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검은 네모에 담긴 절대성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8.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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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는 러시아의 예술가이며 교사, 이론가로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비텝스크 미술학교 교사에서부터 시작해 1917년 모스크바 국립응용미술학교 교수직을 거치며 학생들을 가르친 동시에, '절대주의'라는 미술 사조의 시작을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말레비치는 진정한 예술이란 내용과 의미를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입장에서 진정한 창조란 자연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미래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피력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무게, 속도, 이동 방향에 기초하여 색과 형태의 상호관계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즉, 말레비치에게 절대정신이란 오로지 순수한 감각의 세계였다. 그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현실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대상의 역동감 그 자체를 표상하길 원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 중의 공간'을 드러내는 미래주의의 신념을 이어받은 것이다.

 

나아가 말레비치는 예술에 있어서 직관적인 것이 사물을 찾는 감각의 목표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관적인 창조는 실용주의적 목적이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 이후 그가 개진한 절대주의의 정신이 드러난다. 직관적인 형태란 무(無)에서 생긴다고 주장한 것이다.

 

 

 

절대주의의 시작


 

말레비치가 개진한 절대주의의 기저에는 러시아 혁명이 있다. 1917년 혁명 전후의 러시아는 기술을 통해 생산력을 높여 물질 생산을 토대로 이상사회를 실현한다는, 사회주의의 이념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예술가들도 이러한 이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전위적인 움직임을 전개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움직임은 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미술을 실험하는 미술관과 미술 학교들이 정부 주도하에 세워졌으며 각종 미술 정책이 수립되었다. 또, 거리의 혁명 포스터나 건물의 장식, 그리고 산업생산품의 디자인처럼 사람들의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 예술가들이 동원되었다.

 

다만 주목할 것은 러시아의 전위미술이 추상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미술 또한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추상 양식을 통해 전개되었기 때문에, 추상은 러시아의 사회주의 이념과 예술 속으로 반영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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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열린 “최후의 미래주의 회화전 0, 10”은 이와 같은 추상 양식이 러시아 전위미술에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출품한 말레비치는 소위 말하는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특징인 재산의 공유화나 기술에 의한 생산성 극대화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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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전시에 출품된 말레비치의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가 다양한 색채의 구성을 거쳐 결국 검정색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는 말레비치의 입장에서 가장 탁월한 경지의 절대성이다. 말레비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물이 없는 비대상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몹시 단순해 보이는 이 검은 사각형은 사실 비대상적 감성이 표현된 최초의 형태였으며, 말레비치가 사물의 형태를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절대정신의 경지에 도달하려 했던 움직임이다.

 

 

 

러시아 전위미술의 끝자락


 

그러나 러시아 혁명정신을 표현하려 했던 전위적인 미술가들은 초반에는 정부에 의해 활발히 기용되다가 이후에는 부르주아들의 취향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묻히고 말았다.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은 변함이 없었지만, 정부의 견해 변화 아래 다른 평가가 주어진 것이다.

 

사회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말레비치는 1920년대 말부터 구상미술로 전향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러시아 전위미술 작가들의 작업 양식은 서유럽으로 전파되어 정치색을 벗은 '기하학적 형식'이라는 이름 아래 유행하게 되었다.

 

그 이후 역사에서 묻혀버린 혁명 전후의 러시아 미술은 세계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중에게도 개방되어있지 않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80년 미국 LA 카운티 미술관과 허시혼 미술관의 추상 양식 전시로, 이를 통해 러시아 전위미술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리고 이는 1992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위대한 유토피아"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명되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미술가들이 당대의 관제문화(Official Culture)하에서 이데올로기를 작품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의미 있으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시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우리가 공부하는 미술사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는 작품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이다.

 

 

 

조소연 Nametag.jpg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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