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여관찰로 본 우리 사회의 가난 [도서/문학]

사당동 더하기 25
글 입력 2021.10.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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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당동 더하기 25>는 사회학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사당동 철거지에 거주했던 빈곤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울의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에서 '재개발 사업이 지역 주민에 미친 영향'이라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저자는 가난의 대물림ㆍ빈곤의 악순환ㆍ빈곤의 원인 등에 대해 연구하고 철거민들, 극빈층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2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또한 책의 주요 인물인 정금선 할머니 가족 3대를 중심으로 사당동 주민을 관찰하고 그들의 가난의 역사를 글로 옮겼다.

 

연구 책임자인 조은 교수와 여러 명의 조교들이 실제로 사당동 주택에 입주해 주민들과 더불어 지내며 연구를 했다. 그들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면서, 교수와 조교들도 사당동의 주민이 되어서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연구를 진행했다. 이렇게 현장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연구자로써 객관성과 중립성을 모두 유지해야 했기에 도시빈민 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즉각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또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사당동 주민의 입장에서 현장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 책은 질적 연구 과정과 결과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참여관찰은 연구자의 윤리 의식과 상황 개입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에 묘사된 대부분의 철거민들과 임대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남자는 대부분 건설 임용노동자이거나 무직이고, 대게는 크게 다쳐 일을 하기 어려운 몸 상태이다. 여자는 파출부 또는 시장에서 조그맣게 장사를 하거나 집에서 부업을 하며 살림을 한다. 게다가, 남자는 물론 여자도 알코올에 의존해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출해서 비슷한 처지의 상대를 만나 동거를 하곤 한다.

 

사당동 주민들은 어떻게든 돈을 모아 본인과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살림을 가꾸지만, 돈을 모을 새도 없이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또 그것을 수습하며 살아가느라 삶의 극적인 반등을 꿈꾸기에는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나 가혹하다. 복권 당첨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현재의 삶에서 극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 "가진 것은 맨 몸뿐"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가진 것이 '맨 몸'뿐인 사람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막노동을 하거나, 조금씩 돈을 모아서 작은 장사를 할 수 밖에 없고, 아니면 파출부나 부업과 같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맨 몸으로 하는 대부분의 노동은 노동 강도가 매우 세서 다치거나 병에 걸리기 쉬웠고, 그렇게 병으로 인해 며칠 일을 쉬게 되면 빚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사당동 주민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 성실하며 부지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처한 근로 조건들이 한 곳을 계속해서 다니기 힘든 상황이 많아서, 오랜 시간동안 근속할 조건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산업구조적인 변화로 인해, 그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인 행상으로는 더 이상 경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당동의 가난한 주민들에게는 바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현재의 시간과 자신이 없다. 당연하게도 그런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금융기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더 나은 삶, 직업, 미래를 위한 도전과 일을 할 수 없고, 당장 '맨 몸'뿐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이들의 가난은 더욱 개별화되고 제도화된 가난이 된다. '맨 몸으로 돈 만들기'에서 가난은 수단이자 대상이 된다. 쉽게 범법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가난은 출구가 없는 빈곤 재생산의 조건이 된다."

 

- 책 <사당동 더하기 25>

 

 

이 책은 사당동 주민들의 삶을 통해 가난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가난의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이 사회 그리고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어떤 악순환이 지속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책에서 연구자로서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기도 한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참여관찰 연구를 하는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연구자의 입장과, 그들의 상황에 개입해서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 싶은 같은 사람으로서의 입장이 상충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자본주의, 세계화, 4차 산업혁명까지, 어찌보면 나와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거대한 흐름 속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해서 현재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나로써 존재하지만, 동시에 세계국가사회공동체 안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거대한 변화의 어딘가에 '구조 속 인간'으로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동 주택의 강제 철거 이후, 금선 할머니네는 운좋게 1991년 상계동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고, 연구자들은 그 임대 아파트 단지에서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사당동 달동네에서 연구자들이 만났던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금선 할머니의 손주들은 이제 중년의 사회인이 되었다. 2019년 빈곤의 모습은 33년 전 사당동에서 연구자들이 목격한 것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금선 할머니 가족의 집이 철거 예정의 달동네에서 임대 아파트로 옮겨갔을 뿐이지, 짧지 않은 25년 동안 이들에게 계급 재생산이 일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와 우리 사회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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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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