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망가자 Run with me

노래를 그려낸다는 것.
글 입력 2021.09.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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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말이 빛 바랠 때가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는 말이 어깨를 짓누를 때가 있다. 숨막히는 현실에 그저 도망가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 함께 도망가자고 손을 내민 이가 있다.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다.

 

<도망가자>는 2019년 발매한 정규 3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Serenade라는 이름의 3집 앨범은 선우정아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고마움과 위로를 보내기 위해 시작됐다. 3집 앨범의 타이틀곡 <도망가자> 역시 사적인 세레나데로 시작됐지만 점점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해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지금의 곡이다.

 

 

 

도망가자, 그리고 돌아오자


 

도망.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난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피하거나 달아나게 하는 위협적이거나 부정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달아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도망’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느껴진다.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하지만 선우정아가 말하는 도망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의 도망은 마냥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함께 도망갔다가 다시 씩씩하게 돌아오자고, 그 모든 여정에서 나만은 너와 어디든 함께하겠다고 말하는 따스한 도망이다.

 

선우정아는 언제나 진심을 담은 음악을 만들지만 <도망가자>가 유독 그의 다른 곡들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현실을 내려놓기 힘든 모든 이들에게 도망쳐도 된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어디를 가도 나는 항상 네 옆에 있겠다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 그것은 선우정아가 우리에게 전하는 위안임과 동시에 선우정아의 목소리를 빌어 전달될 소중한 누군가의 사랑이다.

 

 

 

노래를 그려낸다는 것



도망가자 표1.jpg

 

 

그런 그의 노래가 일러스트레이터 곽수진의 그림과 함께 그림책으로 나왔다. 곽수진의 그림은 눈길을 확 사로잡는 화려한 그림은 아니다. 대신 편안한 색감과 둥글둥글한 선으로 보는 이에게 친근한 위로와 온기를 전한다. 선우정아의 노래와 어쩐지 닮아있는 그의 그림은 노랫말과 함께 어우러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노래를 듣고 떠올리는 대상이 모두 다르듯, 곽수진 작가는 <도망가자>를 듣고 세상을 떠난 자신의 반려묘를 떠올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노견과 동행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는 스토리를 구상했다. 작가는 작업을 하며 이미 떠나보낸 반려묘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득 담았다.

 

 

도망가자 본문4.jpg

 

 

그림책은 화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함께한 그들의 오랜 세월을 짐작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둘은 색색의 꽃으로 가득한 들판과, 빛나는 별 아래, 무성한 나무 사이, 해지는 들판 위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엔 오로지 둘만이 존재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곳들로 도망가는 이들의 모습은 장소가 어디든 함께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노랫말과 같이 아름다웠다.

 

시에 음을 붙이면 노래가 된다. 멜로디에 집중해 음악을 듣다가도 아름다운 가사가 귀에 꽂힐 때면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시가 된다. 그런데 노래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건 흔치 않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읽는 건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위로를 주면서도 장르를 넘나들며 표현할 수 있다는 예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

 

오래 전부터 나는 항상 도망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전공에서 도망쳐 자주 휴학했고, 늘 어디론가 떠났다. 새로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내가 망쳐버린 것들에서 도망쳐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괴로움에 도망치고, 도망친 곳에서 또 도망치길 반복하며 돌아갈 수 없는 깊은 웅덩이를 뒤편에 잔뜩 남겨둔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가자’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첫 소절부터 무너졌다. 나의 도망은 늘 혼자였으니까, 도망친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부끄러움 가득한 것이었으니까. 도망쳤어, 도망간다도 아닌 도망가자. 그건 누군가에게 함께 가자고 건네는 말이었다. 모든 계산과 걱정을 밀어놓고 일단 함께 도망가자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해야 가능한 일일까.

 

음악을 틀어놓고 노랫말에 맞춰 페이지를 넘겼다. 선우정아의 목소리, 가사, 곽수진의 그림으로 나의 도망을 위로한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소중한 이를 나보다 더 귀히 여기는 마음은 얼마나 용기 있고 아름다운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선우정아의 마음이 만들어낸 온기를 본다. 그의 음악으로 위로 받은 사람들, 매일을 이겨낼 힘을 얻은 사람들, 정말 많은 이들이 고백한 각자만의 사연들. 이 그림책은 그 마음이 부디 지속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요즘, 선우정아와 곽수진의 그림책 도망가자를 읽으며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따스한 위안을 얻고 가길 바라 본다.

 

 

 

컬쳐리스트_신소연.jpg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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