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근에 두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사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더라구요.
글 입력 2021.09.15 15: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girls-1209321_1920.jpg

 

 

요즘 인간관계에서 발이 넓은 사람을 '인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을 '아싸'라고 한다. 나는 확실히 인싸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싸도 아니다. 대학 친구 몇 명,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동네 친구 몇 명이 나의 인간관계의 전부이다. 친구가 아예 없는 것도 아주 많은 것도 아니니, 인싸와 아싸 그 사이의 어디엔가 속해있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람이 힘이다.'를 믿는 것 치고는 인간관계의 범위가 그리 넓진 않으나 몇 년간은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막연히 친구가 많아졌으면 했지만 내 영역에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이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어 놓고 '출입 금지' 팻말을 걸어둔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는 사람이 영역을 침범해서 인생을 뒤흔들어 놓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불안이 슬쩍 손을 얹은 인간관계를 '큰 불만이 없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로 포장해왔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게 나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못해도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밀어낸다는 것은 분명 문제였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대인관계와 관련된 나의 심리에 어떠한 부정적인 기제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 번째, 내가 나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것을 고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관습을 깬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성격이 이렇게 생겨 먹은 대로 살까 했지만, 덮어두고 살면 결국 곪고 만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내 상황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초반부터 바로 잡는 게 맞다. 심적으로 힘들어도 틀을 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를 인식했으니 다음 단계는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인간관계 바운더리를 넓히고 싶다고 해서 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저랑 친구 하실래요?' 이러면 '도를 믿으십니까'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고민한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로 결심했다. 그다다음 고민은 '어떻게 연락할 것인가?'였다. 졸업 후에 몇 차례 핸드폰을 바꾸면서 연락처가 사라진 친구들도 많았고, 그나마 번호가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다짜고짜 연락하면 당황스러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SNS를 가볍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수단으로 판단해서였다. 용기 있게 팔로우 해놓고서는 정작 인스타그램의 메시지인 DM을 보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고맙게도 친구들한테서 먼저 DM이 왔다. 그동안 잘 지냈냐, 어떻게 살았냐 등의 인사가 오간 뒤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다.

 

 

 

친구 A



친구 A를 만났다. A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였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고양이 버스.jpg

  

 

1학년 때 친구 A에게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를 닮았다고 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친구 A의 크고 고양이 같은 눈매와 웃을 때 옆으로 환하게 벌어지는 큰 입이 정말 고양이 버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친구 A는 내 말을 듣고 페이스북에 고양이 버스 사진을 올렸었다.

 

우리는 점심으로 마라샹궈를 먹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 가서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간 수학여행이 제일 재미있었어'라는 말에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친구 A에게 내가 학창 시절을 같이 즐겁게 보낸 친구로 기억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친구 A도 나에게 그런 친구였다.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와 학창 시절 추억을 나누는 순간이 참 소중했다.

 

그 외에도 코로나 터지고 나서 프랑스 상황은 어땠는지, 프랑스에서 인종차별 당한 적 없는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프랑스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하면 바로 락다운을 시행했다고 한다. 통금 시간을 밤 9시로 정해서 8시 반만 되면 사람들이 빨리 집에 들어가기 위해 마구 뛰어가는 모습이 웃겼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로 외국에서 동양인이 인종차별 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뉴스를 들어서 친구에게 이것을 물어봤다. 몇 번 있는데, 한번은 길 지나가는데 옆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던 프랑스인이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소리지른 듯 한데, 피부색으로 인종 간 우열을 나누고 위협적인 행동을 가하는 것만큼이나 비열한 짓은 없는 것 같다.

 

 

 

친구 B



며칠 전에 친구 B를 만나고 왔다. 같은 반은 된 적 없지만,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되었다가 나중에는 학원을 같이 다녔다. 원래는 7월 초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갑작스럽게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서 약속을 미뤘다. 또 당시에 거리두기 단계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친구 B와 다시 저녁 약속을 잡았다. 친구 B는 막학년을 다니면서 인턴을 하고 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다 비대면 수업이라서 가능하다고 하지만, 내가 수업을 들으면서 인턴도 한다고 하니 정말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사실 친구가 이날 저녁을 샀는데, 야근하는 바람에 약속 시간이 늦춰져서였다. 친구한테 고맙게 잘 먹겠다고 했지만, 몰려드는 업무로 야근한 것이기 때문에 친구가 안쓰럽기도 했다.

 

친구 B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새삼 우리가 취업을 앞둔 나이가 되었음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는 노는 얘기, 친구 얘기, 대학 얘기 등이 전부였는데, 2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취업 얘기, 적금 얘기, 주식 얘기 등을 대화의 주제로 삼을 때가 많다. 참 순수하고 세상이 마냥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였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세상살이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몇 년 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고 서로의 근황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주변에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졸업했더라도 취업 준비 중인 친구들만 있어서 실제로 인턴으로 근무 중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 B를 통해 회사 생활은 어떤지, 담당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인턴에 대한 알찬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사람이 힘이다.'라는 말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된 것 같다.

 

*

 

성인이 되어 나에게 또 다른 추억을 안겨다 준 두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인간관계가 좁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되었지만 친구들을 단순히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할 사람이 더 필요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약 4년간 서로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왔다. 아니, 나는 아주 잊지는 않았다. 문득문득 친구들이 생각났다. 연락해볼까 하다가도 용기가 안나서 이내 그만두었을 뿐이다.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너무나 젊고, 채워나가야 할 페이지가 한참 남았다. 나 혼자 써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인생 일기를 채워나가고 싶다.

 

 

 

에디터 명함_아트인사이트에디터 23기 최지혜.jpg

 

 

[최지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7984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0.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