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윌리엄 웨그만 전, 일상과 예술 낯설게 보기 [전시]

글 입력 2021.08.24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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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옷을 입은 개의 얼굴은 도도하기도 하고, 무심한 듯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일반적인 반려견과는 달리 의젓하게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개의 얼굴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렌즈 너머의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고, 형형한 눈빛에서는 그 인물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한 감정 없이는 사람이라도 뜨거운 조명 아래 조금도 서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윌리엄 웨그만은 1960년대부터 활동한 개념미술가로, 자신의 반려견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을 찍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촬영장에 데려온 바이마라너 종의 반려견 ‘만 레이’가 조명 아래에서 사진 찍는 것을 즐겨, 이들을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 레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같은 종인 바이마라너를 반려견으로 맞이해 모델로 세웠고, 자신만의 일관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9월 26일까지 열리는 <윌리엄 웨그만 전: 비잉 휴먼>에서는 반려견들과 작업한 그의 대표작 1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개들을 데리고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 사진 찍기를 하다니, 개들이 싫어하거나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을 찾아보니 강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또한 바이마라너는 원래 귀족들이 사냥한 동물을 물어오도록 길러졌고, 그렇기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가만히 있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전시장 내 작품 설명에서도 윌리엄 웨그만이 반려견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빛을 조절하고, 이들의 선호를 파악해 촬영 소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시 해설에서도 바이마라너 모델을 존중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모든 해설은 바이마라너를 윌리엄 웨그만의 동료 예술가로 상정하고 기술되어 있다. 반려견을 사물의 지위를 가진 피사체가 아닌 협업을 하는,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주체로 바라보았던 윌리엄 웨그만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영리한 바이마라너의 모습에서 잭슨 폴록의 제스처 기법이 연상된다고 비평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색채면’ 섹션 설명 중

 

“1955년 <여자와 개>를 그린 피카소는 큐브의 세계를 끊임없이 즐기는 웨그만과 그의 개들에게 커다란 조형적 영향을 끼쳐 큐브와 관련된 새로운 접근법을 탄생시켰다.” - ‘입체파’ 섹션 설명 중

 

“바이마라너는 다양한 포즈(흔히 ‘반려견의 재주’라고 착각하는 어려운 포즈)를 촬영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진작가를 훈련시켰다.” - ‘앉아! 가만 있어!’ 섹션 설명 중

 

 

총 아홉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예술, 역사, 삶이다.

 

 

 

1. 예술


 

섹션의 이름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입체파’, ‘색채면’, ‘누드’ 등 예술 사조와 장르에 관한 것이다. 이들 섹션에서는 각 사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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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은 추상회화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색의 컬러 블록을 촬영장에 비치해두고 작업에 자주 활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입체파’ 섹션의 <구성주의>라는 작품에서 바이마라너는 단색 배경 앞에서 검은 색의 블록을 기울이는 절제된 동작으로 조형미를 보여준다. ‘색채면’ 섹션에서는 어떤 색의 배경과도 잘 어우러지는 은회색의 바이마라너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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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누드’ 섹션은 바로 직전의 화려한 패션 사진이 중심인 ‘보그’ 섹션과 대조되며 바이마라너의 옷이 없는 상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슬로우 기타>라는 작품에서는 마치 자신이 벌거벗은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다리 사이에 기타를 끼우고 소파에서 미끄러지는 바이마라너가 웃음을 자아낸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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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라너는 다양한 역사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걸친 16세기 상류층, 오페라와 연극의 주인공, 패션 잡지의 모델, 심지어는 환각 상태에서 보는 혼령이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들에게 불가능한 영역은 없어 보인다.

 

 

 

3.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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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섹션은 다양한 직업인의 모습을 담은 첫 번째 섹션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사실적인 배경 한가운데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이름이 붙은 바이마라너의 얼굴이 낯설었지만, 한 점 한 점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각 직업에 해당하는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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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의 유머는 작품의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위 작품의 제목은 <우울한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다. 무표정일 때도 약간 슬픈 것처럼 보이는 바이마라너의 얼굴 덕분에, 보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따라, 혹은 제목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윌리엄 웨그만 사진의 매력이라고 느꼈다.

 

아래의 <한 덩어리>라는 작품 역시 유혹에 흔들리며 고뇌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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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은 바이마라너의 얼굴을 빌려 인간의 일상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한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졌던 인간의 역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낯설고 대단한 것이 되고,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직업인도 개성을 지닌 주인공이 된다.

 

그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Being human) 쉽지 않은 일이고,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이들은 모두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그의 사진을 보며 다시금 떠올린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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