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징그럽고 멋진 글쓰기의 늪에서 만나요, 우리

나와 비슷하면서도 고유했던 박세나 에디터님과의 만남
글 입력 2021.10.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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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의 의미일 수도 있고, 내면에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 찬 사람일 수도 있다. 겉으로 내뱉든, 속으로 삼키든 세상과 문화예술에 대해 쉴 새 없이 생각이 떠오르고 그래서 할 말도 많은 사람들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헤드라인 랜덤 추천으로 우연히 본 글에서 나처럼 할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세상을 살아갈 때마다, 좋은 문화예술을 접할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 그 말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글 한 편에 담긴 에디터의 솔직한 고백에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글은 바로 박세나 에디터의 <나의 징그러운 글쓰기>였다.

 

 

그 순간 글을 쓴다는 것이 징그럽다는 표현과 마주한 것이다. 막상 인정해버리고 나니 아주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던가. 자기 자신의 들끓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써야만 하는 일, 안 쓰는 것보다는 쓰면서 나아지는 방법밖에 모르는 것이 글쓰기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쓰는 일. 누가 묻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써 내려가는 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써 내려가는 실패의 경험,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쩌렁쩌렁 ‘세상에 이런 아름다움도 있다고요!’ 하며 알리는 수다스러움. 자신의 단점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다가도 마침내는 기어코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

 

어찌 보면 자의식 과잉에 자기연민에 자기변호가 뒤섞인 징그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징그러움과 멋있다는 말은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아니라,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될 수가 있는 것이다. ‘으, 징그럽긴. 하지만 멋있네.’가 아니라, ‘징그럽고 멋진 일이다!’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박세나, <나의 징그러운 글쓰기> 中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글쓰기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고 그 매력적인 글쓰기가 어떻게 징그러워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 (소개 글과 달리) 글쓰기에 대한 그의 깊은 고찰을 지켜보면서 이 에디터에게 덜컥 친근감을 느껴버렸다. 이후 관심 있는 주제여서 읽은 글에 익숙한 이름이 보일 때마다 나만의 친근감은 더욱 커지곤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확고해졌고, 그와 함께 이 사람과 만나면 할 말이 많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우리는 정말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질문하러 갔지만, 도리어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경계는 무의미해진 채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눴다.

 

이 한 글에 그날의 긴 대화를 완전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유의미하게 그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대화의 상당 부분을 걷어내고 전형적인 인터뷰 형식을 띠게 될 이 글의 여백에는 그날 우리가 나눈 우정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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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박세나 (이하 모든 사진 동일)

 

 

Q1.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게 뒨 계기가 궁금해요.

 

오래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고등학생 때 문예 창작 관련 수업도 찾아보곤 했어요. 작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지만, 선뜻 도전해보진 못했어요. 그러다 팬데믹 이후로 제 전공 분야의 상황이 크게 바뀌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지원한 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었어요.

 

 

Q2.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흘렀어요. 그동안 세나 님에게 생긴 변화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글감을 수집해서 내 안에서 기대되는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힘들긴 힘들었지만,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고 가장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아무래도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하나하나가 소중해졌다는 점을 꼽고 싶어요. 그게 너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예술 작품을 보든 이걸 글로 풀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어요. 글을 쓸수록 언어가 도망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Q2-2. ‘언어가 도망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이병률 시인의 ‘내가 쓴 것’이라는 시를 읽고 떠올린 말인데요, 나의 벅차오르는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벽에 막히는 느낌이에요.

 

사실은 내가 쓰려고 쓰는 것이 시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시일 때가 있다.

 

- 이병률 ‘내가 쓴 것’ 中

 

제가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좋아하는 것이 있고, 또 글쓰기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끔은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저에게 글쓰기는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은 어떤 것인데, 글쓰기 자체를 더는 좋아하지 않으면 쓰지 않게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그게 오히려 글쓰기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제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써보는 편이에요. 꼭 한글 파일로 문서화 되는 글만 쓰려고 하지 않고, 펜을 쥐고 노트에 휘갈기며 글을 쓰는 등 제한된 환경이 아니라 자유롭게 써보려고 해요.

 

 

Q3. 아트인사이트에 올리신 글을 주로 보면 ‘감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세요. 최근 가장 크게 감응한 예술 작품이 있나요?

   

 

감응이란 ‘감동에 응하다’라는 뜻이다. 사전적 정의는 감동과 비슷하나 확실한 차이가 있다. 감동이 가슴 안에서 솟구치는 느낌이라면 감응은 그것보다 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다. …(중략)…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은유 작가님은, 감응은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무엇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말이라며. 나는 그 말이 감사했다.

 

- 박세나, <나의 징그러운 글쓰기> 中

 

 

서울극장이 문을 닫기 직전에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를 봤어요. 뉴욕에서 무용수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프란시스에 관한 영화에요. 영화 막바지에 프란시스가 집을 구하고 달리면서 ‘Modern Love’라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쁜 피>라는 영화의 오마주 장면이 나와요. 달리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도 메시지가 깊어서 정말 좋아하는 장면인데, 그때 마침 한창 달리기에 빠져 있던 때라 그 장면에 영감을 받아서 음악을 들으며 달렸던 경험이 예술에 감응한 순간으로 떠오르네요.

 

 

Q4. 책 <아무튼, 여름> 리뷰에서 다가올 여름에 대한 기대를 담았는데, <여름이 가고 있다>라는 오피니언에선 지나간 여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담으셨어요. 가을이 완전히 무르익고 곧 추워지기까지 할 지금은 올해 여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시의 구절로 대답을 대신할게요.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한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 오은 ‘계절감’ 中

 

여기서 ‘꼬깃꼬깃한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라는 구절이 제가 여름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아서 공감됐어요. 다른 계절이었으면 더 힘들고 허무했을 텐데, 여름의 뜨거워지다가 사그라드는 속성 덕분에 힘든 일도 ‘여름이니까!’하고 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Q4-2. <아무튼, 여름>에 대한 글에서 <아무튼> 시리즈 자체에 대한 생각을 쓰기도 하셨어요. 글 말미에 나만의 <아무튼>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쓰고 싶은 소재가 있으신가요?

 

<아무튼> 시리즈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한 에세이잖아요. 달리기, 여행, 메모 등 쓰고 싶은 것이 많은데 다 이미 있더라고요. (웃음)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아무튼, 컨셉>이요. 제가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면 그 컨셉이 맞춰서 생활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인물에 이입해서 ‘내가 만약 이 사람이면 어땠을까?’ 같은 상상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면 올해 영화 <크루엘라>를 보고 정말 크루엘라가 된 것처럼 머리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반반 염색하거나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주인공에 몰입해서 환경에 신경을 쓰게 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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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그동안 써오신 글을 보면 예술에서 ‘인류애’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가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작품인데도 호평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세나 님이 저한테 댓글로 달아주신 ‘폭력의 외연은 넓힐수록 옳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신형철 평론가님이 쓰신 에세이에서 접한 말인데, 한창 그것과 관련한 의문을 갖던 시기에 그 글을 읽게 된 후 제게도 그 말이 일종의 철학이 된 것 같아요. 면접장에서 평론가님이 한 학생에게 아이유 ‘제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 질문을 받은 학생이 자신이 학대 가정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며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면 그런 가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신형철 평론가님은 그 말을 듣고 ‘폭력의 외연을 넓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물론 전 지금도 아이유 님을 정말 좋아하고 또 아이유 님의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래도 ‘제제’라는 노래에 대해서만큼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어요. 예전에는 예술의 폭력성을 지적할 때 '다른 이의 해석의 자유를 뺏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확신이 없었지만, 그 일화를 보고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의 외연을 넓히고 소외된 사람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5-2. 예술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한 기준이 없어서 더 말하기 힘든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그래서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신형철 평론가님께서 쓰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명쾌한 답을 찾은 것 같아요. 그 책에서 ‘사람이 가장 배워야 하는 소중한 것과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이 정확하게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슬픔’이다.’라는 말이 나와요.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예로 들면,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루는 데 있어서 묘사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한강 작가님이 본인은 불판에 구워지는 고기만 봐도 괴로워할 만큼 폭력에 약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고 하신 일화가 인상 깊었어요. 폭력적인 묘사가 들어있다고 무조건 문제작인 게 아니라 창작자가 어떤 태도로 작품 속 인물을 바라보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Q6. 세나님의 글에서 본인의 글이 모두에게 무해하고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게 신경 쓰신다는 것을 자주 느꼈어요. 실생활에서도 똑같이 신경을 기울이시나요?

 

항상 의식하려고는 하는데,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자괴감을 느낀 적도 많아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은 이상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한 경험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가끔 제 무지를 깨닫는 순간들이 있는데, 최근에 김초엽 작가님이랑 김원영 변호사님이 쓰신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을 읽고 그동안 제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해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많이 느꼈어요. 또, ‘동물해방물결’이라는 사이트에서 ‘물고기’라는 단어가 물고기를 식용으로 염두에 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고, 그들은 물에 사는 존재이니 ‘물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말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었어요. 이런 식으로 한계를 계속 의식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나 다음의 술래에 대해서는 어쩐지 짠한 마음이 있다.”

 

술래의 역할이 내게 주어진다면, 기꺼이 받아드리겠다고 다짐한 대목이다. 여러 방식으로 기록을 하는 기록관들이 존재할 테니까,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애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 박세나, <나의 징그러운 글쓰기> 中

 

 

Q7.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를 인용하며 ‘애도하는 글쓰기’라는 말을 꺼내셨어요.

 

<시선으로부터,>에서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내가 도중에 가슴이 터져버려 죽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먼저 죽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해요. 심시선은 험난했던 20세기를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투쟁하며 살아온 인물이에요. ‘먼저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관’이기도 하죠. 저는 이 인물이 알베르 카뮈의 철학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의 다른 대목에서는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카뮈는 인간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인생은 허무하며 부조리한 것이고, 엄청난 육체의 의지를 반하여 사람들을 자살로 이끄는 존재가 바로 부조리라고 하죠. 그러나 그는 자살을 소극적인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않아요. 카뮈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항’이라고 하고, 그 반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 즉 창조하는 일이라고 말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심시선이 끊임없이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맥락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애도하고 기록하며 그 족적을 세상에 남기는 방식은 어쩌면 폭력적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라고 여겨졌고요. 사실 지금의 세상도 발전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잖아요.

 

Q7-2. 그렇다면 세나님에게 ‘애도하는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또 세나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애도하고 싶은 대상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애도하는 글쓰기’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은 아무리 슬프고 참혹한 내용이라도 기록하고, 그 사람의 시선에 머물고, 잊지 말자는 뜻으로 쓰게 된 것 같아요. 애도의 대상에는 제가 인식하지 못한 채 해를 끼치고는 그냥 지나쳤던, 과거의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타인들이나, 참혹한 뉴스들이 있겠죠. 항상 애도하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쓰게 된 글은 아니고, 글이 지는 의무나 역할 중 하나가 ‘애도’라고 생각해서 쓴 표현이에요.

 

 

Q8. <내가 사랑하는 정세랑 월드>라는 글에서 ‘어려운 낙관’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세나님께 가장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은 언제인가요?

 

세상에 환멸감이 들 때요.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취하든 달라지지 않고 또 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질 때 낙관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독서 모임에서 제가 ‘낙관은 소설에만 있다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자 한 분이 ‘어떤 소설에서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때문에 해당 소설의 영화화가 기각됐다. 이런 사례를 통해 희망을 갖자’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지치면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나아가는 길에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에게 힘을 얻어요.

 

 

Q9. <달리고 있습니다>라는 ‘달리기’에 대한 오피니언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나오는 “중간에 쉬면 더 힘들어요! 관성으로 뛰어야 해요!”라는 대사를 인용하셨는데, 글쓰기 외에 관성으로 지속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눈앞에 닥친 상황에 집중하느라 삶 전체를 살피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 대사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달리는 사람을 보면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을 피하기만 하지 발은 계속 움직여요. 멈추면 힘드니까. 저도 달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요즘 저는 ‘감사 일기’를 열심히 쓰고 있어요. 한창 우울감에 빠진 시기에 감사 일기를 쓰면서 그 우울감을 극복했어요. 매일 쓰면 내용이 똑같을 수밖에 없는데 이 똑같은 이야기를 잊고 살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관성으로 꾸역꾸역 쓰다 보니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감사한 대상을 새로 찾게 되었어요. 희망 사항으로는 명상이 있어요. 명상을 ‘온전한 자유의 시간’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꼭 시도해보고 싶어졌어요.

 

 

Q10. 개인적으로 아트인사이트에 써보고 싶은 글이 있나요?

 

DJ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DJ 중에서도 테크노나 하드 스타일 등 여러 장르가 있거든요. 제 친구들이 마니아 장르의 길을 걷고 있어서 많이 힘들어하는데 서브컬쳐에 있는 친구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현장을 알리고 싶고 친구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클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데, 정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 있어서 그런 시각이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마냥 퇴폐 향락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기에는 순수하게 음악과 그 문화를 즐기는 클럽들이 많거든요. 그런 인식을 타파하고 싶어요.

 

Q10-2. 그 외에도 떠오르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저만의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김이나 작사가님의 <보통의 언어들>처럼 한 가지 언어를 정하고 그 언어에 대해 문화 예술 작품을 통해서 그 의미를 새로 정립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 예술 작품을 예로 들면서 ‘둘 중 한 명이라도 활을 놓으면 바로 목숨을 잃을 만큼 아슬아슬한 게 사랑’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이외에도 <셰이프 오브 워터>, 선우정아님의 ‘동거’ 등 여러 작품에서 떠오르는 사랑에 대한 수많은 심상을 나열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저만의 사전을 완성해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 생각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할 때 희열을 느끼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나만의 언어를 정의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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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 예술

 

 

Q11. 아트인사이트의 다른 에디터분의 글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최미교 에디터님이 쓰신 <자몽>이라는 정말 심플한 제목의 글이에요. 그 글에서 묘사된 성격이 제가 고민하던 부분과 일치해서 공감하고 재밌게 읽은 글이었어요. <유년의 취미에 대하여>라는 또 다른 글도 인상 깊었어요. 또, 신송희 에디터님의 <어쩌다, 예술로 산책> 글도 정말 좋아해요. 알찬 정보도 많고 글 하나하나에 공들이신 게 잘 보이는 글이었요. ‘무용한 것은 아름답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데 생각하시는 방향이 저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남기 에디터님이 쓰신 <우울증과 살아남기>라는 에세이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이런 진솔한 고백이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Q12. <나의 자랑 하연>이라는 제목으로 친한 친구를 소개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글의 앞부분은 친구의 생일에 썼어요. 시작은 인스타그램에 짧게 쓴 생일 축하 멘트였거든요. 어느 날 친구와 둘이 방에 누워있는데 ‘언제 이렇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순간 바로 이 친구가 글감으로 떠올랐어요. 원래도 편지를 주고받는 친한 사이여서 서로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는 사이에요. 사실 전 관계에 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는데 이 친구와 처음으로 깊은 우정을 맺으면서 그 성향도 많이 줄었어요. 그 정도로 아주 가까운 친구예요. 관계란 게 언제든 망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만큼은 ‘관계가 망가져도 함께한 경험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Q12-2. 단순한 몇 마디로 정의 내리기 아쉬운 친구에 대해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야.”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렇다면 세나님은 어떤 친구로 정의되고 싶나요?

 

친구한테 ‘든든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명랑한 은둔자>를 쓴 캐럴라인 냅처럼 거창한 표현 없이도 존재만으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요.

 

Q12-3. 그렇다면 세나님 자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고, 냉소적이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평가함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게 저의 이상향이에요. 그리고 능력이 닿는다면 조금 더 상냥한 세상이 되도록 애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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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님과 나눈 대담을 글로 정리하면서 자주 떠올렸던 단어는 ‘스불재(스스로 불러일으킨 재앙)’였다. 인터뷰어의 본분에 맞지 않게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정리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4시간에 걸친 긴 대화를 마치고 집에 가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던 정리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맞았다. 부족한 메모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튼 음성녹음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면 속으로 ‘그만 좀 말해!’라고 외치면서 이 글을 작성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듣기 싫었던 내 목소리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문제의 녹음본도 엉망진창 인터뷰가 아닌 말 많은 나와 웃음 많은 세나님이 나눴던 추억의 한 페이지로 들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만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세나님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세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내 이야기에 대해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인터뷰어의 본분을 망각하고 떠들어댄 수많은 이야기 중에는 ‘내가 만약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아무튼, 아이돌>을 쓰고 싶다’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바로 다음 날인 2021년 9월 27일, 기어코 <아무튼, 아이돌>마저 출간되고 말았다. 아이디어가 빼앗겼다며(?)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그 책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그날의 세나님을 그대로 표현한 것만 같은 문장을 만났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꺼내놓을 때 독특해지고, 또 고유해졌다.

 

- 윤혜은, <아무튼, 아이돌> 中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신경을 쏟는 것에 관해 말했던 세나님의 모습은 독특하고, 또 고유해 보였다. 어쩌면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에디터가 저 문장에 해당할 것이다.

 

위의 문장이 나온 챕터의 제목은 ‘덕력도 능력이다’이다.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다. 능력껏 무언가를 좋아하고, 능력껏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우리. 그러나 그 ‘좋아함’에 무작정 취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우리가 있기에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성실하게 답변하고 또 성실하게 귀 기울여주었던 세나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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