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징어 게임'의 성공 요인들 [드라마/예능]

넷플릭스와 한국형 드라마의 만남
글 입력 2021.09.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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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봤다. 큰 흥행을 거뒀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리뷰글에 그렇게 혹평을 써놨는데, 이렇게까지 성공해버리면 내 안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감상평을 바꿀 생각은 없다. 재미와 만족감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니까. 대중 콘텐츠는 수많은 대중이 소비하는 거고, 그만큼 다양한 요구가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이 보다 많은 대중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켰으니까 성공했겠지. 나처럼 필요 이상의 허들을 두는 사람에게는 부족했을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재미는 있었지만 만족스럽진 못했다. 맛있는 건 다 넣은 유명한 음식인데,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내가 올린 ‘손 가는 대로 리뷰’ 댓글에 이런 답변이 달렸다. ‘요즘 상업 영화 드라마는 흥행요소 잘 집어넣으면 그걸로 끝인 듯.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은 최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리뷰글을 올리기 전 <오징어 게임> 앞에 ‘미국 1위’라는 타이틀이 달린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 메인을 차지했다. 흥행한 작품은 흥행한 요소가 있겠지. 흥행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오징어 게임>을 천천히 음미해봤다. 물론 N회차를 할 마음은 조금도 없기 때문에 조금은 피상적인 분석글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 본다.

 

 

 

1. 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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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을 봤다는 말에 친형이 물었다. ‘재밌냐?’.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이정재가 그런 연기하는 건 처음 봐서 그건 재밌었어.’라고 말했다. ‘하긴, 요즘 사람들에겐 이정재는 멋있는 배역만 했으니까.’ 그렇다. 내가 여태까지 본 스크린 속 이정재 배우는 수트가 어울리고, 카리스마 넘치고, 왠지 비싼 남자 향수 냄새가 풀풀 날 것 같은 배역을 주로 맡았다. 근데 <오징어 게임> 속 성기훈은 영 되먹지 못한 인물이다. 사람은 착한데 우유부단하고, 노모의 돈으로 경마장을 다닌다. 어째 전 와이프를 따라간 딸보다 어른스럽지 못한 인물이다. 여러모로 맘에 안 드는 주인공이었지만, 넷플릭스를 주로 소비하는 연령층에 ‘푼수 같은’ 이정재 배우의 모습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공유도 나온다. 정갈한 수트를 입고 이정재 배우의 뺨을 시원하게 갈긴다. 1화부터 조금 벙쪄서 봤다. 이정재도 나오고, 공유도 나오고. 소위 ‘대배우’라 불리는 사람들도 스크린 밖에서 나오는구나. 새삼스레 ‘넷플릭스’의 자본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네. ‘프론트 맨’은 이병헌이었다. ‘프론트 맨’이 누군지 대충 유추가 돼서 김이 빠질 찰나에, 배우가 이병헌이라니. 이쯤 되니 어린 생각이 든다. ‘침대에 누워 대배우들의 최신작을 볼 수 있다. 그것도 9화씩이나! 물론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극장에서 공유, 이정재, 이병헌을 한 프레임 안에서 볼 수 있을까. ’넷플릭스‘란 외국 자본 덕에 가능한 일일지도.

 

 

 

2. 한국형 데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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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게임 장르는 서브컬쳐 분야로 여겨졌다. (적어도 나에겐) ’데스게임‘하면 <배틀로얄>이나 <신이 말하는 대로>와 같은 일본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조금 영역을 넓히자면 제임스완 감독의 <쏘우> 시리즈 정도. 솔직히 <오징어 게임>은 데스게임의 재미는 없다. 변수가 너무 많고, 룰도 조악하기도 하고, 게임도 너무 단순한지라 ’운빨과 피지컬‘만이 요구된다. 거기다 주인공인 성기훈은 어떠한가. 그냥 게임을 못 한다. ’뽑기 게임‘에서 기지를 발휘하긴 하는데, ’아이들의 놀이‘라는 게임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는 몰라도 ’유아적인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데스게임 영화를 좋아한다는 후배에게 <오징어 게임>은 어땠냐고 질문하자 ’긴장감이 없었고, 다 뻔했다.‘라고 말했다. 내가 느낀 바도 그랬다. 게임은 그냥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 어떤 재미도 못 준다. ’VIP’들이 흥미롭다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관람하는 장면을 보면서 실소를 했다. 그냥 도박이 재밌는 거겠지.

 

앞서 말했듯 데스게임은 매니악한 장르다. 학살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대중적’이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대게 데스게임 콘텐츠는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작중 등장하는 게임의 완성도를 높여 관객들을 몰입시키거나,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만들어 반전을 꾀한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고, 데스게임의 장르를 빌려 완벽히 대중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국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놀이들로 게임을 구성하고, 캐릭터를 극한으로 몰고 가 서로 부닥치게 한다. 조금 삐뚤어진 표현을 빌리자면 ‘막장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극한의 상황에서 얽히게 하는... <펜트 하우스>가 떠오르진 않으시는지. 한국형 드라마는 대게 이런 식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1화에 차곡차곡 인물들의 서사를 쌓긴 했지만, 후반부엔 거의 희석되다시피(혹은 신파) 한다. 좋든 나쁘던, <오징어 게임>은 완벽한 한국형 데스게임 드라마다.

 

 

 

3. 성역에 도전하다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소총에 사람들이 무참히 쓸려 나가고, 재즈풍의 노래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내가 느끼기엔 감독이 참가자들끼리 취침시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암전 전투’와 더불어 제일 공들인 장면인 것 같았다. 근데 시청하면서 ‘이거 논란이 되지 않으려나.’하는 우려가 들었다. 첫 학살 신 이후엔 사람들이 짐 더미 마냥 쌓여있다. 한국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뚜렷한 목적 없이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조금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질타를 받는 것은 아닐까.

 

일단 나는 넷플릭스 하드 유저가 아니다. 작년에 잠깐 구독하다가 끊고 를 보려고 부랴부랴 다시 결제한 라이트 유저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나오는 드라마의 표현 수위를 잘 모른다. ‘당연히 한국 드라마니까’ 하고 <오징어 게임>을 본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장르가.’라는 감탄사는 대부분 이런 데서 기인하지 않을까. 조금은 폐쇄적이었던 표현 수위가 외국 자본을 만나니 외국 드라마 수준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 이게 성인 드라마지. 제대로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한국 드라마도 할 수 있잖아. 하는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환경만 주어진다면, ‘미드’만큼, 혹은 그 이상할 수 있다는 걸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것이다.

 

 

 

4. 매력적인 설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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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트나 소품, 의상을 준비하신 미술 감독님께 박수를! <스위트 홈>을 보면서 세트가 참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오징어 게임>은 미술팀의 피땀 눈물이 고스란히 보였다. 대기실, 게임 장소, 로비, 세모, 네모, 동그라미 요원들, 참가자들이 입은 트레이닝 복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기획한 게 없었다. 이런 요소들이 조금은 빈약한 세계관을 풍부하다고 느껴지게 했다. 여러모로 확장성이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시청자들이 ‘상상하게끔’ 잘 만들었다. 핑크색 복장의 요원들은 귀여워 보이면서도 철저히 계급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런 설정들이 네모, 동그라미, 세모로 표현되니, 그 이면에 있는 사정들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거기다가 드라마가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에서 이런 아이템들을 상품성도 있다. 이태원역에는 ‘무궁화 게임’에 등장한 살인 로봇이 있는가 하면, 할로윈 코스튬으로 초록색 트레이닝 복이나 요원 복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픽션’을 ‘현실’로 가져오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가 보여준 세계가 그만큼 매력적이란 뜻이 아닐까.

 

 

 

시즌 2가 나오겠지?



이 정도로 성공했으니 시즌2는 거의 확정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마지막 화는 실망의 연속이었지만, 아직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그걸 어떻게 흥미롭게 풀어나갈지가 관건이 아닐지. 아마 후속작이 나온다면, 조금 더 스토리에 비중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극적인 것만 남은 1편보단 조금 더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나왔으면.

 

 
[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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