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회귀

글 입력 2021.11.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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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을 했다.

 

자소서를 쓰는 즈음부터 이제껏 아트인사이트를 떠났다간 이 글을 들고 다시 돌아온다. 취업 준비 내내 활동한 아트인사이트에 돌아오자니, 취업이 그제 실감 난다. 직장생활로 인해 아주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이 한 번에 터져 오는 것이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내 안에 가득했던 독기 毒氣들이…. 그러나 아주 타인의 일인 양 낯선 거리감 속에서 상기된다.

 

쓰는 일은 어떻든 삶의 중심을 잡는 일이었다. 감각하는 나, 자아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매 만성적인 불안을 야기하고 이제 그것이 의식을 흔들어대기 시작할 즈음이면,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백지 앞이다. 지난 한 해 나를 백지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은 9할이 독기, 우울과 표독과 두려움이 낳은 강박과 초조와… 그 외 남은 9푼의 외로움이다. 독기에 숨구멍마저 파묻히기 전, 나는 표류하는 자아의 치우침을 다잡아야 했고, 위하여 생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다시 상기하는 지금, 고요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 모든 것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벗어날 수 없는 천성 같은, 또는 매일이 심장을 솟는 생명 같은, 그 모든 감정 상태가 낯설도록 잊히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벗어나길 갈망했던 것들이 가고 난 빈자리에는, 갈망의 간절한 만큼 커다란 구멍이 남기어진다는 것을 처음 안다. 이것은 허무일까. 그때의 나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가소로운 말이지만, 그 간절함 즉 갈망이 또한 생의 감각을 이루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호 그립지는 않지만, 어떤 허무 앞에 놓이니 이런 생각마저 든다.

 

생의 감각, 그것은 무언가를 `열망`하며, 달리 말해 꿈꾸며 그 미래를 향해 달리어 가는 마음이다. 그 마음에서 절로 파생되는 매일의 목적의식은 곧 보상. 저기 열망의 자리에 `갈망`을 대치하니 뒤틀린 생의 감각에 대한 개념이 생성된다. 역설적인 감각, 그것은 희열로써 나아가는 행복한 마음이라기보단 고통에서 벗어나고자는 애처론 마음. 그러나 또한 고통으로써 여기 살아있음을 느낌이란… 눈물겨운 인간의 역설이 아닐까.

 

벗어난 다음 보니, 허무가 찾는다. 아니, 무언가를 열망한 끝에 다다른들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열망이든 갈망이든, 나아감이든 벗어남이든 다다른 끝의 허무는 피할 길이 없지 않은가. 권태로부터 달아나고자 생의 감각을 좇은들, 그 여로 위에 종종 허무가 자리해 있음을 이제 본다. 그럼에도 쟁취해야 하는 것. 나는 다시금 생의 감각을 획득하기 위하여 여기 회귀 回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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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를 떠미는 것은 거진 독이었다. 취업준비생의 마음에 자리한 독이란, 과연 이 세상에 내가 쓸모를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단히 회의적인 두려움.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갖게 되는 응당 두려움이다. 업을 갖고 보니 참으로 과장된 생각이었음을 알지만, 그땐 채 알 수 없는 것. 더하여 이런저런 속 시끄러운 것들에 떠밀리던 등 뒤가 지금 허전하다. 우울과 표독과 강박적 두려움이 가신 다음, 9푼의 외로움만으로는 내 살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연극을 감상하지도, 콘서트에 가지도 않았다. 휴일에는 그저 드러누워, 유튜브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청춘이 가는 것을 아쉬워만 하면서 말이다.

 

등 뒤를 찌르고 몰아대는 것들이 사라지니, 천성인 나태가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것으로 좋은가, 나는 은연중 그것을 계속 생각하며, 새로이 고요한 두려움을 느낀다. 속 시끄럽지도 나를 몰아대지도 않지만, 서늘하게 감각되는 이 새로운 두려움. 생의 감각을 시나브로 잃어버리며 무색 無色한 인간이 되어버리리라는 두려움과 허무에 빠진 채 길을 잃어버리리라는 두려움과 결국 다시금 권태에 갇히어버리리라는 두려움.

 

내게 있어 개념적 청춘이란, 어떤 모습이든 생의 감각을 안고서 열렬히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이다. 어느 시점으로부터 생의 감각을 되찾지 못하게 될지는, 즉 청춘이 가버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당장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허무와 권태에 사지가 속박된 채 찬찬히 청춘을 잃어버리리라는, 침울한 오후 햇볕 아래 갈 곳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리리라는 두려움에 생각은 미친다.

 

아트인사이트로 돌아온 까닭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끄집어 백지 앞으로 데리어 오기 위함이다. 삶의 중심을 되찾기 위하여 나는 언제나 그러했듯 써야 한다. 또한 무형의 계단을 잡아 올라 등반하는 삶의 감각을, 또는 나아가는 감각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언제나 써야 했다. 내 등을 떠밀던 아픈 바람이 그쳤고, 나는 다시금 나아가기 위하여 무엇이건 간에 붙잡아야 하겠다. 쓰는 일은 언제나 삶의 중심을 잡고 또 나아가는 일, 직장과 텅 빈 집만을 맴돌며 찬찬히 썩어가는 적막한 이 회귀에 새하얀 바람은 불어라.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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