마주한다. 이는 그가 겪은 상황과 감정을 설명할 때 자세하고 섬세하고도 풍부한 비유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 설명이 절대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적확하고 절묘한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요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는 순간의 강변 같은, 일순간 얼굴 전체가 환해지는 웃음이었다. (p.132)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 않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p.136)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p.210)

 

 

이렇게 잘 표현된 글을 볼 때면,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경외의 눈빛과 함께 감탄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감정을 이런 방식으로 자세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면서 말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여전히 건조하게 느껴지는 단어와 표현들이 그의 글 안에서 촉촉이 스며들어 말랑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쩌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가는 멋드러지는 구절을 읽고 나서 그와 같은 위트 있는 필체를 따라 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렁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사고의 전환에 이르게 하는 참신한 결론


 

자칭 친구라고 칭하는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 김소영 작가가 맨 끝 추천사에도 적어두었듯, 김혼비 작가가 논리적으로 내린 참신한 결론은 대부분 시야를 넓히거나 아예 다른 곳을 보게 하는 통찰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꼰대’와 ‘명절 제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래는 ‘꼰대’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담은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남에게 충고를 안 함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나는 이게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할 만큼 두렵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만들어낸, 투명해서 갇힌 줄 모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있을 때 누군가 이제 거기서 잠깐 나와 보라고, 여기가 바로 출구라고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p.75)
 

 

아래는 ‘명절 제사’에 대한 이야기, <조상 혐오를 멈춰주세요>이다.

 

여성들에게 명절은 직접 겪든, 간접적으로 건너 듣든, 가부장제라는 질긴 악습의 잔재를 집중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기간이다. 이러한 제사를 없애자는 이야기에 반박 아닌 반박으로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바로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으면 조상을 화내게 할까 봐 두렵다는 것. 이에 대한 그의 반박은 이렇다.

 

 

‘당신은 당신의 생일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지 않거나 바빠서 축하를 잊고 지나가면 서운함을 넘어 이글이글 분노가 끓어올라 그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대부분 아닐 것이다. (문명사회 인간의 상식을 믿고 싶다.)근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왜 조상들은 그런 영혼일 거라 믿어요?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p.84-85)

 


그리고 다다른 결론은 이렇다.


  
이제라도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조상에게 깊은 신뢰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조상님들이 제사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넓은 마음으로 후손의 번영을 바란다는 것을, 먹고 사느라 지친 후손들이 침대에 몸을 누인 채 명절 내내 푹 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 재충전하기 바라 마지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조상들이 후손에게 이런 ‘조건 없는’ 은덕을 펼쳐 보일 기회를 오히려 그동안 제사가 박탈한 게 아닐까. (p.86-87)
 

 

읽고 보니, 각 소제목은 그가 겪은 사례와 감정의 흐름 끝에 마침내 내디딘 결론이다. 그는 나만을 믿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꼰대질이 될까 봐 충고를 아끼고 머뭇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꼰대질 사절!’을 철회하는 동시에 ‘꼰대질 환영!’으로 간판을 바꿔 걸었다. 그리고 후손(특히 여자들)을 괴롭히며 제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한국 조상의 이미지는 이미 최악일테니, 이제는 ‘밥에 환장한’ 이미지로 소비하는 조상 혐오 행위를 멈추는 것으로(제사 불참) 예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되고 그러다 다다른 결론은 꽤나 논리적이고 명쾌했다. ‘아차!’하고 기존의 사고의 빈틈을 날카롭게 비집고 ‘진짜 그러네’하고 묘하게 설득되더니 부족했던 근거들이 아낌없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셋째, 괄호 안에 담긴 진짜 마음의 소리


 

책을 읽다 보면 진지하게 그의 철학을 읽어내려 가다가도 어떤 대목은 어딘가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서야 “뭐야, 또 농담이었잖아?”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주로 괄호를 열어 기본 폰트보다 작은 크기로 써낸 뒤 닫은 문장들이 그러하였다.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툭툭 내뱉는 것 같은 이 마음의 소리들은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직설적이라 시원하고 유쾌했다. 나중에는 괄호가 삽입된 문장만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농담 몇 문장들을 적어둔다.


 

(중략) 오늘은 큰마음 먹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주말 아침잠 30분이 직장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달라) (p.38)

 

책에 비하면 도끼는 얼마나 괜찮은 녀석인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쪼개진다’도 아니고 ‘잘린다’도 아니고 그냥 ‘찍히는’ 정도라니. 종이로 만든 책도 이런 식으로 발등뼈에 금을 내는데 도끼처럼 예리한 날을 가진 무거운 쇠붙이가 발등에 저지르는 일치고는 제법 관대한 처사 아닌가. 그 정도면 꽤 믿을 만했던 도끼라는 생각이 든다(이 속담에서 ‘발등 찍힌다’는 현상의 기술이고 찍히고 난 이후의 결과는 함축적으로 처리된 거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망할 책을 책망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힌 내가 그것까지 친절하게 고려할 여유는 없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p.111)

 

딱히 리더십이 남달랐던 건 아니다.(겸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지금도 나는 유독 ‘oo십’이라고 끝나는 것들이 부족하다. 물론 나이는 사십이지만.) (p.131)

 

어떤 날에는 정말 잠깐 스쳐갔을 뿐인데도 1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몇몇 승객의 얼굴이 있었고(아니, 손님들, 그동안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제 메모리를 잡아먹고 계셨던 거에요?) (p.147)

 

 

다정.jpg

 

 

“서로의 비행을 응원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힘에 부쳐 주저앉아버린 순간에 문득 펼쳐볼 수 있는 다정한 기억들을 서로의 마음에 하나씩 쌓아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p.153)

 

해당 대목에서 ‘비행’은 작가가 20대의 한 시절 한 승무원으로서 공중에서 날아다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대목을 빌려, 비행이라는 단어가 실제 비행기 안에서의 비행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서 날아오르는 순간’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란,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게 경험한 다정한 기억들을 켜켜이 쌓아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고유한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를 만들었듯, 그의 '다정소감'을 통해 독자는 뻔한 다정은 없음을 느끼고 대신 고유한 다정을 마음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을 김혼비 작가의 책《다정소감》과 함께하기를, 그래서 작가가 프롤로그에서도 밝히듯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작고 소중한 다정의 마음들이 서서히 녹아들길 바란다.


 

 

press 명함.jpg



 

[신송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0299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