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글 입력 2021.09.2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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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을 읽게된 이유, 당신에게 추천하는 이유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미술관을 간 것 같은 착각이 쉽게 드는 요즘이다.

 

최근 출판된 미술서적의 어딜 펼쳐보아도 양질의 도판이 펼쳐지고, VR/AR 기술의 발달로 가보지 못한 해외 미술관과 박물관도 맘껏 누빌 수 있다. 심지어 그곳엔 작품을 가리는 수많은 관람 인파도 없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간접경험을 위주로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 자칫 얄팍한 문화 감수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논한다. 그러나 높고 높던 미술의 문턱이 점점 대중친화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통해 양질의 미술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미술사'와 '미술교육'은 이런 담론의 끝판왕이 아닐까. 전시와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 역시 공부가 필요하다. 미술을 거시 사회 안의 영역이자, 학문의 하나로 보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감상을 할 때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미술을 주목하며, 최근들어 미술을 설명하고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책들이 하루에도 수십권씩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다. 명성이 높아 잔뜩 기대하고 펼쳤으나, 때로는 한참 전에 출판된 중고생을 위한 교양도서보다 못한 정보를 도판과 사족으로 부풀린 느낌에 아쉬움도 있었다. 미술학도들에게 있어서는 중고교생의 <수학의 정석>같은 존재라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전공생에게도 단숨에 완독하기 쉬운 책이 결코 아니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시대사조별로 정리된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쉬우나 그 내용이 개괄적이어서 흐름을 파악한 뒤에는 다른 도서를 참고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통상적인 공부로 치면 소위 '1회독,2회독'하는 것처럼, 미술사를 분명 여러번 봤음에도 흐릿하게 연결되어있고 '~파',국적 등의 정보도 함께 살피며 수많은 작가들과 작품을 보게 되면 꽉 차서 잘 열리지 않는 서랍마냥 정보를 꺼내고 싶을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아트인문학>은 '현대미술은 어떻게 '창의'의 과정을 거쳐왔는가'를 중심으로 정보와 정보간의 유기적인 연결에 도움을 준다. 기존의 전형적인 미술사조 흐름에 작가만의 목차를 더해 한 권의 책을 통해 미술사의 흐름과 특징을 정리하기에 좋은 도서였다. 현대미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 미술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이전의 사조가 이후에 영향을 준 부분들을 이해하기 쉽다.

 

책의 목차가 무척 중요하기에, 그 순서에 따라 소개된 작품 중 하나를 고르고 간략한 리뷰를 남긴다. 누군가 이 책을 접하고 미술사의 한 역사와 역사가 연결되는 것을 깨닫고 작품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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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1872

 

 

 

1.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 공간의 붕괴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똑같이 베끼는 게 아니라 화가가 느낀 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 폴 세잔

 

 

1장에서는 야수주의·입체주의·오르피즘·절대주의·액션페인팅에 이르기까지 형과 색 사이의 고질적인 고민 끝에 원근감과 공간감의 굴레에서 탈피해 '환영의 재현'을 거듭하지 않고자 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마치 무대의 한 장면을 캡쳐하듯 연출된 화면을 만들어온 이전과 달리, 이 시기에 회화는 평면의 캔버스에 물감의 물질성만이 남아 입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평면'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 시기의 미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입체파가 색상이 가진 순도,명도,채도만 활용해 화가의 눈에 담긴 세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고전미술'이라고 불리며 현대미술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옛날 그림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시기 화가들의 과감한 색 선정과 원근법의 무시, 형태의 파괴가 없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도 없었을 것이다. 클래식은 영원한거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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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VI, 1913

 

 

 

2.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지각의 해체



 

나를 사로잡는 것은 오직 하나다. 미지의 뭔가를 향해 끝없이 불타오르는 끌림!

 

- 귀스타브 모로

 


2장은 다리파·청기사파·초현실주의·색면회화·영국 표현주의의 내용을 통해, 평면에서 점점 형태가 해체되어가며 구상이 추상에 이르는 과정을 안내한다. 이 시기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다. 잭슨폴록의 액션페인팅 이후로 캔버스 위에는 물감이 가진 고유한 물질성 외엔 어떤 것도 더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1장보다 더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때때로 미술은 다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역할로 존재하기도 했다. 그 시기의 예술가들은 왕정이나 교회, 주문자들에게 소속되거나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 형식으로 생활했다.

 

2장의 시대에서 화가의 역할은 보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화가들의 고민이 커지는만큼, 주체성의 범주 또한 크게 확대되어가기 시작한다. 구상의 끝은 추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구상회화를 좋아하는 나지만, 결국 평면 위에 남는 것은 추상의 무언가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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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per Johns, Flag, 1954-55

 


 

3/4.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 권위 너머로 /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 형식 너머로



 

인생, 짧다. 규칙 따위 다 부숴버리고, 절대 후회하지 마라.

 

- 마크 트웨인

 


이 시기에 이르러 우리가 '현대미술'이라고 익히 알고있는 시대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뒤샹,워홀과 더불어 다다와 미니멀리즘,플럭서스는 2021년 현재 동시대 미술가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있다. 미술은 평면과 캔버스, 물감 등의 재료에서 탈피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된다. 미술이 가진 엘리티시즘을 파괴하고 거부하는 전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며, 사회와 연결된 작업들도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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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TV Buddha, 1982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임영균


 

예술가가 '저거다'라고 하는 순간, 예술이 된다.

 

- 마르셸 뒤샹

 


3장과 4장은 한 세트라고 봐도 좋겠다. 구축주의·미니멀리즘·팝아트·신사실주의·대지예술·비디오 아트로 묶이는 이 장에서는 '매체'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미술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현대미술은 첨예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4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체가 충분히 발전하고 개발되고,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작가들은 비로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완전한 자유에 이르른 것이다. 하지만 원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했다. 평면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작가들은 '작품이 존재해야하는 가'에 대한 질문 앞까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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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aldessari,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1973 작가 및 Marian Goodman Gallery 제공

 

 

 

5.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 물질 너머로



 

나의 관심은 오직 아이디어에 있을 뿐,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있지 않다.

 

- 마르셸 뒤샹

 


발데사리의 작품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사진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작업했던 발데사리의 작업 중 깜지를 연상케하는 작업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더 이상 지루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캡션에 덧붙여진 작가의 첨언에 따르면 '개념미술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초창기에 발데사리가 행한 작업으로, 발데사리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구호와 같은 것이 되어 제자들은 강의 첫 날이면 백지에 이 문장을 팔이 아플 때까지 반복해서 써야 했다고 한다.

 

일화가 너무 잔인하고도 유쾌해서 어이가 없었다. 반성문에서나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하고 쓰는 듯한 다짐이지 않은가. 하지만, '개념미술에 전념'한다는 것에 얼마나 큰 각오가 필요한 것이었을지, 새로운 개념(idea)로 승부해야한다는 압박이 충분히 짐작가는 부분이다.

 

5장에서는 이러한 터질 것 같은 광기의 압박과 공존하는 '개념'이 등장한다. 해프닝, 사회적 조각, 신체예술과 더불어 더 이상 매체에도 갇히지 않는 예술 그 자체, 혹은 예술이 아닌 그 무언가를 닮기도 한 현대미술이 되어버린다. 여기까지의 이야기 이후가 우리가 살고있는 동시대 미술이다. 전시장에 누군가 실수로 떨어트린 안경이 한참동안 관객들이 감상하는 전시 작품으로 변모하는 시대다.

 

결국 분명하게 저자가 전하는 것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뻔한 말처럼, 예술은 '발명'이 아니라 '발전'으로서 이전의 영향을 받아 변해가고 나아가는 것이다. 창의성이란 어느 순간 갑자기 팍하고 떠오르는 영감과도 같지만, 동시에 그것은 아주 작게라도 이전의 역사와 정보들에 기대고 맞닿아 있다.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다양성'이 아이콘인 지금의 현대미술이 해내야만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많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어있는 미술사에 또 다른 점을 계속해서 찍어가며 이 선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점을 이은 선들. 이는 현대미술을 다룬 이 책의 뼈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예술가들이 벌인 놀라운 모험을 추적한다. …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순간, 즉 '생성점'들이다. 우리는 이 순간으로 찾아가 현대미술의 창조자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을 만나볼 것이다.

 

… 다섯 갈래로 나뉘어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선명히 보여줄 이 선들을 나는 '경로선'이라 이름 지어보았는데, 이들을 이 책의 가이드라 불러도 좋으리라.

 

…이 책의 화두는 '틀 밖에서 생각하기'다. 앞으로 경로선들을 따라 모두 25개의 생성점을 찾아갈 텐데, 그곳에서 이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프롤로그, 언제부턴가 우리는 홈에 빠진 채 걸어왔다 中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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