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의 모든 순간이 평평하기를 - 1차원이 되고 싶어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1.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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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을 바라지만


 

막 스무 살이 됐을 무렵, 진정한 어른됨을 꿈꾸던 나에게 스스로 쥐여준 과제는 '1인분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것'이었다. 이는 곧 1인분의 부피감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는데, 단순히 내 육체가 차지하는 물리적 공간 같은 의미는 아니다. 개념으로 머리를, 관념으로 가슴을 채워 한 존재로서의 충분한 부피감을 갖는 것. 구태여 누군가 불어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둥글고 팽팽하게 살찐 풍선이 되는 것. 그래, 나는 3차원이 되어야겠다. 코와 입이, 손가락과 이마가 만든 당연한 육체의 굴곡에 안주할 게 아니라, 내 존재마저 입체적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가능하다면 미지의 4차원, 또 5차원으로까지 나아가보자.


그런데 어떻게?

 

대학에 입학해 영화 연출을 공부하면서 이 욕구는 내 작품 속 인물들에게까지 투영되기 시작했다. 평평하고 납작한 캐릭터란 항시 비판의 대상이었다. 모든 행위가 쉽사리 예측되는, 뻔하디 뻔한 서사의 끈을 의욕없이 쥐고 게으르게 달리는 인물들.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는 것은 그 평평한 인물을 살찌우고 채워 충분한 과즙을 지닌 단단한 오렌지 한 알로 만드는 과정과 같았다. 나는 물론이요 내 손을 타고 탄생한 인물들도 모두 3차원이 되기를 오래 소망해왔다. 지구는 둥글디 둥그니, 그 속에서 3차원이 되지 못한다면 살아갈 자격도 필요도 없다고.


그런 나에게 박상영 작가의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그 제목부터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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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알라딘


 


버리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과거를 다시 주워왔습니다


 

사실 책을 받아들기도 전에 '박상영 작가의 신작이라니, 그것도 첫 장편 소설이라니!' 하는 기대감부터 심상치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사실이 걸렸지만 예약 판매 신청을 걸어놓고 배송일만을 고대하기를 참을 수 없었다. 박상영 작가의 전작을 모두 탐독하고 속절없이 팬이 된 나로서는 그의 작품을 한 마디로 일축해 '문제적이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문학이란 좋은 문학의 가능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고, 좋은 문학으로 존재를 채우는 일은 내 삶의 동력이기도 하니까.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심리상담사인 '나'에게 도착한 스산한 메시지로부터 시작한다. '1004'라는 이름의 누군가는 수성못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주인공이 이 심상치 않은 사건과 어떤 연결관계를 지닌 건지에 대한 의문으로 서사적 긴장감이 이어진다. 이는 주인공의 과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서서히 밝혀지는데, 이에 따라 '나'의 기억은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치 열기에 젖어 있었던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 열기가 대단했던 D시에서의 어지러운 10대 풍경과 심리상담사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30대 중반 '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것이 작품의 주된 구성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온 편지'로 인해 D시의 수성못에 깊이 잠겨있던 과거가 밀려옴을 경험한다. 10대 시절 '나'의 서사는 무척이나 복잡다난하고, 씁쓸하고, 고통스러우며, 동시에 속절없이 사랑스럽다. 무난한 모범생으로 스스로를 꾸며간 '나'와 '나'가 사랑해 못지 않는 '윤도', '나'와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던 '무늬', '나'를 짝사랑하던 '태리'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은 사실 그 누구하나 평평한 이 없다. 모두 3차원이다. 그러나 함께일 때만큼은 '1차원이 되고 싶은', 자신의 부피감이 슬픈 3차원들일 뿐이다. 이들의 3차원적 모순은 아래의 구절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는 강박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을 가지고 싶다는 상반된 욕망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혔다.

 

- 1차원이 되고 싶어, p. 49

 


2000년대 초에 학창시절을 지낸 경험이 없는 나이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그려내는 그 시절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당시 청소년들이 향유하던 책, 음악, 노래, 만화 등은 대개 낯선 이름들이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추억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유난히 보수적인 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주인공이 겪은 학교에서의 일들은 차마 추억이 되지 못한 개인적인 기억들을 불러내기도 했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것이 들끓어가던, 그중에서도 유난히 미온했던 '나'는 '윤도'로 인해 비로소 그 분위기에 조금은 젖어들어간다. 윤도와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둘만의 추억을 쌓아나갈 수록 '나'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나'는 모서리 없는 모범생 이미지로 스스로를 두르는 것에 익숙하고 또 능숙한 인물이었다. 불안정한 가정 환경과 가난, 드러낼 수 없는 은밀한 취향, 꽤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남자로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성지향성 등은 모두 철저히 감춰야 할 것들이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분명 구원서사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울퉁불퉁한 3차원의 10대 주인공,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인물, 조력자, 그를 저지하는 장력 모두가 너무도 흥미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인물들은 서로에 의해 구원받는 듯 싶다가도 그 구원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서로를 할퀸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성취로 구원 받고 구원하겠다는 의지는 어리고 무지한 그들에게 있어 무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낭만 없는 세상에서 끝까지 낭만을 발화하는 작가는 언제나 필요하다. 책을 읽고 울어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 건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구원의 서사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그러나 종국에 이 소설은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구원을 바라며 허공에 손을 뻗었던 한 인간이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지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 내 소설 속 인물들이 허우적대며 노력했던 시간이 허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몸부림을 칠 때 생겨난 생채기와 그 위에 덮인 굳은살, 삶의 장력을 이겨내려다 만들어진 잔근육이 모여 삶을 버티게 한다고, 처절한 고통조차도 때로는 희망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고, 그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쓸 것이다.

 

- 1차원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 中

 

 

나에게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는 과정은 버리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하나씩 주워 담는 일과 같았다. 10대를 떠나온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때의 결핍이 여전히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나는 주인공 '나'처럼 그저 탈선이 두려워 충실히 공부했고, 자주 실패했으며 가끔의 성취를 위로 삼아 버텨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윤도'와 같은 짝사랑 상대 하나 없는, 오히려 누군가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시니컬한 채로 건조한 10대를 보냈지만 나 역시 감추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진정한 3차원으로 부풀려갈 수 없다면 1차원으로 납작해지고 싶었던 치기어리지만 소중한 욕구들은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필요한 삶의 태도라 느낀다.

 

과거를 주워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 일직선상의 하나의 인물로 관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타인과의 수많은 이어짐이 존재했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얼마나 놀라운 소설인지.

 

 


그래도 여전히, 사랑



 

꽤 오래전부터 너를 좋아해왔어.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잘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하고 있어. 세상 그 누구보다 너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는 것, 자주 생각한다는 게 애정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의 총량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야. 


나는 내게 주어진, 내가 가능한 삶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습관이 있어.


그 속에는 항상 네가 있어. 바보 같이.


- 1차원이 되고 싶어, p. 20

 


'나'가 짝사랑하는 '윤도'에게 발렌타인데이 초콜릿과 함께 전달한 편지 내용이다. 소설 극초반의 등장하는 장면인데도 벌써 이 서사에 속절없이 사로잡힌 나를 발견한 부분이었다. 이 모든 서투름과 허영, 책임지지 못할 정념들이 이토록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막연한 향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1차원이 되고싶어」의 서사를 한 마디로 일축하자면, 10대는 엉망진창인 채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서 받으며,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흡수해가며 3차원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1차원이어도 좋다고 흔쾌히 말해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건 아무 답도 들려주지 않는 신을 부르짖거나, 사랑을 이유로 타자를 소유하려 들거나, 노력 없이 얻은 나이를 무기로 사용하는 어른들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아주 서툴게 위로하고 껴안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10대로서 그저 완벽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가 '윤도'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무늬'나 '희영'과 같은 친구들은 항상 도처에 있었다. 그들은 나와 세상을 단단히 이어주는 존재들이었고, 내가 감히 사랑을 논해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이기도 하다. 「1차원이 되고싶어」를 읽으며, 특히 천장이 내려 앉는 기분이 든다면 스스로를 점으로 축소시켜보라는 '윤도'의 말을 지나치며 나는 내 10대를 이룬 친구들에 대해 생각했다. 비로소 그들과 나를 잇는 경험을 했다.

 

 

"그럴 땐 너 스스로를 점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점?"

(중략)

 

"잘 생각해봐. 원래 너무 멀고 너무 큰 걸 생각하면 누구나 다 질리게 되어 있어. 나도 밤하늘을 보면 그래. 이 넓은 우주 속, 저 많은 별들 중의 하나인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면 그냥 다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거지. 저 별도 지구도, 나도 그냥 다 점이다. 좆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게 뭐냐."

"아니면 천장 말고 창문 너머의 세계를 떠올려봐. 거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랑 나를 연결하면 또다른 선이고. 천장 너머의 또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 1차원이 되고 싶어, p.120~121

 

 

소설은 철저히 '나'의 시점으로 전개되어 '윤도'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윤도' 역시 '나'를 소중히 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 장면이었다.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괴로워질 때를 위해 우리는 평평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은 어쩌면 철저히 납작해지는 과정일 지도 모른다.

 

 

 

박상영 월드는 계속된다


 

박상영 작가는 어느 날 혜성처럼 날아와 한국 퀴어 문학의 지평을 연 작가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에서도 퀴어의 소수자성이 적극적으로 발화되고 있지만, 더이상 박상영 작가의 작품을 퀴어 담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아이들을 옥죄는 대입 경쟁 시스템, 학교폭력을 비롯한 청소년 범죄, 학군과 관련된 주택 문제 등을 인물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여내 기이하고 수상했던 2000년대 초반 사회를 비판한다. 이런 외적 환경들 역시 10대들의 고통과 상흔을 넓혀갔음을 명시하는 것이다. 잘못은 아이들이 아닌 사회와 시스템에 있을 지 모른다는 가정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세태 소설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고 느꼈다.

 

「1차원이 되고싶어」를 통해 박상영 작가는 다시 한 번 내 최애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공고히 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나'가 더 이상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 방식으로 윤도가 아닌 태리를 만난 것이 함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지나온 과거에서 소외되고 외면받아온 누군가에게, 가끔은 함께 부둥켜 앉은 채 한없이 납작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또 나 역시 이를 말하는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다짐으로도 이어진다.

 

「1차원이 되고싶어」에 잠겨 있는 내내 수없이 행복했다. 벌써부터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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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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