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메타버스, 그 안에 잠든 사람들의 소망 - 용과 주근깨 공주

글 입력 2021.09.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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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힐링 판타지, 용과 주근깨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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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를 처음 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촘촘하게 만들어진 세계관, 세밀하게 인물과 공간을 그려낸 화면,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메시지까지 꼭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들을 선물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3년 만에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로 돌아왔다. 전작처럼 그만의 섬세한 시각과 따뜻한 감성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용과 주근깨 공주>의 시놉시스를 살펴보니, ‘메타버스 힐링 판타지’라는 처음 보는 장르를 말하고 있었다. ‘메타버스’는 최근 뉴스를 통해서, 또 주위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다. 궁금한 마음에 김상균 교수의 책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를 읽어 보기도 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가상의 세계’였다.


대표적인 컴퓨터나 모바일로 접속하는 게임 속 세상을 비롯해서 친구들과 즐기는 방 탈출이나, 기업이 주관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도 해당했다. 예를 들어, 호주의 아트 시리즈 호텔이 투숙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뱅크시 그림 훔치기 이벤트가 있다. 호텔에 전시된 뱅크시 그림을 몰래 훔치는 데 성공하면 그 작품을 무료로 주는 내용이었다. 흔히 떠올리는 첨단 기기나 장치를 통해 접속하는 가상 세계가 아니더라도, 현실이 아닌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이에 동참하는 것이 곧 메타버스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유행하기 전부터 이 가상의 세계에 깊이 관심을 지녀온 사람이었다. 2009년에 개봉한 <썸머 워즈>에서부터 사이버 가상 세계 ‘OZ’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불러왔으니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구축해온 가상 세계에 대한 밑그림을 바탕으로 더 복잡한 인물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았다.


<용과 주근깨 공주> 현실과 가상세계 U를 오가는 ‘스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U를 접속하면 ‘U는 또 하나의 현실, As는 또 한 명의 당신’라는 멘트가 들린다. 생체정보 연동을 통해 As라는 가상 현실 속 아바타가 만들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U에서 각자의 아바타로 활동하면서, U 안에서의 이슈가 곧 현실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메타버스, 그 안에 잠든 사람들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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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현실에서 꿈꿔온 모습으로 가상 세계 U 속 자신의 아바타를 만든다. 일상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어떤 면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것을 부러워한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외모나 뛰어난 말 솜씨, 손재주 같은 것들이 주로 그 대상이 된다. 이렇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작은 바램들을 U에서는 실현할 수 있다.


주인공 스즈는 외모에 자신감이 없고 소심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친구들 앞에 나서 당당히 이야기를 하고 교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어렸을 적,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상처가 커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불렀던 노래와 즐겨 듣던 음악들은 한때 가장 사랑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한 곡을 부르기도 어려웠고,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남았다.


스즈는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마음껏 노래 부르는 자신을 꿈꿨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U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했다. U 안에서 ‘벨’이라는 주근깨가 콕콕 박힌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이 된 스즈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다.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닌 벨은 곧 U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U라는 가상 세계 안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인플루언서가 탄생한다. 스즈는 벨이라는 자신의 아바타로 많은 사랑을 받고 노래를 부르지만, 어쩐지 공허함을 느낀다. 진짜 스즈는 어디로 갔을까, 대답 없는 질문이 맴돈다.

 

 


변하지 않는 나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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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속에서 주근깨 공주 벨은 용의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는 공격적인 용이었다. 하지만 등 뒤로 여러 색으로 물든 멍이 가득한 용 또한 어딘가 허전하고 외로운 존재임을 벨은 알아본다. 용이 숨어사는 성을 찾아가고,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함께 맞서고, 용이라는 아바타 뒤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찾아내려 노력한다. 그에게서 벨, 그 뒤의 스즈가 지닌 고독과 슬픔이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절정에 이른 순간, 주인공을 다시 현실로 불러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메타버스 시대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점점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살게 될 것이다. 현실과 가상, 각각의 세계마다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어느 순간 혼란을 느끼고,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나의 페르소나,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나’를 하나로 묶는 ‘본연의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 벨과 스즈의 모습이 번갈아 나오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스즈는 현실과 U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음악으로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U 세계 속 관중들은 스즈가 들려주는 노래를 통해 스즈가 겪었을 고통과 홀로 싸웠을 아픔들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마음은 U 세계 속 아바타를 넘어, 현실 속 개개인으로 가 닿았다.


 

 

눈과 귀로 즐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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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세계관과 인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좋았지만, 역시 시각과 청각이 함께 즐거운 영화였다. 가상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 <썸머 워즈>를 떠올렸는데, 그보다 더 화려한 화면 연출이 눈을 사로잡았다. <용과 주근깨 공주>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 U는 바닷속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하늘 위 세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나의 영화로 온 세상을 만나는 것만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상상을 따라 가상 세계를 그리는 것과 함께, 현실의 공간도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여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게 좋았다. 매미 소리가 들리는 작은 도시의 푸른 여름 풍경, 스즈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나는 강가와 기차역, 학교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조용한 현실부터 소란한 가상 공간까지 다양한 이미지의 향연을 보는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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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부터 가족에 대한 사랑, 타인에게 전하는 위로, 사회의 한구석에 숨겨진 문제들,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건 음악이었다.

 

스즈는 엄마의 사고 이후 음악을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다가,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얼굴로 마음껏 노래를 하며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무언가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스즈는 현실에서도 소리 높여 노래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때는 스즈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제야 어머니가 위험한 상황에서 뛰어들었는지 스즈는 이해하게 된다.


가상 세계에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마음의 문을 닫은 용을 깨운 것도 벨의 노래였다.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때, 짧은 노랫말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순간에도, 가십만을 원하며 떠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재운 것도 노래였다.


소란이 잠들고 조용히 노래에 빠져든 수많은 벨의 관중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노래하는지 말해주지 않아도 음악에는 이미 노래하는 이의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길게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음악은 때때로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시청각적 아름다움이 충만한 영화였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메시지가 와닿기 쉽게 정리되진 않은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전하기엔 메타버스라는 소재가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세계 안에서 나의 언어로 이야기를 가지런히 정리해 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필요한 순간, <용과 주근깨 공주>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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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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