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갑습니다. 저는 템플 그랜딘입니다. - 연극 템플 [공연]

글 입력 2021.09.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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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저는 템플 그랜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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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그랜딘은 미국의 동물학자로, 동물복지를 배려한 가축 시설의 설계자다. 동물에게 불안감, 공포를 심어줄 요소들을 제거하고 편안한 시설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으로 미국의 가축 시설 1/3이 그녀의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은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하였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각적 구상으로 그녀는 유명한 동물학자가 되었다. 진심으로 동물을 이해해주는, 인도주의적 가축 시설 설계자로 말이다.

 

 

 

그녀의 사고방식



그녀는 고등학생 때, 칼릭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사고방식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고 이를 확장해 나간다. 그녀는 사물이든 언어든 그림으로 인지했다. 심지어 선생님의 신발 종류를 모두 확실히 그림으로 찍어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림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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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피질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특성은 사람의 사고방식의 한 종류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시각적 사고를 행하고, 어떤 이는 패턴으로 사고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이런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간다. 직관적인 수용과 암기, 학습에 의한 사고도 있지만, 그녀의 사고방식은 그림으로 연이어 사고하는 전문적 사고에 가까웠다.

 

이러한 특별한 사고방식 덕분에 그녀는 알파벳도 그림으로 인식해 문자 하나하나를 습득해나갔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계산해나가는 수학을 배우는 데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역으로 미술, 과학 등 시각적인 기억이 도움을 주는 분야에서는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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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돌고 돌아가게 된 마운틴 컨트리 고등학교에서 자신을 알아봐 준 칼릭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 성인이 된 후, 미국의 가축 시설 1/3을 자신의 설계도와 아이디어로 조성해내는 업적을 세우게 되었다.

 

 

 

연극 속 템플



템플은 어릴 때 또래에게 놀림을 당했다. 학교 친구들은 그녀를 '바보'라고 놀렸고, 학교를 피해 떠난 캠프에서도 고약한 남자아이들에게 성적인 놀림을 당했다. 그녀에게 타인의 존재는 무서움이었고 불편함이었다.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도 무서움을 느꼈고 갈수록 예민해져 갔다. 엄마의 포옹조차 그 살갗이 부딪히는 느낌이 자신을 옥죄는 것 같이 느껴졌던 템플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도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욱 '비정상'으로 보였던 템플은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과 왕따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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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트위터

 

 

그리고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어 여성 호르몬 분비가 많아지자 이 또한 템플에게는 힘든 고난으로 다가왔다. 여성 호르몬이 신경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고 자신을 더욱더 날카롭게 파고드는 변화에 하루하루 버거워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템플의 연극 자서전은 그녀가 느끼고 있는 불안정과 불편한 느낌들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마치 그녀가 시각적 사고를 하는 것처럼, 연출을 통해 관람객들이 그녀의 감정과 인지 상태를 알 수 있도록 조성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템플 그랜딘이 느끼는 장애물과 느낌들을 신체의 활동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하면서 템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극대화하여 전달한다.


이 극에 등장하는 배우는 총 8명이다. 하지만 그 중 온전히 하나의 인물을 소화하는 사람은 템플 그랜딘뿐이다. 다른 배우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연극 자체를 설명하기도 하고, 템플 그랜딘이 마주했던 많은 사람의 모습들을 담당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역할이 바뀐다. 그녀를 괴롭혔던 주변 사람들, 냉담한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그녀를 둘러싼 감정 자체가 되어 그녀 옆을 맴돈다.

 

그녀의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는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은 템플 그랜딘의 엄마 역할을 맡았다고 극 초반에 관객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들을 여럿 갖추고 극이 진행된다.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도록 그녀의 사고방식을 여러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 대사, 다양한 연출을 통해 표현해낸다.

 

그렇게 신선한 공연 <템플>만의 장르가 탄생하였고 관람객은 더욱 더 템플의 삶을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와닿게 되고, 그렇게 성장해가는 템플을 응원하며 극을 보게 된다. 템플 그랜딘의 대학 졸업사 장면에서 회고하면서 시작되는 공연은 템플의 어릴 적 시절,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와 함께하면서 템플의 성장기를 때로는 엄마의 시선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칼릭 선생님의 시선에서 보게 된다. 내가 만나본 누구의 인생보다, 누구의 자서전보다 빛나고 특별한, 가슴 찡해지는 이야기였다.

 

 

 

성장과 사랑



 

사랑은 누군가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야.

 

 

사람이 일생에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을 걸어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 문을 넘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 앞에 있는 도전과 책임을 이겨낼 힘이 필요하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으로 이 힘을 얻을 수 있다.

 

템플 그랜딘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억압과 날카로운 느낌들을 이겨낼 문을 결국 찾아냈고 깨닫는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으로 그러한 문을 넘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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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템플의 어머니는 사랑에 대한 개념을 템플에게 설명해준다. 사랑은 누군가가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고, 템플이 스스로 시각적 상징을 만들어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고난을 헤쳐나간 자체가 템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임을 알려준다. 자신도 성장하기를 바라는 인간이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우리가 모두 깨닫게 된다.


마지막, 모두가 포용하며 사랑을 느끼며 마무리된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포옹조차 거부하던 템플은 그 포옹 속 담겨있는 추상적 존재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커튼콜까지 울음을 못 멈추는 배우들과 하나 된 관람객들도 일어나 그들의 포옹에 마음을 함께 한다. 어린 템플을 응원하고 위로해주고 싶던 내가 오히려 당신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템플에게 위로받으며 극이 끝난다.

 

 

 

그녀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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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그랜딘은 사실 자폐증을 앓고 있다. 자폐증은 3세 이전부터 언어 표현-이해, 어머니와의 애착 행동, 사람들과의 놀이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3세 이후에는 또래에 대한 관심의 현저한 부족, 반복 행동, 놀이 행동의 심한 위축, 인지 발달의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나는 발달상의 장애가 특징이다. 그녀가 어린 시절이던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는 자폐증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것이 소아정신분열의 일종인 데다, 양육방식이 잘못되어서 생긴다고 규정짓던 시대였다.

 

자폐증이란 사실을 모르고 그녀의 삶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특별한 재능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고를 통해 세상을 혁신한 박사이자 발명가이자 진정으로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 굳이 자폐증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고 그녀의 업적과 자서전 일대기를 설명하고자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폐증에 대한 선입견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와 이 극을 한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을 감상하고 난 후, 자폐증에 대한 설명 부분을 배제하고 글을 쓰면 더욱 그녀를 인간 대 인간으로서 고난을 이겨낸 동물학자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자폐아라는 수식어 하나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엄마가 받았을 온갖 차별과 고난을 쉽게 상상할 자격이 없다. 자폐라는 사실을 모르고 템플 그랜딘의 업적과 기록들을 보면, 그녀는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창의성과 괴짜 천재 기질을 가지고 있어 부러움과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며 평범한 삶을 사는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감탄할 것이다. 하지만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극을 보면서, 불편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 일쑤였다.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정반대의 감정으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애써 외면하는 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낳은 하버드 출신 엄마. 자폐증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소아정신분열, 양육방식의 잘못으로 생긴 병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라 어느 전문가를 찾아가 비싼 상담을 받아도, 자폐아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자라난 아이며 통제 불능이라고 외면하는 세상이었다. 그 시대에 산 모녀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된다면, 내가 자폐임을 모르고 그녀의 업적과 기록을 접할 때 느꼈을 부러움의 시선은 없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발현되기까지 기다리는 그 세월이 너무나 절망으로 다가와 포기하고도 싶었을 것 같다. 그녀의 업적이 탄생하기까지의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 많았던 고난과 자신의 문을 직접 뛰어넘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굉장한 벅참을 느끼며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나의 복잡한 속내에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템플 그랜딘 이야기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공연에서 그녀가 가진 자폐증의 묘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들의 안무와 표현들로 연출되는데, 이를 통해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과 날카로움의 몇 배를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는 것을 확실히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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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트위터

 

 

이렇게 <템플>만의 장르로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 공연이 탄생했지만, 이는 그 모든 자폐인에 대한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템플 그랜딘의 강연에서 자폐적인 사고는 전문적인 사고에 가까우며 그러한 다양한 사고의 방식들의 조화가 이 세상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사교적인 역할과 행동을 배울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새삼 이 공연을 보면서 템플 그랜딘 편 사람들의 노력과 교육이 그녀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튼튼한 기반이 되었음을 깨달으며 그녀의 강연이 더 와닿았다. 자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화했고, 그들이 느끼는 세상과 세계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연극 속 템플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반갑습니다. 저는 템플 그랜딘입니다."라고 인사를 먼저 건넨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교육한 것처럼 보이는 이 고정적인 대사는 그녀가 사교적 역할을 해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 중 하나였으며, 상대방을 그림으로 기억해내는 첫 시작이었다. 자폐아에겐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최소 20시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던 TED 강연 중 템플 그랜딘의 모습이 중첩된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힘들어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건네는 시작점으로서의 대사 "반갑습니다. 저는 템플 그랜딘입니다." 는 우리가 그 손을 잡아줘야 함을 강렬하고도 뚝심있게 전한다.

 

자폐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나와 당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 모두에게 유효한 자서전 연극 <템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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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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