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처 하지 못한 첫인사를 건네며

영화 《쁘띠 마망(Petite Maman)》
글 입력 2021.10.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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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그러하듯 나 역시 엄마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던 생애 반절의 시간을 알지도 못한다. 어떤 꿈을 꾸며 살아왔는지, 어떤 것에 즐거워하고 어떤 것에 슬퍼했는지, 평생을 살아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그의 세계가 다만 나로 인해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 어쩌면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못 확실해 보인다. 각자의 변곡점과 시작점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서로가 없이 살 수 없는 현재에 치열하다. 그래서 내게 엄마의 과거란, 그 누구의 옛날보다도 떠올리기 어렵고 버거운 시간이다.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능하게 하고 떠올리기 힘들었던 기억조차 기꺼이 꺼내 보이게 하며 외면했던 슬픔과 그 너머의 기쁨을 직면하게 한다. 인물의 관계와 그 속에서 빚어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 《쁘띠 마망(Petite Maman)》은, 두 개의 시간이 혼재하는 환상적 공간을 구축하여 가까울수록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엄마와 딸의 시선을 맞춘다. 여덟 살 딸 넬리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누구나 다 경험했으나 다 자란 후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풍경을 나지막이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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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넬리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넬리는 그 후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아빠와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엄마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을 잠시 떠난 사이, 심심해진 넬리는 홀로 집 밖을 돌아다니다가 동갑내기 소녀 ‘마리옹’을 만난다. 엄마와 이름이 같은 이 소녀는 엄마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했던 오두막을 짓고 있고, 지금 찾아온 할머니의 집과 똑같이 생긴 집에서, 할머니의 유품과 똑같이 생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넬리가 만난 이 소녀가 바로 여덟 살의 엄마라는 놀라운 반전이 밝혀지기 전과 후로 영화의 흐름은 나뉜다. 넬리가 지금의 엄마, 마리옹과 대화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이루는 전반부에서 마리옹은 넬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마리옹은 일상의 대부분을 우울하고 가라앉은 기분으로 있어 넬리를 궁금하게 하고, 또한 걱정하게 한다. 지금의 마리옹이 떠난 자리에서 여덟 살의 마리옹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후반부에서 넬리는 그를 차츰 이해하게 된다. 전반부에서의 마리옹의 모습이 흐린 새벽 같았다면, 후반부에서 넬리와 과거의 마리옹이 함께하는 천진한 모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오후 같다. 시계를 돌려 겹쳐진 시간 속에서 넬리의 마음속 안개는 서서히 걷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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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관계 속 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는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자그마한 변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반전이 밝혀진 후 넬리가 과거의 마리옹과 추억을 쌓는 장면은 사실 많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그저 함께 크레이프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며, 함께 오두막을 짓고 역할놀이를 할 뿐이다. 그러나 넬리는 짧지만 특별한 이 시간 동안 이전에는 좀체 볼 수 없었던 엄마의 가벼운 수다와 아무런 걱정 없어 보이는 환한 미소를 본다.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오두막을 함께 만들고 엄마가 영화배우를 꿈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아닌’ 마리옹의 일상을 공유한 넬리는 마법 같은 시간이 끝난 후 홀로 있는 마리옹에게 돌아가 ‘엄마’가 아닌, 그의 이름을 부른다. 마리옹은 마치 여덟 살에 지었던 그것과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영화는 끝이 난다.

 

마찬가지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루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 ‘관내분실’이 떠올랐다. 소설 속 모녀는 넬리와 마리옹처럼 애틋하고 가까운 관계는 아니지만 딸이 엄마를 혼란스러운 미지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며 아마 이 부분은 현실의 많은 모녀 관계에도 적용될 것이다. 소설 속 딸은 사후 분실된 엄마의 데이터를 찾기 위해 검색에 활용할 수 있는 엄마의 물건을 찾는 과정에서 그의 과거와 간접적으로 만나고, 엄마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꿈과 흥미에 매진했던 한 사람의 존재를 깨달으며 생전 자신을 괴롭혔던 엄마의 우울과 단절감을 이해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복잡하고 미묘한 엄마와의 지고한 연결을 가능하게 한 것은, 투박하지만 당연한 희생을 요구하기엔 단 하나도 잃을 수 없이 소중한 엄마의 삶의 조각들이었다.

  

미래의 딸이 과거의 엄마와 만난다는 내용의 《쁘띠 마망》도, 사람의 뇌 속 데이터를 도서관에 저장하여 사후에도 살아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관내분실’도 모두 비현실적 설정을 전제하지만 현실의 엄마와 딸을 떠올리게 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여러 이유로 상상하기 어려운 엄마의 과거를 솔직하고 투명한 아이의 시선으로 두려움 없이 직시하는 영화는, 너무나 큰 사회적 기대 속에서 쉽게 잊히고 간과되는 엄마의 ‘엄마가 아닌 삶’에 견고한 애정을 보내며 엄마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엄연히 구성하는 시간의 부피를 보듬어주는 순간 성취되는 이해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부피가 유독 도외시되는 엄마의 삶에 대한 재인식의 시도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꿈을 노래하리라

너와 함께 아이가 되는 꿈 결국 너와 멀어지는 꿈

너와 멀리 아이가 되는 꿈 결국 너와 함께 하는 꿈

그 노래는 두려움 없이 마음속 이야기를 하리라

 

- 쁘띠 마망 OST, ‘미래의 노래’ 중



넬리가 지금의 엄마에게 돌아가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마리옹’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것이 넬리의 특별한 여정이 이뤄낸 엄마와의 새로운 만남을 암시하는 첫인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넬리는 시간 여행을 통해서 하지 못했던 두 번의 인사를 하게 되는데, 하나는 할머니와의 작별 인사이고 또 하나는 엄마와의 만남의 인사이다. 마지막 만남이 될 줄 모르고 할머니와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후회하던 넬리는 과거로 돌아가 아직은 할머니가 아닌 마리옹의 엄마인 할머니와 하고 싶었던 작별 인사를 나누고, 현재로 돌아와 엄마에게는 처음부터 엄마와 딸로서 만나 미처 하지 못했던 첫인사를 건넨다. 지금의 엄마와 잠시 멀어진 시간 동안 아이의 목소리로 두려움 없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눈 넬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꿈 많은 여덟 살을 지나온 ‘마리옹’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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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감독이 직접 작사한 OST ‘미래의 노래’ 속 ‘새로운 꿈’이라는 구절은 넬리가 현재로 돌아온 이후 마리옹과 꾸려나갈 관계를 기대하게 되는 관객의 마음을 함축한다. 넬리는 영화의 전반부에선 엄마를 궁금해했다면 후반부에선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특별한 인사를 나눈 그 이후에는 궁금했던 부분을 이해한 채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마리옹과 함께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지 마리옹의 여덟 살 중 한순간을 만났을 뿐인 넬리가 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미지의 영역을 기꺼이 끌어안고, 상대방은 그저 그 시공간을 편안히 기억하기만을 바라는 당연하고도 지난한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온전히 의지하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여전히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궁금투성이일지라도, 마찬가지로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나와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연결함으로써 함께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감각은 외로운 시대의 분명한 위로가 되어준다. 알 수 없는 삶의 조각이 만든 우리의 현재는 그래서 빛이 나고, 그리하여 알 수 없는 미래로 두려움 없이 함께 전진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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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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