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를 업(業)으로, 예술은 취미로 (8)

구슬이 서말이어도 (기획이) 꿰어야 보배
글 입력 2021.10.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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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업(業)으로, 예술은 취미로 (8)

구슬이 서 말이어도 (기획이) 꿰어야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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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기획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건 광고쟁이를 꿈꾸던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광고 기획이라는 말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현실에 내보이는, 그러니까 머릿속의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내는 일 정도의 개념으로 성큼 다가왔다. 실제로 공익광고 기획을 해보면서는, 이거.. 쉽지 않은데..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획의 역사는 동아리 공연기획으로 이어진다. 기획의 주체도 없고, 명확한 분업도 없는 체계 아래에서 기획은커녕, 일을 분배하는 데 급급하기만 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저서 지적 자본론에서는 현대사회에서 기획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기획이라는 것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것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고, 그 결과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치밀한 분석을 통해 결과로써 보여주는 다양한 행위와 일들의 종합이었다. 그의 기획 중 가장 유명하고 인상 깊은 사례로는 츠타야 서점을 들 수 있다. 현대 서점들과 유사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 서점(책 이외의 다양한 것을 함께 파는)을 기획한 것인데, 고객들이 서점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적용시킨 기획이 인상 깊었다. 책의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철학은 책의 부제에도 쓰여있는데,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이다. 디자이너라고 그대로 쓴 저 말이 우리말로 옮기면 '기획자'를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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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늘날 같은 대(大) 유튜브 시대에 영상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기획이 필요하고, 카카오나 토스 같은 벤처 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서비스 기획자, UI-UX기획자 등의 말도 심심찮게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가 여행 중인 문화예술 기관에서도 '기획'은 역시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화기획'이나 '공연기획', '전시기획' 등 ~~ 기획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 역시 이곳일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은 문화예술 기관의 기획에 대해, 그리고 기획과 행정의 관계에 대해 아주 조금 엿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아직 어려운 기획의 세계



신입사원에게 미션이 주어졌다. 2021년의 마감까지는 앞으로 약 2달, 그 안에 주어진 예산으로 우리 사업과 관련이 있는 가지 사업을 하나 수행해야 한다. 우리 사업의 목적과 부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공의 예산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에 공정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며, 지금까지의 사업 성과와는 다른 방식의 결과물이 도출되어야 하고, 아마 종료 시기쯤에는 성과에 대한 압박도 조금씩 다가올 것이다.


먼저 사업을 하는 목적과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예산을 분배한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A와 B와 C에 쓸 돈을 구분한다. 얼핏 보면 착착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에 조금씩 안도감이 든다. 열심히 문서를 작성하며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고 있지..? 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퍼뜩, 내가 지금 행정을 하는 건지, 기획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현 상황을 진단을 내려보니, 아직 사업의 내용이 본인이 쓴 것임에도 너무나 불명확했다. 정확히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구에게 얼마큼의 일을 수행할 것인지 세부적으로 짜여 있는 게 없었다. 문서 상에는 분명히 딱딱한 말로 쓰여있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와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함께할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세세한 과정을 엮어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선배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본다. 다행히 수많은 피드백이 쏟아진다. 현장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거나, 조금 더 창작자나 예술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니면 그냥 기획자와 함께하는 것은 어떠냐는 조언도 인상 깊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과정은 기획의 탈을 쓴 행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창작자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착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기획은 말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첫 기획에서 조용히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줄 기획자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기획과 행정의 관계



우리의 여행지에서 기획은 행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기획은 행정에 활기를 불어넣고, 행정은 기획이 가는 길을 닦아주기도 한다. 물론 둘의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에 조금만 방향이 엇나가도 흔들거린다. 이를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행정가도 기획자의 시선을 가져야 하고, 기획자 역시 행정가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보통 그러한 관계에서 대부분 좋은 사업이 탄생한다. 일례로 좋은 기획자를 섭외하기 위해 알아보는 눈, 행정적으로 가능하게 도움을 주는 행정 역시 좋은 기획을 위해 꼭 필요한 기획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 막 씬에 들어온 초보 기획자는 기획의 전 과정을 맡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함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씬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구와 함께 일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끼리 함께해야 최고의 시너지가 날 수 있을지 등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방식으로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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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기획은 판을 깔거나, 다양한 요소요소를 엮는 역할을 한다. 오늘의 부제처럼 기획은 구슬들을 꿰어서 보배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색깔의 구슬들을 언제부터 어디를 엮어서, 잘 전시하는 것까지 기획자는 구슬을 꿰는 전 과정을 읽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문화기획에서 보배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때문에 기획자들은 이 사람이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남들보다 예리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 공부는 사람 공부



그래서 당연히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람 공부'다. 문화예술의 주체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기획도 사람과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고 연결하는 일이 많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A라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지의 경향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은 후에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기획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와 일보다는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공부가 될 것이라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행정가가 기획자가 될 필요는 없다. 강점을 보이는 부분에 더 투자하는 게 앞으로 발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기획자가 된다면, 기획의 시각으로 더 넓게 판을 볼 수 있다면 더 좋은 행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행정이 혼자서 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기획이 채워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거니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획 일이 흥미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몇 년이 더 지난다면 공공기관에서도 기획과 행정이 서로 믿고 지속 가능한 가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는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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