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 사람,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 연극 로테/운수

글 입력 2021.11.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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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작품을 가져다가 지금의 것으로 덧대길 좋아한다. 그런 작품을 보는 것 또한 즐겁고. 당장 5년 전의 사회도 지금과 다르다. 그 다름의 배경에는 발화자가 아니었던 존재들이 마이크를 쥐고 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세대가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연극이 반갑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운수 좋은 날’을 여성의 관점에서 말하는 연극이.


전자를 모르는 사람은 많다고 쳐도 ‘운수 좋은 날’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국어 교과서에서 최소 한 번은 만나봤을 ‘위대한’ 한국 근대 문학의 지표. 중고등학생 때 이 글의 주제를 이렇게 배웠다. ‘가난한 조선 민중의 삶과 비애’.

 

그러나 소설은 한 집안의 남성 가장인 김첨지만을 내세웠다. 그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은 철저히 대상화된다. 특히 김첨지에게 맞아 죽은 아내-심지어 이름도 모른다-는 그의 슬픔/후회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소설의 끝자락에서 ‘비애’를 만들어 낸다.


물론 시대상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땐 그게 당연해서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들 과거의 전유물로 오롯이 남기는 것도 옳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으니, 한발 더 나아가서 옳은 방향을 제시할 필요성 또한 생긴다. 이쯤에서 연극 ‘로테/운수’를 만든 극단 ‘하이카라’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들의 방향성은 이름 자체에 담겼다. 개화기 당시 서양식 공교육을 받던 여성의 비하 용어를 사용하여, 그 혐오에 반하는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창작 집단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내용도, 생각도, 질문도, 더 첨예할 것으로 생각한다. 연극을 보니 실제로 그러했고.


연극은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웠다. 시작은 로테, 이후엔 운수. 운수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남편을 살해한 죄목으로 재판장에 참석했다. 그의 이야기는 시청각적 충격이 극대화되는 대목이라서 글로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그래서 이건 직접 눈과 귀로 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지 않으려 한다. 대신 로테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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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라는 말로 폭력이, 살인이 용인된 세상.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죽어가는 여성들. 연극의 초점은 스토킹과 가정폭력의 고통을 꽤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울부짖고, 분노하고, 소리치며.

 


첫 번째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시작된다. 세 면이 흰 벽인 공간. 구석에 놓인 의자. 그리고 까만 페인트가 담긴 통 세 개. 문을 열고 등장한 로테는 대학 정교수를 꿈꾸는 부교수이다. 빨간색 정장은 그의 호쾌한 목소리와 제스처를 보여주듯 강렬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 일로 사회적 인정까지 받는 사람이 어쩐 일로 정신과에 온 걸까.


로테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 그런 나날들. 교묘한 균열은 있었다. 사물의 위치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달라진다는 것. 눈에 보이는 변화이지만 실체가 없어서, 어쩌면 사실로 받아들이기 무서워서, 로테는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자꾸 깜박하나 보다.

 

그 찝찝함을 현실로 인지한 건 장미꽃 때문이었다. 파란 리본이 묶인 장미꽃이 하루, 이틀, 삼일, 그리고 일주일째 집 앞에 놓였다. 꼭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로테에게 아는 척을 하듯. 로테는 즐겁게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했던 서프라이즈 쯤으로.


하지만 출장 간 사람이 어떻게 매일, 그것도 로테가 퇴근할 무렵에 맞추어 장미꽃을 두고 갔을까. 남자친구가 아니라 존재 모를 다른 사람이다. 로테는 불안에 떨고 남자친구는 장난스럽다.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냐, 인기가 많다, 하면서.

 

사람이 두려움을 겪을 때 일반적으로 표출하는 모습 중 하나는 신경질적임이다. 자신이 마음 놓고 쉬는 공간이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 선을 넘었는데, 누군지 알 수 없으니 주변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 괴로움을 겪어보지 못한 자들은 ‘예민하다’라고 치부할 테고.


엄마에게 연락해도 답답한 상황은 여전하다. 제사상 차리지 말자는 말도, 남자친구를 서방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도, 자꾸만 공격하듯이 뱉어진다. 나의 공포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또 다른 공포심을 낳는다. 하지만 로테는 꿋꿋이 이겨내려고 한다. 아주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만큼 쉽게 악용되는 사물 모양의 초소형 카메라를 로테는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로 쓴다.


그리고 그날은 장미꽃이 현관문 앞에 없었다. 대신, 식탁 위에. 범인은 로테가 강의하는 학교의 스무 살 남학생이었다. 영상을 가져다 가 경찰서에서 고소하려는데 이 과정도 쉽지 않다. 또 ‘칭찬’의 말이 들린다. 인기 많아서 좋으시겠어요. 나무라기도 한다. 고소해도 주거침입죄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답답한 상황이 달라진 건 다름 아닌 남자친구의 등장 때문이다. 그가 소리 지르고 역정을 내자, 경찰관이 비위를 맞추며 고소 접수가 시작되었다. 로테는 이 일을 공론화하길 택했다. 더 많은 사람의 힘을, 응원을, 목소리를 믿으며.


기사가 쏟아졌다. 여교수를 스토킹한 한 남자의 순정. 직책 앞에 성별을 붙이는 기사들이. 피해자의 매력을 부각하며 가해자의 품행을 일탈 정도로 여기는 기사들이.


여기, 로테 말고도 한 사람이 줄곧 무대에 있었다. 까만 페인트를 천천히 한 겹, 한 겹, 덧씌운 사람이. 그리고 가해자의 ‘순정’을 들먹이는 실화 바탕의 소설이 등장하자, 페인트를 바르던 느릿한 몸놀림은 폭주로 돌변한다. 분노와 절박, 당황과 공포의 손길로 무대의 아주 끝까지, 까만색을 덮었다. 로테는 이제 두 발 디디고 설 자리가 없다. 의자 위에 몸을 웅크릴 수밖에.

 

 

“선생님, 저는 미친 게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정말로 괜찮고 싶었어요.”

 

 

은연중에 생각했다. 로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상담사는 로테를 이렇게 기록한다. ‘피해망상과 히스테릭한 성격’. 로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내내 이상하긴 했다. 갑자기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말을 뱉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과민반응을 보였다. 로테는 미친 걸까? 이 모든 게 로테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것이야말로 지나친 과신이다. 이 사람보다 자신이 세상살이를 잘 안다는 믿음에서 온 착각.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저 앞에, 저 뒤에, 저 옆에, 때로는 당신의 발 아래에 사람이 있다.


종종 누군가 묻는다. 괴롭고 힘든 이야기를 왜 굳이 찾아보느냐고. 아름다운 면도 충분히 많은 세상인데.

 

편하고 아름다운 건 언제 어느 때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암울한 이야기는 한마디 꺼내기조차 쉽지 않다. 실존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입을 막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그럼 선택지는 둘이다. 무지몽매함과 연대.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한다. 더는 여성들이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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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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