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밀리언 달러 베이비 [영화]

삶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순간
글 입력 2021.10.2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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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최승자 시인은 얘기했다. 그 서른을 넘어 서른 둘을 바라보고 있는 서른 한 살의 '매기'는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택한다. 발레를 시작하기에도, 권투선수로 데뷔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오합지졸 체육관의 주인이자 트레이너인 '프랭키'에 그녀는 인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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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가족은 이미 오합지졸이었다. 오빠는 감옥에 있고  동생은 죽은 아이를 팔아 정부 보조금을 얻으며 살고 있으며, 엄마는 140kg가 넘는다. 그녀는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곳이라 불릴 정도로 외진 고향을 떠나와 13살부터 그들을 위해 살아왔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스스로를 '거칠다' 자부할 정도로 거친 인생을 살아온 그녀가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복싱이었다.

 

그녀의 삶은 복싱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어쩌면 이미 링 위에 올려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링 위에 올라가 있는 권투선수들은 결코 버틸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낸다. 코 뼈가 부러져도 갈비뼈가 나가도 바닥에 피를 흩뿌려도, 눈이 실명하게 돼도 그들은 그 위에서 모든 것을 견디며 끝까지 싸운다. '매기'는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했고 살기 위해서는 거친 풍파도 견뎌내야 했으며 끝나지 않는 싸움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야 했다.  그렇게 삶이 곧 링 위였던 그녀와 복싱의 차이점이라면, 복싱은 거친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들은 라운드가 끝나면 코너로 돌아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피를 닦아내고 다시 경기를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 '윌리'의 경기 중 '프랭키'가 그를 지혈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미소 지었던 이유, 그녀가 '프랭키'를 트레이너로 간절히 바랬던 이유를 우리는 영화 중반부가 넘어간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자신이 다시 싸울 수 있도록, 링 위에 서있을 수 있도록,  이 싸움을 스스로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그녀는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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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는 '프랭키'의 체육관까지 찾아오며 그에게 트레이너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는다. 여자 선수를 키우지 않을뿐더러 선수가 되기에 '매기'의 나이는 너무 많았다. 그런 그녀를 처음으로 돕는 사람은 선수 시절 한쪽 눈을 잃고 현재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스크랩'이었다. 감독은  '스크랩'과 '프랭키', 그들이 '메기'를 도와주는 첫 시작 장면에 같은 구도와 연출을 보여준다. '매기'는 어두운 체육관 한 구석 밝은 불에 드러나 있고, 그 외는 어둠이다. 어둠으로부터 누군가 그녀에게 도움의 말을 건네며 다가온다. 얼굴은 어둠에 가린 채 당당히 서 있는 '스크랩'과 '프랭키'의 모습은 그들이 곧 그녀의 스승이자 구원자의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해준다.

 

'프랭키'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걸음마부터 가르치듯 그녀에게 복싱의 기본부터 하나하나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그가 정한 규칙은 한 가지 ;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가 '프랭키'의 지혈(도움)을 받고 승리한 순간 그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모쿠슈라"(나의 사랑, 나의 혈육). 그가 그녀를 자신의 아이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둘 사이 관계는 스승과 제자 관계를 넘어 가족의 사랑에 더 가까워진다. 딸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23년간 성당에 다니는 '프랭키'에게 딸이 되어주고, 아버지를 여읜 '매기'에게 '프랭키'는 그만한 사랑을 준다. 서로가 서로의 한 부분이 되어주는 셈이다.

 

그녀는 매 시합마다 가차 없는 공격을 날리며 그녀의 존재와 그 가치를 증명해낸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개똥 같은 인생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꾸로인 복싱에서 그녀는 살기 위해 죽음 속으로 향한다. 생존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그 속에서 모순적이게도 그녀는 쾌락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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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베어'와의 타이틀전에서 '스크랩'과 같이 눈 위에 상처를 입은 '매기'를 보며 우리는 그녀가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임을 내심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블루 베어'의 반칙으로 '매기'는 크게 다치고, 평생 호흡기를 달고 침대에 누워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는다. 우리는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매기'와 그런 그녀를 보낼 수 없는 '프랭키'의 마음을 그들의 담담하지만 가차 없는 연기를 통해 온전히 느끼게 된다.

 

생은 그 자체로 가치 있으며 귀중하다. 옳고 그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매기'는 짧지만 주체적으로 원하는 삶을 살았다. 긴 라운드를 버텨냈고 여러 번의 승리를 거뒀다. 그녀의 인생은 링 위에서 시작해 링 위에서 끝났다. 복싱을 시작하기 전엔 생존하기 위해 궂은일을 해왔고 복싱을 시작한 후엔 이기기 위해 죽음으로 향했으며, 사고 후엔 자신의 나머지 삶을 위해 죽음을 결심했다. 그녀의 생존에 대한 욕구는 우연하게도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그녀의 링 위에서 스스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마지막까지도 '프랭키'의 도움을 받아 결국 그녀는 모든 궤적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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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삶. 그녀가 원하던 삶.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그녀가 살아있었음에 가치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당신들은 삶의 어느 순간을 지나고 있는가. 링 위에 올라왔는가. 코너에 몰렸는가.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가. 코너 의자에 앉아 쏟아지는 피를 닦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왼손을 높이 올리고 마지막 한 방을 날릴 준비를 하는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것만큼은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 가치 있음을 그리고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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