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낸 비극 - 햄릿의 비극

그의 죽음은 애도 되지 못했다
글 입력 2021.09.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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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 삼키지 못한 누군가의 죽음이 불러온 파멸


 

‘햄릿’,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사로 더욱 잘 알려진 이 고전은 덴마크의 왕이었던 한 남자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되는 비극이다.

 

그의 죽음에 얽히고 설킨 모든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그의 죽음을 삼키고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속에는 ‘애도 되지 못한 죽음’이 존재한다.


햄릿은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선왕의 죽음에 가장 큰 슬픔을 느꼈을 인물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 대한 끓어오르는 복수심과 분노로 정작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못했다. 어쩌면 햄릿은 자신의 안에서 끝도 모르고 몸집을 불려 나가는 검은 복수심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 버렸기에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햄릿’을 주제로 한 수많은 창작물이 존재하지만 연극 <햄릿의 비극>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바로 이 ‘애도 되지 못한 죽음’이 불러온 각 인물들의 파멸에 집중했다는 점이었다. 원작 속 햄릿은 언뜻 보면 그저 복수에 눈이 먼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접하면서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번뇌와 기억이 뒤엉켜 있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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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햄릿’ 속의 실제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햄릿의 비극> 속 이 대사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고 무대 위를 부유한다.

 

간혹 햄릿을 입을 통해 빠져나온 그 대사는 거트루드, 혹은 오필리어, 혹은 클로디우스의 입을 통해 삼켜진다. 분명 같은 대사 이지만 각자 다른 기억과 고통을 지닌 인물들을 거치며 이 대사들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고통 속에서 한 남자의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삼키고 있다.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자의 왕비가 되어 아들의 분노를 받아내야 했던 거투르드,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인 살인의 기억에 시달리는 클로디우스, 죽은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복수를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던 햄릿까지.


<햄릿의 비극>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는지, 결국 이들은 서로의 상처에 대해 어떤 연민을 지니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실타래를 따라가듯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이게 이어지는 공연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망자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작고 단촐한 무대 위 펼쳐지는 비극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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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햄릿의 비극>을 관람하는 내내 쉽지 않은 소재와 내용에도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연출의 힘이 있었다.

 

<햄릿의 비극>이 이루어진 무대에 눈에 띄는 것이라곤 긴 테이블 하나가 전부이다. 이 검은색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서 때로는 직접 바닥, 벽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소품과 음향을 이용하며 이 공연은 정말 한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장면이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햄릿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온통 백지처럼 하얀 옷을 입은 햄릿은 한 손에 오색찬란한 풍선 꾸러미를 들고 테이블 위에 누워 있다. 마치 죽은 이처럼 꼼짝도 않고 누운 햄릿의 손에 들린 천진한 풍선이 매우 생경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숙부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그런 숙부와 재혼을 하려는 어머니를 향한 실망감이 뒤섞여 망가져버린 그의 내면과 달리 가면을 쓰고 이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야 했던 햄릿의 모습이 이 극적인 연출을 통해 한 번에 다가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을 대사 한 줄 없이 조명과 음향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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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햄릿과 레어티스의 대결 장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극 중 이들은 별안간 2층 난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무대를 향해 상자 속에 든 무언가를 쏟아 내는데 바로 탁구공이다. 원작 ‘햄릿’ 속 햄릿과 레어티스는 ‘팬싱 시합’을 벌이는데 <햄릿의 비극>은 이를 탁구 시합으로 대체하여 이들의 대결 장면을 표현해 냈다.


개인적으로 이렇듯 ‘탁구 시합’으로 대체한 장면이 레어티스와 햄릿의 엇갈린 운명과 결국은 이들의 상황이 다르지 않음을 더욱 잘 표현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서로의 라켓을 향해 공을 겨누며 각자의 대사를 이어 나간다.

 

이렇게 네트를 넘어 오고가는 경기 속에서 이들의 각자의 이야기와 감정은 네트 밖을 채우며 떨어지는 공처럼 뒤섞이고 합쳐져 결국 하나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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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적
 
극단 적은 2003년 젊은 연극인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형식의 공연탐구, 창작극의 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창단 공연으로 딜란 토마스의 라디오극인 <밀크우드>를 각색하여 공연을 올렸고, 인도작가 기리쉬 카나드, 토마스 만, 최창렬 작가의 작품을 올렸습니다. 2011년 재결성된 극단 적은 <단편소설집> <네더> 등 동시대 이슈가 되고 있는 해외 극작품의 국내무대 소개와 함께, 2018년 <말피>를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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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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