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

공적인 하나. 개인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이재규 - [완벽한 타인]
글 입력 2021.11.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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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있어서 이제 휴대폰은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전화, 문자, 이메일, 일정관리, 결제 등 모든 것들을 휴대폰 하나로 해결 가능하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바꿔서, 휴대폰 안에 나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 한 사람의 휴대폰을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대부분을 알 수 있다.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블로그에 쓴 비밀글, 사진첩, 카톡 내역,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이들을 팔로우 하는 지로.

 

함께 저녁을 먹은 친구의 휴대폰 속 나의 번호가 '재수 없는 놈'이라고 저장되어 있을 수도, 짝사랑하는 이의 이름 앞에 의미심장한 특수문자가 붙어있을 수도 있다.  상대방은 알 도리가 없지만(웃음).

 

그래서인지 연인 간에 가장 대표적인 갈등 요소가 바로 '서로의 휴대폰을 오픈해야 하는가'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상대방에게 비치지만, 휴대폰은 나의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도 지니고 있으니까.

 

영화 '완벽한 타인'은 한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그 휴대폰의 정보들이 타인에게 드러났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왜 그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결심했을까.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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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모 : "아무튼 핸드폰이 문제야.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게 들어있어. 통화내역, 쇼핑 내역, 문자, 위치, 스케줄. 완전 인생의 블랙박스라니까. 아마 여기도 핸드폰 보자고 하면 못 보여줄 사람 많을걸?"

 

예진 : "그럼 우리 중에 비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석호 : "당연하지. 최소한 이것들하고는."

 

예진 :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다 공유하는 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 영화,  완벽한 타인 中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죽마고우 4명. 석호(조진웅), 태수(유해진),  준모(이서진),  영배(윤경호)는 석호의 집들이를 위해 모인다. 그들의 연인들 예진(김지수),  수현(염정아), 세경(송하윤)과 함께 석호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휴대폰과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예진이 한 가지를 게임을 할 것을 제안한다. 바로 저녁 식사 동안만큼은 서로의 휴대폰으로 오는 모든 것을 공유하자는 것.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 게임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믿는다고 자부한 그들의 생각은 산산조각 난다. 바로 휴대폰으로 말미암아서.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선을 정하고, 기준선 밖으로 내보일 나의 모습을 선별하여 내비친다. 결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가 정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문제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기에.

 

서로의 휴대폰을 본다는 것은, 상대가 정한 그 경계선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그 선을 넘는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왜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게임에 참여했을까.

 

사실 그런 '게임'을 제안받은 순간부터, 참가를 강요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음이 아닐까. 거부한다면 켕기는 것이 있다고 시인하는 꼴이니까. 그러나 의심을 사기 싫어서 한 행동이 파국으로 치닫는 급행열차의 출발신호였음을 영화를 본 나는 안다.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들이 게임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도 결말을 예상했을까?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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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 "나는 가슴수술하면 안 돼?"

세경 : "저번에 언니가 강연에서 그러셨잖아요. 성형은 유약한 심리를 이용하는 최악의 의술이라고."

예진 : "그건 그냥 강의니까..."

수현 : "왜 나는 안 불렀어?"

 

예진 : "미안해. 어린 게 똑똑한 척하잖아. 그래서 난 정부에서 초청한 강의도 한다. 하면서 기 죽이려 했던 거야. 그랬더니 저렇게,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수현 : "쟤 진짜 보통 아냐. 조심해. 너랑 나랑 갈라놓으려고 일부터 그런 거라니까. 아니면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네가 돈도 많고 잘나가고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은데, 넌 나만 좋아하거든. 자기가 감히. 우리가 어떤 사인데."

 

- 영화, 완벽한 타인 中

 

 

예진과 세경, 수현이 모여있으면 그들은 최고의 친구들이다. 그러나 예진과 세경만 있게 되면 수현은 험담의 주인공이 되고, 수현과 예진만 있을 때에는 반대로 세경이 적이 된다. 그 상황 속에 있는 인물들만 있을 때에는 이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비밀을 지키면서 유대를 강화하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날것으로 상대방에게 알려진다면? 상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난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순간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게 이상하진 않은 듯싶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상대방이 가진 것을 자랑하면 부러워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유세 떠는 것 꼴 보기 싫다'라고 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고민을 터놓으면 '쟤도 결국엔 저런 문제가 있네. 내가 그런 면에서는 더 낫지'라며 자위한다.

 

이렇듯 다른 이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비밀은 내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 내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만이 또 어디 있을까. 고작 저녁 식사 자리의 휴대폰 공개로 꽁꽁 숨겨놓은 비밀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데.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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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배 : "고소하자고?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40년 지기 불알친구한테도 말 못 하는데, 고소 해서 온 세상에 다 알릴까? 재판에서 이겨도 나는 결국 패배자로 사는 거야. 판사가 뭐라고 해도 하나도 변하는 거 없어. 아무도 날 이해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응? 우리 엄마도."

 

태수 : "영배가 왜 얘기 안 했는지 내가 말해줄까? 내가 오늘 두 시간 동안 게이가 돼봤는데, 못 해먹겠더라. 야, 우리 친구 맞지? 그치? 마음 통하는. 오늘 우리 게이 친구 하나 생겼네.

 

영배 :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어. 만약에 민수가 오늘 여기 왔다면, 너네는 아무렇지 않게 잘 대해줬을 거야. 앞에선 늘 그러잖아. 안 그래? 근데 결국, 너네 눈빛에 상처받았을 거야. 난 그 사람 상처받는 게 싫어. 사랑하면 지켜주고 싶거든. 휴대폰으로든, 니들로부터든."

 

- 영화, 완벽한 타인 中

 

 

4명의 죽마고우 중 한 명인 영배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서,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 중요한 사실을 40년 지기 자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배신감과, 이해하기 힘든 성적 취향의 문제로. 그럼에도 친구는 친구기에,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다음에는 영배의 애인도 소개해달라 하지만, 영배는 거절한다.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대중의 눈빛을 알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영화에선 '게이 코드'를 그저 재미를 위해서 집어넣지 않았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감히 고백하자면 영화를 보면서 '탄로 나면 파탄 나는 비밀을 안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너무 짧네.'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하지만 후반부 영배의 대사를 들으며 머릿속에 강한 충격이 들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러나 비밀로 해야만 하는 사실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소수자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우리를 칭할 때 성다수자라고 말하지 않기에. 애초에 나는 개인의 성적 지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조차 전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한국에서, 그들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숨겨야 한다.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 속에 원만하게 섞이기 위해선 모나지 않아야 하니까. 영화 제목인 '완벽한 타인'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인 듯하다. 각자의 휴대폰이 공개되면서 친구가, 연인이 사실은 완벽한 '타인'이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지만, 영배는 '완벽한' 타인을 연기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우리와 같은 우리 주변의 이들이다. 정체성을 밝히는 것만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회에서 얼른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 아는 것이 아닌, 안다고 착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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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 "아까 게임 왜 안 한다고 했어?"

석호 : "그냥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예진 : "혹시 나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건 아니고?"

석호 : "하이고, 내가? 정신과 닥터한테 숨겨봤자죠."

예진 : "근데 왜?"

석호 :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들이 없어요. 우린 상처받기 쉽고. 근데 이 휴대폰은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거든. 이 완벽한 기계로 그런 게임을 한다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사람들,  내가 아는 것보다 낯설 수가 있거든."

 

- 영화, 완벽한 타인 中

 

 

영화의 결말에서, 시간은 돌아가 사람들은 휴대폰 게임을 하지 않고 문제없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진다. 누군가는 이 결말을 조악하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한 번 그런 끔찍한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봐요. 결국, 파국이죠? 서로의 적당한 거리감이 있을 때,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좋아질 수 있어요.'라고 감독이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가 연 상자 속에는 증오, 질투, 분노, 고통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들어있다. 그것을 여는 순간 참극이 일어난다. 정확히 그 상자를 휴대폰으로 바꿔도 문제없을 듯하다. 적당한 거리감. 모든 것을 알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그 거리감이 인간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착각할 뿐이다. 서로에 대한 그런 착각 속에서, 세상은 어찌어찌 잘 돌아간다.

 

여러분에게 있는 비밀의 삶, 그 하나가 궁금하다만, 적당한 거리를 위해 묻지 않으려 한다.

 

모쪼록,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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