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이름 없는 별들의 세계 - 편집자의 세계

편집자들의 멋진 세계와 그들의 시선 알아보기
글 입력 2021.08.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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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누구인가?


 

책의 서문 혹은 작가의 말에서 저자 자신의 원고를 봐준 편집자의 노고에 감사하는 표현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제야 독자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표지에 적혀 있는 익숙한 저자의 이름 외에 다른 사람의 존재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 『편집의 세계』는 그래서 누가, 어떻게 글쓴이를 도왔는가? 라는 독자들의 의문에 15명의 ‘출판 편집자’라는 존재로 답하는 책이다.

 

 

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 정체성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 시작할 즈음부터 본인을 ‘편집자’로 규정하며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저자 고정기는 우리나라 1세대 출판 편집자로 불린다.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고 연출자이며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누구보다 출판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몸 담았을 저자의 마음이 담긴 이 책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편집자 열다섯 명을 소개하고 있다.

 

『출판의 세계』를 통해 소개된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다.

 

맥스웰 퍼킨스(스크리브너스의헤밍웨이 편집자), 아놀드 깅리치(<에스콰이어> 창간자 · 편집자), 베넷 세르프(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모던 라이브러리의 편집자), 드윗 월레스(<리더스 다이제스트>창간자 · 편집자), 캐스 캔필드(하퍼 앤 브라더스 편집자), 해롤드 로스(<뉴요커> 창간자 · 편집자), 삭스 코민스(랜덤하우스의 시니어 에디터), 프랭크 크라우닌셸드(<배너티 페어> 편집장), 히람 하이든(보브스 메릴의 편집자), 클레이 펠커 (<뉴욕>의 창간자 ·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바이킹 프레스의 존 스타인벡 편집자), 벳시 블랙웰(<마드모아젤> 편집장), 윌리엄 타그(퍼트넘의 편집국장), 휴 M.헤프너(<플레이보이>창간자 · 편집자), 헬렌 걸리 브라운(<코스모폴리탄> 편집장)

 

낯선 이름이 나열된 목차에서 드문드문 익숙한 이름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에스콰이어』, 『플레이 보이』, 『코스모폴리탄』과 같은 잡지는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잡지이기도 하면서 읽어보지는 않더라도 매대를 지나가다가 꽂힌 걸 보기도 했을 잡지이기도 하다.

 

잡지의 표지 모델에 관심을 가졌거나, 혹은 표지의 기사 제목들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 것이 평소 잡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부였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이제 잡지 안에 들어 있는 사진과 글뿐만이 아니라 이 사진과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뒤에서 고군분투했을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잡지들은 누구의 손에 탄생했고, 누구에 의해 편집되어 독자들에게 오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책에 대한 애정을 조금이라도 가진 독자라면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듯 품었을, 책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출판의 세계를 동경하는 독자들의 심오한 궁금증까지 더하여 이 책은 출판의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쓰였다.

 

소개되는 인물들이 출판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그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성공을 향해 가기 위해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과 1920년대 이후라는 과거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편집자, 그들의 철학



 

"잡지는 참다운 의미로 인간 바로 그 자체이다" - 아놀드 깅리치(Arnold Gingrich)

 

"나는 청소하고 수리하는 사람이다" - 삭스 코민스(Saxe Commins)

 


소개된 열다섯 명의 편집자가 가진 자신만의 철학을 살펴보는 건 이 책의 재미 중 하나이다. 《에스콰이어》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아놀드 깅리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잡지는 단순히 사업의 도구가 아닌 독자들에게 소장 가치가 있기를 바라며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책에서 그는 ‘가장 적게 편집하는 것이 최고의 편집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저자의 글을 대하는 편집자들의 태도 차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시니어 에디터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리엄 포크너’의 편집자였던 삭스 코민스의 말에는 재미있는 뒷배경이 숨겨져 있다. 삭스 코민스는 어느 파티에서 본인을 위와 같이 소개했는데, 이러한 장난스러운 소개에는 사실 출판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출판이라는 것은 일반 대중이 아는 것 이상으로 필자와 편집자의 공동 노력으로 이루어지며 책의 완성도는 편집자가 ‘청소와 수리’작업을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출판의 세계가 대중들에게 낯선 이유는 단 한 권의 책만 살펴 봐도 알 수 있다. 독자가 맨 처음 접하는 책의 표지에는 책의 제목과 저자와 그림, 하단의 출판사명. 이 정보만이 수록된다. 그리고 편집자의 이름은 저자가 언급해준다면 서문이나 작가의 말에 나오고, 그것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는 대부분 거들떠보지 않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다(이것은 마치 영화의 엔딩크레딧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애독자에게도 이름을 알릴 수 없는 편집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그들은 어떠한 철학으로 책을 펴내고 만드는 것일까?

   

 

“최대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하도록 신문을 편집하라.”

 

“대중의 독서 습관이 증대되도록 항상 명심하라.”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미국의 신문왕이라고 불렸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신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분명 시사하는 점이 있다. 저 두 문장에서는 세상의 톱니바퀴에 어쩔 수 없이 흘러 들어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직업 철학을 가지고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런 사람을 통해 느끼는 존경심은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의 역사를 읽는 동안 계속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잡지와 책들은 여전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읽히고 있다. 책에 소개된 잡지들의 현재를 찾아보았는데, 대부분의 잡지가 여전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었으며 미국에서 나아가 여러 나라로 뻗어 나가 여전히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양 산업이라는 활자 매체의 미래를 단언하는 시류 속에서도 과거의 화려한 명성보다는 덜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독자들에게 찾아지고 있으며, 옛 편집자들의 노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맞닿아 있는 것이다.

 

 

[크기변환]2021_잡지들.jpg

2021 잡지 최신호(출처 : 각 잡지 공식 사이트)

 

 

 

편집자에게서 나에게로


 

이 책을 덮은 뒤에 하나의 직업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 단순히 그 직업을 알아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 직업을 삶과 이어붙인 사람들의 철학과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나아가 내 삶과 나의 직업의 관계와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분명히 독자들에게 (설사 출판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 독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고민과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무명의 작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무도 그 작가의 성공을 믿지 않을 때 유일하게 믿어주며 힘을 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나라에서 금하는 책의 작품성을 믿고 투쟁하며,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끊임없이 연구하고, 편집자로 끝까지 남아 죽기 직전까지 원고를 읽었다는 편집자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세상은 빛 보지 못할 작가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재밌는 읽을거리가 풍부해졌으며, 우리는 그렇게 활자로 된 매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앞으로는 책 한 권의 마지막 페이지와 영화 한 편의 엔딩크레딧에 실려있는 수많은 이름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화려한 무대가 끝나고 빈 객석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함께 공유하면서 무대 뒤의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스쳐 가듯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편집의 세계에 일하는 편집자들이 노력만큼의 대우와 보수를 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 책은 분명 그런 세계를 앞당기기에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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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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